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랜드 - 심원의 시간 여행
로버트 맥팔레인 지음, 조은영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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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눈 앞의 것만 보고 아웅다웅 살면서 시야가 좁아져 있었다. 게다가 장마철의 꿉꿉함과 폭염, 질병의 두려움까지 더해서 마냥 움츠러들고 있다. 이럴 때에는 좀더 근원적인 부분에서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서 이 책 표지의 묘한 느낌과 함께 '심원의 시간 여행'이라는 문장에 시선이 갔다. 구체적으로 무슨 내용을 담았을지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심원의 시간이란 인간의 능력으로 가늠할 수 없는 아득한 지질학적 시간을 말한다. 이 책은 과거 우주의 탄생과 동시에 생성된 암흑물질에서부터 홍적세에서 인류세로 전환한 현재, 그리고 미래 지질학자가 인류세를 연구하는 인류 이후의 먼 미래까지 다룬다. 한 권에 지구 역사의 연대기를 모두 넣겠다는, 일면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도 그 깊이가 얕지 않다. (500쪽_옮긴이의 말 中)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땅 밑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지하 세계는 어둠과 죽음이라는 필연적인 영역을 넘어 인류세에 새로운 빛과 희망의 문을 열어줄 수 있을까? 집필하는 데만 6년이 걸린 이 책 『언더랜드』는 물질, 신화, 문학, 기억, 그리고 대지에 존재하는 지구의 방대한 지하 세계를 탐험하면서 각각의 주제에 따라 지면 아래에서 형성된 울림, 패턴, 연결의 네트워크로 확장해나간다. (책날개 中)



이 책의 저자는 로버트 맥팔레인. 경관, 기억, 장소, 자연에 관한 저술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2007년에 『와일드 플레이스』로 보드만 태스커 산악문학상, 밴프 산악도서 페스티벌 대상, 스코틀랜드 '올해의 논픽션상'을 수상했다. 현재 케임브리지 대학 임마누엘 칼리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왕립문학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책날개 발췌)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 '어둠 속 언더랜드를 보다', 2부 '감춰진 언더랜드를 찾아서', 3부 '언더랜드에 홀리다'로 나뉜다. 1장 '하강', 2장 '동굴과 매장', 3장 '암흑물질', 4장 '언더스토리', 5장 '보이지 않는 도시', 6장 '별이 뜨지 않는 강', 7장 '할로우랜드', 8장 '붉은 댄서', 9장 '가장자리', 10장 '시간의 푸른빛', 11장 '융빙수', 12장 '은닉처', 13장 '지상을 향해'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언더랜드', '지하 세계'에 대한 고정관념이 나 또한 있었나보다. 땅 밑의 세계에 대해 지금까지 어떻게 생각했든 이 책을 읽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의 고정관념을 깨고 언더랜드로 초대받는 느낌이다. 이 느낌 괜찮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가듯, 이 책 속 문장을 읽어나가며 언더랜드로 향한다.

언더랜드에서는 소중한 것을 지키고, 유용한 것을 생산하고, 해로운 것을 처분하는 세 가지 과제가 문화와 시대를 아우르며 반복된다.

은신처 (기억, 소중한 물건, 메시지, 연약한 생명)

생산지 (정보, 부, 은유, 광물, 환영)

처리 (폐기물, 트라우마, 독, 비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는 두렵기에 버리고 싶고, 사랑하기에 지키고 싶은 것들을 언더랜드로 가져갔다. (16쪽)




 

심원의 시간은 지구 역사가 현재에서 한없이 확장된 공간이다. 이 책에서는 근본적 관점으로서의 심원의 시간, 무관심이 아닌 행동을 재촉하는 심원의 시간을 촉구해야 한다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문제투성이인 우리의 현재를 외면하는 핑계가 아니라 현재를 재구성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 생성과 파괴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지구 역사의 오랜 이야기가 현재의 성급한 욕심과 분노를 거두어갈 것이라는 것 등의 이야기에 금세 몰입하게 된다.

지금껏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았다면, 이 책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시야를 확장시킨다. 주석까지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놓칠 수 없는 몰입감을 느낀다. 인간의 과거이자 현재, 미래까지도 살펴볼 계기를 마련해주니 말이다. 그러면서 문득 마음을 훅 치고 들어오는 질문과 답변을 내놓는다.

과연 인간이라는 종은 이 땅의 지층에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가? 인류세의 유물로 원자력 시대의 낙진, 도시의 망가진 기반 시설, 집약적으로 사육된 수백만 마리의 유제류 등뼈, 매년 수십억 개씩 생산된 플라스틱병이 쌓여서 생긴 희미한 지층(이 플라스틱 지층은 다국적 제품 디자인 기록보관소를 찾고하면 정확한 연도를 파악할 수 있다)이 남을 것이다. 필립 라킨은 '우리에게서 살아남을 것은 사랑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지만, 그는 틀렸다. 우리에게서 살아남을 것은 플라스틱, 돼지 뼈, 그리고 우라늄 235 붕괴 사슬의 최종 산물이자 안정적인 동위원소인 납 207이다. (88쪽)




 

이 책은 소장해두고 두고두고 꺼내들어 읽고 싶은 책이다. 자연과학 서적이면서도 문학적 요소를 충분히 사용하여 흡인력 있게 독자를 끌어들이고, 지금껏 생각하던 것을 뒤집어놓는 에너지가 있는 책이다. 사고의 근간을 흔들며 지금껏 바라보지 못했던 세상을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 집필하는 데만 6년이 걸렸다는 역작이다. 이미 있는 세상이며 우리 인간보다 훨씬 더 오랜 역사가 있는 공간을 인식조차 하지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 되살리는 듯하다. 참신하고 파격적이다. 지적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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