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대 감기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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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의 그림을 보면 실뜨기를 하고 있는 손이 보인다. 문득 붕대 감기라는 제목은 어떤 의미이며, 실뜨기 장면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심진경 문학평론가의 말에서 접점을 찾았다.

『붕대 감기』는 개별적인 각각의 점들이 조금씩 겹쳐지면서 전체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점묘화처럼, 누군가의 이야기가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와 겹쳐지고 이어지게 하면서 익숙하지만 낯선 여성들의 이야기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책 뒷표지 中)


윤이형의 소설『붕대 감기』는 페미니즘 이슈를 다룬 소설이다. 분명 지금 시대가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진 것이 사실이겠지만, 여전히 아닌 부분도 있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그 문제를 인식하기도 하고 눈치채지 못하기도 하며 살고 있다. 이 책에서는 사회적 문제를 소설이라는 장치를 통해 드러낸다. 쉽게 읽히지만 그 문제를 가볍게 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며 이 책『붕대 감기』를 읽어본다.




이 책은 윤이형 소설『붕대 감기』이다. 작가정신의 '소설, 향' 시리즈 중 한 권인데, 소설 '향'이란 향香을 담다, 반향을 일으키다, 向하다 등의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김사과의『0 영 ZERO 零』다음으로 이 책『붕대감기』가 출간되었고, 김이설, 김엄지, 임현, 정지돈, 정용준, 오한기, 백수린, 조해진, 최수철, 함정임의 소설이 '소설, 향' 시리즈로 출간될 예정이다.  


*작가정신 (소설, 향)은 1998년 "소설의 향기, 소설의 본향"이라는 슬로건으로 첫 선을 보인 '소설향'을 리뉴얼해 선보이는 중편소설 시리즈로, "소설의 본향, 소설의 영향, 소설의 방향"이라는 슬로건으로 새롭게 시작하고자 한다. '향'이 가진 다양한 의미처럼 소설 한 편 한 편이 누군가에게는 즐거움이자 위로로, 때로는 성찰이자 반성으로 서술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책 속에서)


이 책의 저자는 윤이형. 2005년「검은 불가사리」로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2014년, 2015년 젊은작가상, 2015년 문지문학상, 2019년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이 책은 처음부터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일단 펼쳐들면 막힘 없이 읽어나가게 된다. 격렬한 상황이나 강렬한 문장이 아니라 우리네 평범한 삶을 볼 수 있는 글이면서도 가독성이 좋아서 그런가보다. 다들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지만, 어쩌면 누구 하나 평범할 수 없는 그런 삶 말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인식을 못하거나 버거워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이렇게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점점이 연결되어서 흘러가고 있다. 미처 인식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 총체적인 모습을 이들의 이야기에서 엿본다.


이 소설을 읽으며 표현에 참신함을 느끼며 읽어나갔다. 슬슬 읽어나가다가 툭툭 내던져지는 말에 '아, 이런 표현이라니!'라는 생각으로 다시 되돌아가 문장을 곱씹는다. 예를 들면 '사람이 없이 방치된 집에서는 기다림이 오래되다 못해 가벼운 원한 비슷한 것으로 변해버린 듯한 냄새가 났다'라든가 '8개월이라는 시간은 견고해 보이던 것들이 삭아서 점점 구부러지다가 허리가 뚝 끊어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같은 문장에서 말이다. 비슷한 상황에서 공감하기도 하고, 너무도 가벼운 일상적 상황이지만 저자의 표현에 의해서 숨결을 불어넣은 듯 생생해져 그 모습을 떠올리기도 하면서 읽어나간다. 

 


또한 이 말이 마음에 맴돈다. 페미니즘 혹은 페미니즘이 아닌, 그런 무언가를 다 떠나서, 세상을 향한 공허한 동의보다는 상처를 주고받더라도 한 걸음 가까워지고 싶은 인간관계를 진경과 세연에게서 발견한다. 문득 뭉클하다.

같아지겠다는 게 아니고 상처받을 준비가 됐다는 거야. …… 다른 사람들이 아니고 너한테는, 나는 상처받고, 배울 준비가 됐다고! 네 생각이 어떤지 궁금하다고. 그러니까 아무 말도 안 하고 멀리서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는 일을 제발 그만둬. (158쪽)

 

넘어가는 책장도 되돌려서 문장을 곱씹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 소설만의 매력이다. 평소에 별 관심 없던 이슈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 소설의 힘이다. 소설을 읽으며 계속 읽느냐 마느냐에 대한 나의 느낌은 여기에서 갈린다. 즉,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듯한 이야기임에도 그가 풀어나가는 다음 이야기가 무지하게 궁금해질 때, 바로 그것이 독자를 끝까지 이끌어가는 추진력이다. 특히 소설만큼은 '내가 이 책을 왜 읽고 있는가'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을 싫어하는 독자이기 때문에, 끝까지 읽고 싶은 책을 찾게 되고 거기에서 보람을 느낀다. 이 책은 나에게 그런 힘을 보여준 책이다. 문장을 곱씹게 되고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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