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러시아 고전산책 5
이반 세르게예비치 뚜르게녜프 지음, 김영란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러시아 고전산책 제5권 「파우스트』이다. 작가정신의 러시아 고전 산책 시리즈는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백야, 우스운 자의 꿈』부터 레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안톤 체호프의 『나의 인생』, 레프 톨스토이의 『크로이체르 소나타』에 이어 다섯 번째로 이반 투르게네프의 『파우스트』가 출간되었다. 사실 『파우스트』하면 당연히 '괴테'가 떠올랐는데, 작가 이름부터 약간은 생소하게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이반 투르게네프의 『파우스트』는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이반 투르게네프(1818~1883).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국민 작가다. 투르게네프는 러시아에서 가장 서구적 색채가 짙은 작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1840~1870년대의 사회 문제를 주제로 삼고 있다. 특히 서정미 넘치는 섬세한 문체, 아름다운 자연 묘사, 정확한 작품 구성, 줄거리와 인물 배치상의 균형, 높은 양식과 교양은 널리 알려져 있다. (책날개 발췌)

투르게네프는 소설가로 명성을 얻어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 3대 문호의 한 사람으로 꼽히지만, 실제로는 시인으로 시작해서 훗날 불후의 명작 산문시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흔히 투르게네프를 가리켜 언어의 아름다움, 문체의 완벽성, 응축된 문체에 관한한 세계 문학에서 견줄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시인이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205쪽, 옮긴이 후기 中)



 


투르게네프의 중편 「파우스트」는 1856년 '아홉 통의 편지로 된 이야기'라는 부제와 함께 잡지 《동시대인》에 발표되었다. 투르게네프는 젊은 시절부터 괴테의 『파우스트』에 몰입했고 1844년에는 괴테 작품의 일부를 번역하여 벨린스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다음 해 투르게네프는 『파우스트』의 러시아어 번역본에 대한 논평이 담긴 긴 논문을 발표한다. 논문에서 작가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가리켜 '낡은 시대와 새로운 시대 간의 투쟁이 마침내 시작된(……) 당대의 가장 완벽한 표현'으로 평가한다. 논문을 발표한 지 11년 뒤 투르게네프는 중편 「파우스트」를 발표한다. (206쪽, 옮긴이 후기 中)

'파우스트' 하면 '괴테'만 떠올리던 나에게는 이반 투르게네프의 파우스트에 대한 배경이 궁금했다. 옮긴이의 후기를 보며 '이런 일들이 있었구나!' 알고 읽는 재미가 있다. 이반 투르게네프의 파우스트는 일련의 편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라고 평가 받는다고 하니, 이번 기회에 러시아 고전 시리즈를 통해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이 책에는 「세 번의 만남」, 「파우스트」, 「이상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소설은 첫 인상이 중요하다. 첫 문장, 그리고 처음 몇 장이 어떤 느낌으로 읽어나갈지 독자의 자세를 다르게 한다. 이 소설은 가장 먼저 「세 번의 만남」을 통해 나의 마음가짐을 다르게 했다. 앞에 몇 장 읽어나가다보면, 시청각 감각을 총동원하여 분위기를 극대화시킨다. 적막감을 강조하며 극에 달했을 때, 저택 안에서 들리는 피아노 소리, 그리고 여자 목소리. 이 년 전 이탈리아의 소렌토에서 들었던 바로 그 노래! 바로 그 목소리였다고! 그 여인의 모습, 두근거리는 남자의 마음을 따라잡으며 이 소설을 읽어나간다. '그래서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데?' 궁금해하면서 말이다.

이제 독자 여러분은 내가 왜 그렇게 놀랐는지 이해했으리라. 이탈리아의 소렌토에서 들었던 바로 그 목소리, 그 노래를 러시아의 초원지대에서, 그것도 외진 지역 중 하나인 이곳에서 듣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때처럼 지금도 밤중이었다. 그때처럼 지금도 목소리는 환하게 불 켜진 작은 방에서 갑작스럽게 들려왔다. 그때처럼 지금도 나는 혼자였다. 심장이 방망이질하듯 뛰기 시작했다. 꿈인가 싶었다. 순간 다시 한 번 비에니(Vieni),하는 소리가 들렸다……이번에도 창문이 열릴까? 이번에도 여인이 모습을 드러낼까? 창문이 활짝 열렸다. 창가에 여인이 나타났다. 나는 그녀를 금방 알아보았다. …… 그래, 바로 그녀였다.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는 바로 그 모습, 어디에서도 본적이 없는 바로 그 눈동자였다. (18~19쪽)

이들의 미래가 궁금한 동시에, 과거에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도 알고 싶었다. 그 궁금한 마음이 소설을 읽어나가는 추진력이 된다. '이거면 되었다' 싶은 순간, 소설 속 이야기에 빠져들어 이들의 사연을 들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파우스트」는 편지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반 투르게네프의 문장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하지?'라는 감탄이 저절로 생긴다.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틈틈이 감탄하며 읽어나간다. 특히 편지글로 된 「파우스트」는 연극무대에서 긴 대사를 쉴새 없이 읊어대는 것 같은 느낌으로 읽어나가게 된다.

언젠가 내가 외국에서 가져온 책들도 발견했어. 괴테의 『파우스트』도 있더군. 자네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한때 난 『파우스트』를 한 자도 빼놓지 않고 암기한 적도 있었어. …… 제1막의 장엄함은 벅찬 감동 그 자체였어! 정령의 등장과 그의 대사, 자네도 기억할 테지, '인생의 파도 위에, 창조의 폭풍 속에.' 이 대사는 내 마음속에 한동안 맛보지 못했던 아찔한 전율과 쾌감을 느끼게 해주었어. 모든 게 되살아났어. 베를린, 유학 시절, 프로일라인 클라라 슈치흐, 메피스토펠레스 역을 한 자이데르만, 라지빌의 음악 등 그 모든 게 말이야…… 오랫동안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 내 청춘이 눈앞에 되살아나 환영처럼 어른거리더니 온몸의 혈관을 따라 불길처럼, 독약처럼 뛰어다니는 거야. 심장은 확장된 채 수축되지 않았고 심장의 혈관이 온통 약동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욕망이 끓어오르기 시작했지…….(74~75쪽)

이반 투르게네프의 소설이라는 점이 처음에는 생소했지만, 이 책을 읽어나가며 신선하다는 느낌으로 변화했다. 보통 고전은 읽기에 힘들거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 등 거리감이 느껴지는데, 몰입도가 뛰어난 소설이었다. 문장이 좋아서 기회가 된다면 그의 시도 찾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반 투르게네프의 중단편 소설 세 편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니, 이 책을 통해 이반 투르게네프의 소설을 만나보기를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