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리커버 에디션)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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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여울의 에세이라는 점에서, 특히 리커버 에디션이라는 점에서 읽어보고 싶었다. 정여울의 에세이는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어서 독서의 시간을 풍성하게 하기에 이 책도 기대되었다. 이 책의 표지에 보면 작은 글씨로 적힌 문장이 보인다. 표지 그림과 함께 '나는 20대에 놓쳐버린 기회보다 놓쳐버린 감성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말을 보며 흘러간 저 너머의 기억을 떠올린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해서 이 책『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을 읽어보게 되었다.


나는 20대에 놓쳐버린 '기회들'보다 20대에 놓쳐버린 '감성'을 이야기하고 싶다. 기회는 노력해서 다시 만들 수 있지만, 감성은 노력만으로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지식은 추구하여 얻을 수 있지만, 감성은 노력보다 그때 그 순간의 우연에 기댈 때가 많다. 게다가 20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감성 중에서도 '설렘' 같은 것은 정말 아무리 애를 써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첫사랑의 설렘을 억지로 조작해낼 수 없듯이, 나이가 들수록 순수한 설렘을 느끼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무슨 일을 새로 시작해도 대부분 웬만하면 설레게 되어 있는 20대야말로 '설렘'을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는 가장 멋진 시기가 아닐까. (33쪽)


 

 


이 책 프롤로그의 제목은 '서툴러서 상처밖에 줄 수 없었던 나의 20대에 사과하며'이다. 제목만 보고도 뭉클한 감정이 생기고 생각은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한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나만의 사색으로 채우는 시간을 갖는다. 프롤로그를 읽으며 열린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갈 마음의 준비를 한다.  

내가 한때 힘겹게 건너왔던 20대여, 당신은 아픈가. 당신은 많은 순간 아플 것이고, 또 많은 순간 괜찮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아픈가 아닌가'가 아니라, 내 아픔의 맨얼굴을 투시하는 용기다. 내 아픔을 관찰하고, 이해하고, 마침내 스스로 치유하는 용기를 얻기 위해, 이제부터 나는 여러분들과 '그때 알았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것들'에 대한 질펀한 수다를 떨어보고자 한다. (8쪽_프롤로그 中)


이 책을 읽으며 꾹꾹 눌러담은 사색의 깊이를 느끼게 된다. 이 한 권이 나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뇌의 시간을 보냈을까 한참을 생각해본다. 어느날 툭 나온 글이 아니라, 고르고 다듬고 재고 깎고 거르고 걸러서 읽는 이에게 진심이 와닿도록 전달해주는 느낌이 드는 글이다. 이 책을 통해 우정, 여행, 사랑, 재능, 멘토, 행복, 장소, 탐닉, 화폐, 직업, 방황, 소통, 타인, 배움, 정치, 가족, 젠더, 죽음, 예술, 질문 등의 키워드에 대해 생각에 잠기는 시간을 보낸다. 


평범한 사물들이 빚어내는 행복의 오케스트라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발견한 사소한 사물이 커다란 행복을 느끼게 해줄 때가 있다.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며 '아주 대단하고 멋진 장면을 찍어야지' 마음을 먹고 있다가, 하루는 저렇게 빨랫줄에 걸린 빨래를 발견하고 문득 걸음을 멈춘 적이 있다. 평범한 사물들이 이토록 애틋한 느낌을 자아낼 줄이야. 문득 평범하고 사소한 것들을 보면 눈물겨울 때가 있다. 아름답고 대단한 것들만 찾아다니다가, 평범한 사물들에게서 뜻하지 않은 감동을 받을 때다. 저렇게 단정하게 빨래를 널어놓은 집주인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아, 남들도 나와 비슷한 빨랫감을 널어놓고 사는구나' 하며 신기해하기도 한다. 그럴 때 느끼는 감정은 내가 이미 누리고 있는 이 삶에 대한 가없는 감사다. 그것이야말로 행복의 제1조건이 아닐까. (110쪽)


이 책에 담겨있는 글도, 사진도, 그림도, 나를 끌어당긴다. 폭넓게 물들여버리며 내 마음을 잡아끈다. 언젠가 나도 느꼈을 법한, 혹은 비슷한 상황이면서도 그 생각까지는 못했던 것을 인지한다. 즉, 보다 근원적인 깊은 곳까지 안내받는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간다. 잠시 일상의 속도를 줄이고 멈춰서서, 시간 여행, 인생 여행, 마음 여행을 하는 듯한 책이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지만, 나의 20대와 지금의 20대가 느끼는 슬픔과 두려움의 뿌리는 같다. 이 글을 시작하기 전에는, 나의 아픔과 여러분의 아픔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버티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내게 소중했던 청춘의 키워드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며, 다정한 댓글을 남겨주고 가슴 저린 편지를 보내주는 독자들의 사연을 들으며, 나는 우리 사이에 '다름'보다도 '닮음'이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363쪽_에필로그 中)

''다름'보다도 '닮음''이라는 표현 앞에서 한없이 생각에 잠긴다. 나의 20대, 당신의 20대, 그 누구의 20대든 20대 때에는 누구나 비슷한 마음으로 방황을 하는 가보다.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이야기하는 키워드들을 하나씩 곱씹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이 시간 만큼은 그 시기를 지나버린 상황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20대든 20대가 아니든 이 책을 읽으며 잊고 있던 감성을 끄집어내어 먼지를 털어내고 보듬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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