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흔들리는 중입니다 - 산책길 들풀의 위로
이재영 지음 / 흐름출판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제목을 읽고 울컥했다. '오늘도 흔들리는 중입니다' 이건 내 마음을 말하는 것 같잖아?!어렸을 때에는 나이가 들면 흔들리지 않고 힘든 일에도 꿋꿋하게 잘 이겨낼 줄 알았다. 하지만 유리멘탈이 되어 작은 일에도 덜덜 떠는 것은 예상치 못했던 나의 미래였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괜찮아지는 날들

그러고 보니 산책과 등지고 산지 꽤 되었다. 당연히 들풀을 바라본 적도 언제였는지 기억에서 꽤 멀어져 버렸다. 너무 딱딱하고 무겁게 살다보니 인생이 더욱 그런 색깔로만 채워졌나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들풀의 위로를 좀 받아보고 싶었다. 책 속의 글을 읽으며 잊고 있던 들풀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생각에 잠긴다.



이 책의 저자는 이재영. 가평 설악면 작은 책방 '북유럽 Book You Love'의 주인장을 공동으로 맡고 있다.

오늘도 산책을 나선다. 걸으면 조금씩 송두리째 흔들렸던 삶의 중심이 잡힌다. 나를 물들였던 것들이 천천히 빠져나간다. 겹겹이 쌓였던 타인의 시선과 기대와 기준들이 사라진다. 바람이 한 겹, 햇살이 한 겹, 빗물이 한 겹, 아랑곳하지 않고 어느 때고 솟아오르는 들풀이 한 겹, 나무가 한 겹, 꽃이 한 겹, 흙이 한 겹. 아름다운 것들이 내 속에 스며들어 불필요한 것들을 밀어내고 순한 내가 남는다. 흔들리는 내 삶에 작고 연약하지만 싱싱한 새로운 뿌리가 자라난다. (8쪽)

이 책은 총 2부로 구성된다. 1부 '멈춰 섰을 때 초록이 건넨 위로'와 2부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괜찮아지는 날들'로 나뉜다. 개를 기르는 건 나를 돌보는 일, 행복과 행운은 한끝 차이, 무엇으로 흐르든 꽃은 핀다, 선택되지 않은 기쁨, 흔들리지만 사라지지 않는, 풀들에겐 엄마가 없다, 한계를 넘어선다는 것, 결핍이 만들어낸 아름다움, 어느 냄새 수집가 이야기, 어제 오늘 내일 등의 글이 담겨 있다. 또한 클로버, 고마리, 왕고들빼기꽃, 개망초, 서양 민들레, 담쟁이, 달개비꽃, 부들, 강아지풀, 밤, 넝쿨, 부레옥잠, 돌나물, 꽃마리, 쑥부쟁이 등의 들풀을 볼 수 있다.



"사실 서른 초반만 해도 몰랐는데 중반쯤 되니까 너무 불안해. 삼십 대는 이십 대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별 감흥이 없었는데 마흔이 되면 왠지 인생이 크게 변할 거 같아. 어떻게 달라질지 전혀 감이 안 잡히는데 희망적으로 느껴지지는 않고. 그런 책 좀 써 봐. 마흔도 괜찮다는 책. 안심 좀 되게."

마음이 잠깐 철렁했다. 아니라고 해줘야 하는데 차마 입이 안 떨어졌다. 마흔은 괜찮지 않았다. 다 뿌리내린 줄 알았는데 그 뿌리가 얼마나 연약한지 깨닫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삼십 대를 지나면서 이제야 자리를 잡았나 했는데 마흔이 되니까 이십 대처럼 다시 위태로워졌다. 마흔은 그런 나이였다. 다시 흔들리는 나이. (5쪽)

이 글을 보고 안심이 되었다고 할까. 조금은 가벼워졌다고 할까.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남들은 다 잘 살고 있는데 나만 왜 이렇게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 때, '너만 그런 거 아니야. 우리 잘 버티며 지내보자.'라며 버팀목이 되어주는 그런 느낌 말이다. 인상만 쓰지 말고 한숨 돌리며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하고 짐 한 덩이를 내려놓는다. 어쩌면 언젠가는 어떤 고민을 했었는지도 잊을 거면서 왜 이렇게 버거운 삶을 살아가는지….



한여름 날 책방에 화사한 흰 꽃이 입장했다.

잎과 씨에 독이 많아 우리말로 '흰독말풀'이라고 불리는 이 꽃을

서양에서는 고개가 땅을 향한 것은 '천사의 나팔'로,

하늘을 향한 것은 '악마의 나팔'로 부른단다.

같은 꽃에서 서로 다른 얼굴을 본 탓일까?

그러나 나는 보는 이에 따라 달라지는 이름보다

제 성질을 그대로 보여주는 우리말 이름,

'흰독말풀'이 좋다. (74쪽)

 





글을 읽고 사진을 보니, 산책길에 들풀을 보게 되면 '꽃이 피었다'는 것 말고 떠오를 것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책을 읽고 달라지는 내 마음가짐이다. 저자는 내일이 불확실한 시간 속에 한결 같은 건 풀과 꽃과 나무들뿐이었다며 아예 산책가가 되기로 했다고 한다. 자연 속으로 출근하듯 나서니 미래에 대한 걱정이 잦아들었다고 하니, 걱정 해결의 길을 자연에서 찾는 것도 방법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제일 바꾸기 쉬운 것은 내 마음이라고 하지 않던가.

이 책에는 들풀만 있는 것도 아니고, 삶의 이야기만 있는 것도 아니다. 두 가지가 어우러져서 글이 맛깔나게 다가온다. 이 책을 읽으며 들풀이 담긴 에세이라면 이 정도가 적당하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학술적으로 들풀을 소개해주는 책은 딱딱하고 멀게 느껴지고, 에세이만 담긴 책은 평범한데, 이 두 가지가 결합되니 적절하게 잘 녹아들어 독특해진다. 친근한 느낌으로 조곤조곤, 이 책만의 개성 넘치는 느낌을 잘 전달해주는 에세이여서 읽어보기를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