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기억 1~2 - 전2권 (특별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이 소설을 읽겠다고 결심한 데에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이라는 것 만으로 충분했다. 사실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서, 중간에 멈추기도 애매하고 계속 읽기도 지루한 그런 느낌이 정말 싫다. 이왕이면 시간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책을 읽고 싶었는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은 작가의 이름만으로 선택하는 작품 중 하나다. 작품마다 나를 사로잡았으니 이 책에 대해서도 기대를 하며 베르나르 베르베르 장편소설 『기억』 을 읽기 시작했다.

먼저 이 책 표지가 눈을 사로잡는다. 렌티큘러 표지라고 한다. 각도에 따라 사람도 나비도 달리 보인다. 1,2권이 비슷한 듯 다른 색상이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이미 마음을 열고 소설 속 이야기에 초대받을 준비를 한다. 자꾸 눈이 가고 들여다보게 된다. 이번에는 전생이다. 상상력의 거장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에 기대감을 가지고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이 소설 『기억』을 읽으며 시공을 오가는 상상속으로 들어가보는 시간을 갖는다.

최면사의 쇼 장면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솔직히 나는 최면, 전생, 그런 것들에 대해 믿는 건 아니지만 안 믿는 것도 아닌, '잘 모르겠다'는 의견이다. 증명할 수 없다고 없는 것은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멈춰있지만, 소설가는 역시 상상력의 작은 씨앗만 있더라도 크게 부풀려 나무를 만들고 열매를 맺는다. 최면사의 쇼에 나 또한 참여하는 듯한 마음가짐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한다.

이 책의 주인공은 르네 톨레다노. 역사 교사다. 우연히 전생을 알게 되었는데 전생을 오가며, 또한 현실인지 망상인지 헷갈리는 사건에 혼란스러워하며, 소설이 진행된다. 사실 전생 체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나라와 사회적 지위인 경우가 거의 다여서 남이 말하는 전생은 믿기가 힘들다. 전생이라는 것이 아예 없다는 부정적인 의견이 아니라, 아직 내가 체험하지 못한 분야로 남겨놓고 있긴 하다. 이 소설 속 주인공도 우연히 유람선 공연장에서 최면사의 쇼에 피험자로 선택되며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소설이 진행되며 이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상황이 펼쳐지고, 상상력의 끝은 어디인가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느낌으로 머릿속이 바빠졌다.




 

「만나서 반갑네, 르네. 내가 누군지 알고 있나?」

「알 것 같아요.」

「나는 자네 과거의 육신이야. 그리고 자넨, 내 미래의 육신이지. 나는 과거의 자네이고, 자넨 미래의 나지.」

「당신도 그걸 알고 있군요?」

「물론이네. <선행 명상>을 통해 내 후생들에 다녀올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자네 정신으로 들어가 자네 시대를 보지 않고 내 시대로 자네를 소환했네. 여기서 함께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 말이야. 그러는 자넨, 자넨 어떤 기술을 통해 나를 만나러 왔지?」 (1권 133쪽)

시공을 넘나드는 상상의 세계에서 함께 탐험하는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간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눈 앞의 나 자신만 보며 좁은 시야로 살다가 문득 이런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이라고 믿는 게 당신의 전부가 아닙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당신이 진정 누구인지 기억할 수 있나요?」 (1권 13쪽)




이번 소설은 최면을 통한 전생 여행을 소재로 하고 있어서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전생에 대해 다방면으로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 판도라의 상자 같은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기억의 문' 등 상상력의 폭이 이전보다 풍부해지며 그만큼 독자를 의심의 문턱 앞에도 데려다 놓았음을 느낀다. 이 책은 일단 읽기 시작하면 1,2권을 다 읽어야 직성이 풀릴 것이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니 말이다.

소설은 일단 읽기 시작하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끝까지 끌고 가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일들에 밀려 결국 마지막까지 읽지 못하고 중단하게 마련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은 그런 면에서 읽는 보람을 느끼게 해준다.

"눈을 감고, 긴장을 푸세요. 머릿속에 계단을 떠올린 다음 내려가 보세요. 무의식의 문이 보이시나요?"

사실 전생 체험에 성공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집중하려고 할수록 딴 생각에 빠져들며 나에게는 무의식의 문이 보인 적이 없다. 그러니 소설을 통해 대리 체험을 하는 정도로 만족한다. 이 소설을 읽는 시간 만큼이라도 이 세계를 인정하기로 한다. 마음을 열고 읽어나가면 이 책에서 펼쳐내는 이야기가 다르게 다가온다.

최면, 전생의 소재는 어떻게 엮어내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이번에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작품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모험을 떠나본다. 최면을 통한 전생의 기억을 부정하는 생각을 자극하는 대사를 통해 오히려 소설이 아니라 현실처럼 느껴진다. 아마 의심과 믿음, 두 가지 감정 속에서 혼란을 느끼는 일반 독자들에게 더 현실같은 소설로 다가오리라 생각된다.



「나는 내 안에 숨어 있던 다른 기억들에 접근했던 것 뿐이야. 그건 병이라고 부를 수 없어.」

「아니, 그건 조현병이라는 병이야.」

「나는 그것을 의식의 확장이라고 믿어. 올더스 헉슬리가 말했듯이 나는 새로운 지각의 문을 연거야. 그 유명한 록 밴드 도어스의 이름도 거기서 나왔지.」

「지금 농담하는 거야? <판도라의 상자>에서 한 경험이 네게 지각의 문을 열어 줬다고 우기는 거야? 넌 그것 때문에 현실에서 멀어졌어.」 (2권 15쪽)

 

주제와 변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새 소설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첫 작품 『개미』부터 신작 『기억』에 이르기까지 확장과 진화를 거쳐 온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은 한결같다. 순환적 세계관과 타자적 관점, 그리고 인간에 대한 낙관과 유머. (2권 397쪽_옮긴이의 말 中)

이 중 '순환적 세계관'과 '인간에 대한 낙관'에 특히 공감한다. 그래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을 읽으면 시야의 폭이 넓어지며 기분이 나쁘지 않아서 좋다. 육회처럼 시도해보기 힘든 겉모습이 아니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스테이크 같은 모습에 상상 이상의 소스가 더해진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맛을 느낄지는 독자의 몫이다. 한 번 시도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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