특히 '아무거나'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상담실에 오는 아이들은 대부분 "뭐 마실래?"라는 질문에 대해 "아무거나요."라는 대답을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대부분 상담을 하러 자발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지못해 따라오니 음료에 대한 대답도 대충 하는 것일 테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저자는 아이들의 대답대로 아무거나 줘본다는 것이다. 특히 아이들이 싫어하는 건강 음료나 오묘한 맛의 허브티를 주면 아이들은 질문을 받을 때만큼이나 당황한다고.
아이들의 입맛에 맞을 리가 없는 차를 몇 번 받다보면 아이들은 더 이상 상담사가 주는 맛없는 차를 마시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자신의 요구를 꺼낸다고 한다. "저는 우유 주세요." 같은 것 말이다.
상담은 아이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마시고 싶다고 말을 할 때부터 비로소 시작된다고 언급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다양한 역할을 부여받는다. 그 역할 안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게 되지만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한다. 자녀 대신 그 많은 선택을 일일이 다 해주는 부모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소하게는 마실 음료의 종류부터 시작해 입는 옷, 읽을 책과 봐야 할 텔레비전 프로그램까지, 자녀의 삶 전반에서 부모가 '선택을 대행'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의 수동적이고 타율적인 삶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러나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하고 직접 맛을 봐야 한다. 써서 못 먹는 한이 있더라도 "엄마, 나 생강차 먹어볼래요"라고 말할 줄 아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 "아무거나 주세요."가 아니라 똑 부러지게 "전 이게 좋아요"라든가 "이걸 원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 성장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2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