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무엇인가 : 사랑의 과학화 - 자연주의 출산의 거장이 전하는 21세기 사랑의 의미
미셀 오당 지음, 장 재키 옮김 / 마더북스(마더커뮤니케이션)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나는 질병에 대항하는 법 대신 건강(good health)의 뿌리를 연구했던 내 지난날의 시각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5쪽)


누구든 의심 없이 의사는 질병을 치료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나마도 제대로 못하는 게 문제지만 사실 질병 치료는 의사 소임의 최저한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 수준 높은 의사는 질병의 기미를 미리 알아차리고 손을 씁니다. 가장 수준 높은 의사는 “건강(good health)의 뿌리를 연구”하고 함께 숙의합니다.


건강의 뿌리는 무엇입니까? 바른 삶입니다. 바른 삶은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사랑의 도저함은 어디서 발원합니까? 어머니의 낳음과 아기의 나옴에서 비롯합니다. 낳음은 받아들임의 완성입니다. 나옴은 들어감의 완성입니다. 낳음과 나옴의 맞물림이 모든 절속絶續의 근본입니다. 아름다운 절속이 건강이 발원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사랑이란 무엇인가 : 사랑의 과학화 - 자연주의 출산의 거장이 전하는 21세기 사랑의 의미
미셀 오당 지음, 장 재키 옮김 / 마더북스(마더커뮤니케이션)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누군가 말합니다.


“사랑이 뭐냐고 묻는 이가 혹 있거든 대답하지 마라. 아무리 말해도 모르거나 이미 알고 있거나, 둘 중 하나다.”


아마도 언어적 정의로는 포착할 수 없는 그윽하고 섬세한 경험의 차원이 있기 때문에 정색하고 저렇게 서늘한 자세를 드러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어 넘어 있는 실재의 지식도 느끼고 알아차리지 않은 채로 잠겨 있는 한 참으로 안다고 할 수 없을지 모르니까 부분의 오류를 무릅쓰고 일일이 하나씩 설명하여 정의를 구성해 나아가는 것이 현명한 자세일 수 있습니다.


둘의 차이는 침습 당했을 때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침습은 구체적으로 가시적으로 파고듭니다. 전체를 한꺼번에 단박에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설혹 한순간에 무너진 사랑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모든 것을 침습 당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침습 당했다고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참으로 그윽하고 섬세한 경험을 통해 아는 것이라면 하나하나 느끼고 알아차리는 각성이 있어야 그런 착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부분의 합이 전체가 아니라는 사실. 그러나 부분을 모른 채 전체를 아는 법은 없습니다. 흔히 명상·참선 따위로써 전체를 안다고 하지만 다시없는 착각입니다. 무엇보다 사랑은 명상·참선의 범주가 아닙니다. 하물며 어찌 그 대상이겠습니까.


사랑은 소소하게 닿고 미미하게 비빕니다. 몸으로 관통하고 흡수합니다. 격렬하게 아픕니다. 박탈감 없이 주고 미안함 없이 받습니다. 내가 죽어 네가 살고 네가 죽어 내가 삽니다. 내가 너고 네가 납니다. 올마다 결마다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사랑일진대 사랑은 물샐틈없는 과학입니다. 미셸 오당은 바로 이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에 힘입어,


우리가 말합니다.


“사랑이 뭐냐고 묻는 이가 혹 있거든 대답해라. 사랑은 그 물음이 발화되기 시작한 바로 그 소소한 닿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농부와 산과의사 - 개정판
미셀 오당 지음, 김태언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 이른 아침, 오십이 채 되지 않은 애제자 하나에게 말기종양이란 객이 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가 대학생일 때 만나 이십오 년 넘게 인연 지어온 사이인 만큼 새삼 무슨 생각이 드는 것도, 무슨 말이 떠오르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통화를 했습니다. 그는 소리 내어 웃으며 말했습니다.


“쌤, 제가 본질적 예수쟁이잖아요. 마음 편합니다.”


저는 살짝 바꾸어 맞장구 쳐주었습니다.


“그래, 너 근본적 예수쟁이지.”


애써 예리하게 서로 차이 낼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 언어 감각에서 ‘본질’은 타고난 숙명의 냄새가 나고 ‘근본’은 천명으로 받아들이는 결단의 냄새가 나기에 그리 바꾼 것입니다. 하여 그의 음성에 공현을 일으키는 제 음성에 찰나마다 결절이 맺혔습니다.


스스로 인정하듯 그는 무한히 참고 견디고 받아들이는 삶으로 일관했습니다. 그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주지 않자 몸에 십자가가 지워진 것입니다. 지난 삶의 빛으로 오늘 그에게 일어난 일을 보면서 이는 비단 개인의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불에 덴 듯 깨닫게 됩니다. 우리사회 전반이 바로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한히 협박하고 속이고 때리고 빼앗고 죽이는 권력을 무한히 참고 견디고 받아들이는 대한민국 백성에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누가 어찌 모를 수 있단 말입니까.


제대로 된 눈으로 지금 현실을 보면 우리사회는 물론 인류사회 전체가 어떤 근본적 지점을 향해 돌진하는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권력과 자본, 그리고 종교가 공통적인 광기에 휩싸여 서로 부추기며 달리고 있습니다. 이 질주를 멈추게 하려면 저들의 통속한 강력과는 전혀 다른 공감의 약력을 써야 합니다. 산업 문명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관통하는 단도직입의 근본 감각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가장 급진적입니다.


가장 급진적인 것은 딱딱하고 뻣뻣하고 크고 분명하지 않습니다. 말랑말랑하고 낭창낭창하고 작고 모호합니다. 말랑말랑하고 낭창낭창하고 작고 모호한 감각으로 말로 몸으로 마음으로 삶으로 연대로 하는 혁명이 농투성이 혁명이며 어미 혁명입니다. 소미심심小微沁心의 혁명입니다.


농투성이 혁명은 좁쌀 한 알, 굼벵이 한 마리 , 아니 흙 한 줌의 혁명입니다. 어미 혁명은 ‘다른 세상’의 욕 한 마디, 옥시토신 한 방울, 아기 눈동자 하나의 혁명입니다. 이것이 장엄한 하느님 나라입니다. 아미타 정토입니다. 소미심심小微沁心의 영성 없이는 오지 않을 꿈입니다. <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