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는 전진. 파리의 철학도. 20세기 끝자락의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고등학교 졸업식날 '명품 인간이 되라!'는 교장 선생님의 외침에서 알 수 없는 수상함을 감지하고 스무 살이 되던 2015년, 모스크바를 경유해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파리 제1대학 철학과 학사를 마치고, 2020년 가을부터는 동대학원 철학과 미술사학부에서 미학을 공부할 예정이다. 더 많은 사람과 '철학하기'의 유익을 향유하며 우리 모두에게 가장 좋은 삶이 무엇일지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어 이 책을 썼다.
모범 답안도 아니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런 고백을 하는 이유는, 답을 찾기 위한 내 방법을 시험대에 올려보고 싶은 까닭이다. 삶이 아니라, 삶을 이해하는 방법을 비교 대상으로 선보이는 작업은 《고백록》을 쓰던 루소의 다짐과 닮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고백은 필연적으로 많은 사람의 고백과 이어져' 있으니까. (7쪽)
이 책은 총 2장으로 구성된다. 1장 '배움의 시간: 나에게 가장 좋은 삶'과 2장 '배움의 재구성: 모두가 덜 불행한 세상'으로 나뉜다. 명품 인간이 되고 싶나요?, 내지 않은 휴학계, 낯선 언어로 다시 태어나는 법, 언어 학습자에게 보내는 편지, 돈 없으면 배움도 없다?, 좋은 삶을 공부로 배울 수 있나요?, 내게는 너무 서글펐던 집, 바뀐 이름을 걸고서, 건포도빵의 교훈, 하늘을 나는 철학과 과제, 도시 연애 수난기, 평범한 인종차별, 그녀는 왜 입꼬리 주사를 맞았나, 채식주의자의 파이 나누기, S#15 파리 13구의 슈아지 공원, 수치를 모르는 가난, 마초맨의 수난, 책에 관한 일곱 가지 짧은 이야기, 울기엔 좀 구린 슬픔, 걸려온 전화 등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자의 글에서 명품 인간이 되라는 교장선생님의 발언은 중요한 계기가 된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교장 선생님이 "여러분, 명품 인간이 되십시오!"라고 말씀하셨고, 박수 소리가 장내를 가득 채웠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현기증 날 정도로 이상한 느낌이 든 것이다. 사람을 물건 취급 하다니! 하지만 그 교장선생님도 물건 취급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거나, 우리학교 졸업생들 최고가 되세요 같은 덕담이 아니었을까. 아마 사람들의 박수는 '와, 끝났다!'의 의미일 수도 있었을텐데. 지금보면 어른이라고 완벽한 인간은 아닌 것인데, 고교 졸업 무렵에는 다르긴 하다. 누군가의 한 마디로 실망해버리거나 그 한 마디로 인해 인생이 바뀌기도 한다. 어쨌든 '명품 인간'이라는 것은 저자에게 화두처럼 다가와 파리행을 감행하고 철학을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의 경험담과 그에 대한 생각을 진솔하게 풀어내는 에세이다. 프랑스 유학 생활을 하는 동생이 있어서 그런지 책 속의 글이 더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특히 이런 것 말이다. '집을 구하려면 은행 계좌가 필요한데 은행 계좌를 만들려면 집 주소가 필요하다고? 프랑스, 나랑 싸우자는 건가? (77쪽)' 같은 것은 파리 유학생이라면 특히 공감할 것이다. 또한 크루아상이나 빵 오 쇼콜라가 아닌 빵 오 헤장을 고르는 취향이라니, 그 취향 존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