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의 서재 - 흔들리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잡는 책 읽기의 힘
하지현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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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의 서재'라는 제목을 보고,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타인의 서재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데다가 정신과 의사 하지현 교수가 전하는 '일과 삶을 키우는 생산적인 독서의 기술'이라는 말에 배우고 적용할 점을 건져낼 수 있으리라 기대되었다. 어떤 내용을 들려줄지 궁금해서 이 책 『정신과 의사의 서재』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하지현. 현재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진료를 하며, 읽고 쓰고 가르치고 있다. 5년 동안 서평칼럼 <마음을 읽는 서가>를 연재했던 성실한 서평가이다. (책날개 발췌)

이 책은 지금까지 내가 마음의 코어 근육을 기르기 위해 해온 독서라는 수련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책을 좋아하게 된 계기, 책을 읽고 정리하고 분류하고 관리하는 방법, 도서관과 책방을 순례하며 발견의 기쁨을 누린 기억, 책 속의 텍스트를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 독자가 아닌 저자로서 책을 쓰기 위한 능동적 독서법, 읽은 책을 리뷰하고 추천사를 쓰는 과정, 책을 많이 읽다보니 알게 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다룰 것이다. 마지막 장에는 그동안 내가 읽어온 책들 중에서 정신분석, 불안과 우울, 성숙, 일에 대한 태도 등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권하고 싶은 책들을 몇 권씩 추천해보았다. (12~13쪽, 프롤로그 중에서)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된다. 프롤로그 '마음의 코어 근육 만들기'를 시작으로, 1장 '정신과 의사의 책 읽기', 2장 '텍스트의 소유', 3장 '어쩌다 보니 작가', 4장 '많이 읽어보니 알게 된 것들', 5장 '이런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로 이어지며, 에필로그 '꾸준히 읽어가는 것뿐'과 '하지현이 읽은 책들', '추천의 글'로 마무리 된다.



 

저자의 프롤로그 글부터 마음에 들어왔다. '세상은 유동적이고, 내 사고의 틀도 언제든지 새로운 변화에 맞추어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한다(11쪽)'는 것에도 동의하고, '백 퍼센트 완전한 객관이란 없고 주관은 상대적이라는 것이 여러 권의 책을 넓게 펼쳐 읽을수록 빨리 와 닿는다(12쪽)'는 점에도 공감하며 읽어나갔다.

이 책은 글자 하나 빼놓기 싫은 책이었다. 사실 독자로서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나면 저자가 아무리 발췌독을 권하더라도 모두 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뒤로 넘어갔다가도 앞으로 다시 돌아오기도 하고 마음에 담는 문장을 적어놓기도 한다. 정신과 의사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가 이렇게 흥미롭다니, 시선을 떼지 못하고 이 책을 읽어나갔다.

정신과 의사가 하는 일에 대한 글도 인상적이다.

프랑스 말에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이 있다. 해가 살짝 저물 때 저 멀리 보이는 짐승이 개인지 늑대인지 분간이 안 되는 그런 경계를 말한다. 낮도 아니고 밤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그런 시간. 정신과 의사가 하는 일이 바로 개와 늑대의 시간에 서서 이게 개인지 늑대인지 구별하려고 노력해가는 것이다. 질병을 평가하기가 어렵듯이 얼마나 호전되었는지 판단하기도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니 처음부터 끝까지 애매함을 안고 가는 것이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의 정체성이다. (23쪽)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무엇을 하실 건가요?"

이런 느닷없는 질문에 조금의 고민도 없이 "동네 만화방에서 라면을 먹으며 좋아하는 만화 시리즈를 1권부터 천천히 다시 읽겠습니다"라고 답을 할 정도로 나는 만화를 좋아한다. 지구 멸망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슈퍼히어로 유전자는 1퍼센트도 없다. 정말로 내일이 인생의 끝이고 세상의 종말이라면, 순순히 받아들이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에서 남은 시간을 숨 쉬고 싶다. (42쪽)

정신과 의사라면 어려운 책만 읽을 것 같은 선입견을 깨주는 편안한 글이다.

또한 선물 중 제일 어려운 것이 책 선물이다. 그 사람을 떠올렸을 때 '이러이러한 책을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만으로 선물했다가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한 번은 어떤 모임에서 '이 사람은 이 책을 좋아하겠지'라는 짐작으로 책 꾸러미를 가지고 간 적이 있는데, 그들이 실제 고른 책은 나의 예상을 죄다 빗나갔다. 책을 좀 넉넉하게 가지고 가서 그나마 다행이었지 자칫하면 서운한 사람이 생길 뻔했던 일이었다. 저자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 처음에는 자신이 재미있게 본 책을 선물했는데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시점인지 깨닫는 데에는 두세 번의 마땅찮은 반응으로 충분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 나보다 더 다양하고 깊은 생각을 풀어내고 있어서 나의 짧은 생각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 흥미로웠다.

책을 좋아하다보니 누군가의 집에 가게 되면 서재를 보며 그 사람의 취향을 파악하곤 한다. '이런 책을 좋아하는 구나. 의외로 이런 책도 읽네? 이런 상반된 책을 소장하고 있다니?' 등등 생각이 많아진다. 반대로 나는 내 책장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 내 마음을 들키는 것 같다고 할까. 저자도 이에 대해 이 책에서 언급했다.

《미식예찬》에서 브리야 사바랭은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라고 말했다. 나라면 "당신의 책장에 무슨 책을 남겼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103쪽)



나도 나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나는 축에도 못 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한 마디에 바로 자세를 낮춘다. 나는 어디가서 책에 빠져들었다는 이야기하기에 너무나도 가볍다.

이런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책에 너무 많은 돈을 쓰나', '너무 과하게 책에 빠져 지내나' 하는 의혹은 쑥 들어간다. 난 저들에 비하면 환자라 해도 경증에 불과하다는 걸 바로 느낄 수 있으니, 혹시라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해본 적 있는 분들이라면 이 책들을 보시기 바란다. 한결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253쪽)

이 책은 첫 인상이 일단 합격이고, 막상 펼쳐보니 내용도 풍부해서 마음에 든다. 제목으로 주는 기대감에 부응하고, 그 이상으로 생각할 거리와 정보를 던져주는 책이다. 정말 책을 애정하는 모습이 글 속에 가득 담겨 있으니, 눈이 번쩍 뜨이는 매력이 있는 책이다. 특히 책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로 생각할 기회가 되어 여운이 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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