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위대한 질문 - 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위대한 질문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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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라함은 주위 사람들, 특히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처지를 자신의 일처럼 여기고 처음 보는 사람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맞이했다. 한순간에 자신은 없어지고 상대방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105쪽)

  신은 공중부양을 하거나 축지법으로 종횡무진 하는 자가 아니다. 우리가 만든 종교의 교리 안에 힘없이 감금된 포로도 아니다. 신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때때로 만나는 ‘낯선 자’다. 우리가 낯선 자를 그냥 지나치거나 아무런 감정 없이 대하면 말 그대로 낯선 자가 되지만, 우리가 그를 내 몸처럼 사랑하고 대접하면 그는 우리에게 신이 된다.······아브라함·······의 신은 요란하게 천둥번개 속에서 등장하지 않고 땀과 눈물로 범벅된 일상에서 자신을 드러낸다.(109-110쪽)


신약성서 마태복음 25:31-46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지극히 작은 낯선 자가 바로 하나님임을 설파한 장면입니다. 굶주린, 목마른, 정처 없는, 헐벗은, 병든, 옥에 갇힌 어려움에 처한 자가 지극히 작은 자입니다. 그 지극히 작은 자가 나와 내 가족이 아닌 생면부지 남일 때, 비로소 지극히 작은 낯선 자 하나님이 됩니다. 이 지극히 작은 낯선 자 하나님을 만나려면 기득권을 모두 버리고 그 기득권으로 가득한 자기 영지를 떠나야 합니다, 빈손 들고 낯선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중심을 벗어나 변방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낮은 곳에 엎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참으로 나를 위하는 일입니다. 참으로 나를 위하는 일는 언제나 남을 위하는 일 속에 있습니다. 예수가 말했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 이상 어떤 말도 덧붙일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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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위대한 질문 - 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위대한 질문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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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에 있는 플리트 센터에서는 대선에 출마한 민주당 존 케리 상원의원의 지명을 위한 민주당원 모임이 있었다. 존 케리 의원은 당시 무명에 가까운 한 인물에게 찬조연설을 맡겼다. 그는 일리노이 주 민주당 상원의원에 출마한·······버락 오바마였다.

  ·······그의 연설은·······이러한 말을 건넨다.


저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저는 제 형제를 지키는 자입니다. 저는 제 자매를 지키는 자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나라를 작동하게 합니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개인적인 꿈을 추구하지만 미국이라는 하나의 가족으로 모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럿으로 구성된 하나E pluribus unum입니다.·······


  오바마가 말한 “저는 제 형제를 지키는 자입니다.”라는 구절은 <창세기> 4장 9절과 깊은 연관이 있다. 신이 아벨을 살해하고 숨어 있는 가인에게 “너의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가인은 질문으로 답한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오바마의 연설은 가인의 질문에 답한 것이었다.


  ·······주사위는 이제 우리 각자에게 던져졌다. 당신은 나만·······지키는 자인가. 아니면 우리사회 안에서 불행을 겪는 모든 이들을 지키는 자인가. 신은 우리 모두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라고 묻는다.(80-82쪽)


“최순실이 국민들 싫어할 일은 다 하고 다녔다. 내 앞에선 그냥 조용히만 있어서 그런 일 했는지 전혀 몰랐다.”


이른바 대통령이 가장 최근에 한 말입니다. 물론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그는 거짓말을 통해서도 진심을 드러냅니다. “너의 아우 순실이가 어디에 있느냐?” 국민의 물음에 이리 대답한 것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시민은 이제 이런 유체이탈 어법에 반응조차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이런 짓을 되풀이합니다. 머릿속에 오직 자신 밖에 없는 그가 바로 ‘가인’입니다. 그 가인은 이미 ‘아벨’, 곧 수많은 국민 아니 국민 전체를 살해했으면서도 시치미를 떼고 있습니다. 마침내 ‘오장육부’였던 아우마저 죽이려고 되묻습니다. “제가 순실이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참으로 참담합니다. 대통령이라 불리는 사람의 입에서 이런 유의 말들이 마구잡이로 튀어 나와 돌아다니는 나라 꼬락서니가 비할 데 없이 비참합니다.


아메리카합중국 시민을 감동시키며 등장한 오바마 대통령이 실제로 아메리카합중국의 형제·자매를 지켜내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모양입니다. 재선했고 마지막까지 지지율이 매우 높은 것을 보면 말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대한민국 형제·자매는 그의 형제·자매 범위에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범죄 행각, 특히 대선부정과 세월호사건의 진실을 전혀 몰랐다고 하기에는 그의 자리가 너무 막강했습니다. 그의 막강함이 대한민국 형제·자매에게는 종잇조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우리에게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클레이튼 커쇼가 메이저리그 최우수선수로 뽑힌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일국의 대통령이 될 사람의 입에서 나온 이런 말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만일 시카고 남부에 글을 읽지 못하는 소년이 있다면, 그 아이가 제 아이가 아닐지라도 그 사실은 제게 중요합니다. 만일 어딘가에 약값을 지불하지 못하는 노인이 의료비와 월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가 제 할머니가 아닐지라도 제 삶마저 가난하게 됩니다. 만일 어떤 아랍계 미국인이 정단한 법적 절차 없이 체포당했다면, 그것은 제 시민권에 대한 침해입니다.”(81쪽)


생때같은 아이들 250명이 죽어가는 7시간 동안 국가원수가 공식집무를 이탈해 있었던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꿈도 꿀 수 없는 이야기 아닙니까. 일본제국주의 성노예로 희생당한 어르신들을 10억 엔에 팔아먹고도 국민을 야단치고 협박하는 이른바 대통령 입에서는 도무지 나올 수 없는 이야기 아닙니까. 최순실 말 듣고 수많은 국민의 생존이 달려 있는 개성공단을 폐쇄해버리고도 뭘 잘못했느냐고 반문하는 최고 헌법기관에게 어찌 기대할 수 있는 이야기이겠습니까. 오바마가 박근혜 자리에 있었다면 어떤 정치를 펼쳤을까 상상해봅니다. 미합중국보다 훨씬 못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제 곳간만 채우는 매판독재분단세력의 강고한 카르텔에 맞서 싸워 이길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일 또한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최순실이 국민들 싫어할 일은 다 하고 다녔다. 내 앞에선 그냥 조용히만 있어서 그런 일 했는지 전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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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위대한 질문 - 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위대한 질문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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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꼭 이루어야 할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그것을 이루기 위해 지금 어디까지 왔는가? 에덴동산에서 방황하던 아담과 이브처럼, 삶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우리에게 신은 묻는다.


“너는 어디에 있느냐?”(56쪽)


איכה(아예카) 딱 한 단어 초 간단 의문문으로 신은 인간에게 처음 묻습니다. 심오해 보일 것이 전혀 없는, 그저 어디냐는 물음입니다. 하지만 본디 시제가 없는 표현이므로 이 물음은 과거-현재-미래를 관통합니다. 관통함으로써 형성되는 방향과 위치를 모두 머금게 되는 것이 이 물음의 지평입니다. 목적과 목표의 여부, 여하를 모두 향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존재로서 합당한가, 심지어 현재의 심리 상태까지 겨눈 물음입니다.


신의 언어로 자신에게 물어본 적이 있으신지요.


“너는 어디에 있느냐?”


신의 언어는 그러면 무엇일까요? 내 안의 타자에서 시작하여 우주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인간의 자아에서 시작하여 물방울 하나에 이르기까지 소미한, 대칭의 관통이 바로 신의 언어입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저기서부터 여기까지 흐르고 번지는 것이 바로 신의 언어입니다. 우리는 요 몇 주간 신의 언어로 묻는 일을 계속해왔습니다.


토요일마다 광화문 근처에서 누군가와 통화할 때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묻는 것은 너 어디냐, 입니다. 이것은 물론 매우 단순한 목적을 지닌 간결한 물음이지만 통화자 상호간에 이미 전제된 더 큰 목적을 품고 있습니다. 민주공화국, 그러니까 우리 현실에서 추구할 수 있는 하나님나라를 머금은 물음입니다. 어떻게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서로 묻는 것입니다. 때로는 놀이처럼 때로는 제의처럼 그렇게 백만 개의 물음을 빚었습니다.


신의 언어로 우리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어디에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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