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게네프의 중편 「파우스트」는 1856년 '아홉 통의 편지로 된 이야기'라는 부제와 함께 잡지 《동시대인》에 발표되었다. 투르게네프는 젊은 시절부터 괴테의 『파우스트』에 몰입했고 1844년에는 괴테 작품의 일부를 번역하여 벨린스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다음 해 투르게네프는 『파우스트』의 러시아어 번역본에 대한 논평이 담긴 긴 논문을 발표한다. 논문에서 작가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가리켜 '낡은 시대와 새로운 시대 간의 투쟁이 마침내 시작된(……) 당대의 가장 완벽한 표현'으로 평가한다. 논문을 발표한 지 11년 뒤 투르게네프는 중편 「파우스트」를 발표한다. (206쪽, 옮긴이 후기 中)
'파우스트' 하면 '괴테'만 떠올리던 나에게는 이반 투르게네프의 파우스트에 대한 배경이 궁금했다. 옮긴이의 후기를 보며 '이런 일들이 있었구나!' 알고 읽는 재미가 있다. 이반 투르게네프의 파우스트는 일련의 편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라고 평가 받는다고 하니, 이번 기회에 러시아 고전 시리즈를 통해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이 책에는 「세 번의 만남」, 「파우스트」, 「이상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소설은 첫 인상이 중요하다. 첫 문장, 그리고 처음 몇 장이 어떤 느낌으로 읽어나갈지 독자의 자세를 다르게 한다. 이 소설은 가장 먼저 「세 번의 만남」을 통해 나의 마음가짐을 다르게 했다. 앞에 몇 장 읽어나가다보면, 시청각 감각을 총동원하여 분위기를 극대화시킨다. 적막감을 강조하며 극에 달했을 때, 저택 안에서 들리는 피아노 소리, 그리고 여자 목소리. 이 년 전 이탈리아의 소렌토에서 들었던 바로 그 노래! 바로 그 목소리였다고! 그 여인의 모습, 두근거리는 남자의 마음을 따라잡으며 이 소설을 읽어나간다. '그래서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데?' 궁금해하면서 말이다.
이제 독자 여러분은 내가 왜 그렇게 놀랐는지 이해했으리라. 이탈리아의 소렌토에서 들었던 바로 그 목소리, 그 노래를 러시아의 초원지대에서, 그것도 외진 지역 중 하나인 이곳에서 듣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때처럼 지금도 밤중이었다. 그때처럼 지금도 목소리는 환하게 불 켜진 작은 방에서 갑작스럽게 들려왔다. 그때처럼 지금도 나는 혼자였다. 심장이 방망이질하듯 뛰기 시작했다. 꿈인가 싶었다. 순간 다시 한 번 비에니(Vieni),하는 소리가 들렸다……이번에도 창문이 열릴까? 이번에도 여인이 모습을 드러낼까? 창문이 활짝 열렸다. 창가에 여인이 나타났다. 나는 그녀를 금방 알아보았다. …… 그래, 바로 그녀였다.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는 바로 그 모습, 어디에서도 본적이 없는 바로 그 눈동자였다. (18~19쪽)
이들의 미래가 궁금한 동시에, 과거에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도 알고 싶었다. 그 궁금한 마음이 소설을 읽어나가는 추진력이 된다. '이거면 되었다' 싶은 순간, 소설 속 이야기에 빠져들어 이들의 사연을 들어보는 시간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