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릿고 - 판소리를 집대성한 신재효와 진채선
최혜인 지음 / 북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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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하면 영화 <서편제>가 떠오른다. 그 시절 그 영화는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명작이었으니 말이다. 몇 번이나 보았던 기억이 난다. 특히 진도아리랑을 부르던 그 장면은 문득문득 떠오르며 아련해진다. 그 이후 최근에는 가장 한국적인 뮤지컬 영화를 표방한 <소리꾼>이 개봉되었으나 시기가 시기인 만큼 영화관 방문을 꺼리게 되어 볼 기회를 놓쳤는데, 아무래도 일부러 찾아서 보게 될지는 미지수다. 그만큼 판소리는 나에게 여전히 낯선 가락이긴 하다.

93년의 영화 서편제 이후 2020년 현재 나에게 강렬하게 다가온 판소리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이 소설 『소릿고』이다. 작가의 자신감과 독자의 호기심이 만나 150여 년을 잠자고 있던 진채선과 신재효에게 숨결을 불어넣었으니, 생생하게 살아난 그들의 이야기와 그 여운이 한동안 가슴 속에 자리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최혜인. 경남일보에 단편소설 「결」이, 동양일보에 「소금 볶는 여자」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판소리 역사소설인 『소릿고』 는 몇해 전 '혼불문학상' 최종심까지 올랐다. 그 이후 작가가 구도의 길을 걸으면서 함께 성숙되고 승화되었으며 더 많은 각고와 산통을 통하여 거듭난 것이다. 최혜인 작가는 '글 쓰는 중(僧)'이 되고 싶어 출가를 했으나 예상과 달리 불가의 전통 수행법은 소설 창작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다. 그래서 산 속 칩거생활을 접고 내려와 사람들 속에서 홀로 사는 토굴생활을 선택했다.

사방팔방 뻗어나가던 생각의 갈래를 거두고 거두어 안으로 안으로 한 점이 되게 하는 것이 불가의 수행법인데 소설은 정반대였다. 바늘 끝 같은 한 점에서 생겨난 생각을 펼치고 펼쳐서 하나의 소우주를 만들어 내는 대역사이다. 어떻게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가? 내 수행의 화두다. (276쪽)

이 소설에는 판소리를 집대성한 신재효와 진채선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총 6장으로 구성되는데, 프롤로그로 시작되어 1장 '무녀의 길', 2장 '광대의 길', 3장 '서러움의 길', 4장 '시련의 길', 5장 '득음의 길', 6장 '운명의 길'로 이어지며, 에필로그로 마무리 된다.




 

월녀는 딸 채선에게 어떻게든 내림굿을 해주어 무당을 만들려고 한다. 채선은 아직 단 한번도 어머니를 거역한 적이 없었지만 무당은 안 하겠다며 거부한다. 채선은 삶의 희노애락을 창과 아니리에 담아 부르는 소리꾼이 되고 싶었다. 채선은 내림굿 현장에서 극적으로 탈출한다. 한편 재효는 네 번째 부인까지 잃고 더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며 바다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다 죽어가는 곱상한 여인 채선을 살리며 이야기는 급속도로 전개된다. 죽음과도 바꿀 수 없는 강렬함, 그래서 죽음의 경계까지 갔다가 다시 태어난 듯 새로이 소리꾼의 길을 걸어 간다.

'판소리' 하면 '한'이 기본 바탕이 되는데, 그러면서 이 소설에서는 한 가지 소재가 더 눈에 띈다. 바로 '동백꽃'이다. 하얀 눈과 동백꽃의 대비로 강한 여운을 남긴다. '뭉덩뭉덩 동백꽃이 기침과 함께 피어나 희디흰 눈밭 위로 떨어져 내렸다.(268쪽)'라는 표현에 마음이 저리는 것은 소설이라는 매체이기 때문에 가능한 감정이리라.




 

『소릿고』 초고를 읽던 날 밤의 벅찬 감정을 잊을 수 없다. 한때 판소리를 배웠던 나도 까마득하게 잊었던 신재효와 진채선이 소설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두 사람이 흘린 피와 뒤집힌 눈알이 행간 속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이 나라 판소리 열두 마당이 두 사람의 각골과 각혈의 꽃이었다는 것을 새삼 인지한 그날 밤. 내 가슴에서 『소릿고』는 소릿고苦와 소릿고鼓가 되어 쿵쿵 울렸다. 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 내가 이 소설의 초고를 읽었다는 것은 참으로 큰 행운이다.

_조문주/ 시인, 교육학 박사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하다. 이미 오래전 이 세상을 등진 사람들이 살아 돌아와 지금의 우리에게 사랑과 예술을 펼쳐내 보여준다. 이들의 살아 숨쉬는 이야기가 가슴속에 남아서 떠올릴 때마다 아련해질 것이다. 특히 동백꽃과 함께 말이다.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운이 남아 한동안 이들이 떠오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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