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에서 온 것 아니면 그 무엇도 참으로 안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은 진실이 아니지만, 경험하지 않으면 제대로, 아니 전혀 알 수 없는 것이 있다는 말은 진실입니다. 몸으로 알아야 할 것이 무엇보다 그러합니다. 몸에 가까운 앎일수록 경험은 육중한 표지입니다.


인간의 감정은 근본적으로 직접적인 몸 느낌의 파동정보입니다. 그 직접적인 몸 느낌에서 비롯하여 겹과 결이 다양하게 갈라져 나갈 뿐입니다. 공포-불안-공황은 가장 직접적인 몸의 감정에 속합니다. 병리적 공포-불안-공황은 간접 경험이나 이론으로는 전혀 앎이 일어나지 않는 감정입니다.


한숨과 한숨 사이로, 나직나직 속삭이듯, 재빨리 말하는 청년과 띄엄띄엄 몇 달 동안 상담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출생 직후부터 10대 초반까지 어머니 아닌 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연속과 인정, 그리고 수용으로 이어지는 모성은 그에게 그리움과 원망으로 존재할 뿐이었습니다. 그는 단절과 부정, 그리고 거부가 몰고 온 공포·불안, 고립, 무력감에 휘말려 버둥거리고 있었습니다. 학령기 이전부터 시작된 정신장애는 청년 초기 정점을 찍었습니다. 정신병원에 입원하고야 말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족은 그의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소심하고 무능해서 그러니 다 제 팔자지 어쩌겠나, 정도로 방치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같은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나는 버려졌다, 나는 (사회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 나는 남들이 무섭다, 남들은 나를 모른다, 남들은 나를 (모르면서도) 비난한다, 나는 순수하고 진실한데 세상은 부조리하다·······. 저는 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면서 조목조목 딱 하나의 같은 질문을 반복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처음에는 화를 내며 아, 정말이라니까요, 하더니 점차 그는 제 질문의 실체를 알아차리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물론 아닌 거 다 압니다. 그런데 아는 대로 움직일 수가 없네요,”


저는 그렇지 않은 맞은편 진실을 단순명료하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렇게 조금 씩 조금 씩 세상 쪽으로 돌아서는가 싶더니 어느 날부터 홀연히 발길을 끊었습니다.


그와 함께했던 시간을 돌아보면서 제게 부족한 점이 무엇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사실 그 무렵까지 마음 치유하는 의자로서 제 관심사와 감각은 우울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경험이 가져다준 알토란같은 앎으로 말미암아 우울은 훤히 들여다보였습니다. 아픈 사람의 체취만으로도 우울장애의 유형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픈 사람의 마음결에 스미듯 깃들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길이 머무는 곳을 정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불안 쪽은 사뭇 달랐습니다. 가벼운 정도의 고소공포를 제외하고는 공포·불안 계통의 병리적 경험이 없었던 탓에 기본 감각과 공감능력이 우울장애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약물치료만 하면 되는 정신과 양의사라면 크게 문제될 게 없지만 상담,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상호소통을 하려는 저로서는 여간 답답한 노릇이 아니었습니다. 이론적 대응만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터라 막막해서 두려운 상황이 그때그때 연출되었습니다. 이런 동요는 분명히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이 청년과 더 좋은 인연을 맺지 못한 자책감에 잠겨 있던 어느 날 제게 하늘이 주신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제가 공적인 공격을 받아 제법 긴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공포·불안에 시달리는 사건이 터져버린 것이었습니다. 다수의 관공서를 드나들며 겪은 공포·불안은 어린 시절 가족 간에 겪은 그것과는 결이 달랐지만 그 뒤 공포·불안 스펙트럼 환우들과 마주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 청년을 지금 만난다면 어떨까, 부질없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때 저와 나눈 대화가 마냥 무용했다고 할 수는 없고 어떤 형태로든 효과를 나타냈으리라는 추측도 해보지만 여전히 그의 그 뒤 삶이 궁금 넘어 걱정됩니다. 지금이라도 조금이라도 평안의 땅으로 나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먹는 인간 - 식(食)과 생(生)의 숭고함에 관하여
헨미 요 지음, 박성민 옮김 / 메멘토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4년 봄, 박근혜가 자행한 대학살 이후, 나는 줄곧 울보로 살았다. 눈물이 주책없지는 않아졌을 무렵 어느 날, 책 한 권에 인연이 닿았다. 누가 추천한 것도, 어디서 서평을 읽은 것도 아니다. 책은 다만 그 흑백의 얼굴을 하고 진열대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나도 스치듯 지나다 문득 보고 손을 내밀었다. 책을 읽으면서 다시 눈물이 주책없어지고 말았다.


‘내가 먹는 음식이 곧 나다.’라는 진부한 말에는 그 진부함을 골백번 받아 안고도 남을 진실이 있다. 논자마다 다른 말을 할 수 있을 테니 나는 그저 내 이야기를 하겠다.


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이따금 육식도 한다. 홀로 일부러 육식을 하는 경우는 거의 전혀 없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그를 내 생각에 말아 넣지 않으려고 흔쾌히 먹는다. 홀로일 경우는 국수에 얹은 쇠고기 고명조차 빼고 먹는다. 이런 경향성은 내 삶의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1950년대 중반 강원도 평창의 깊은 산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먹을거리를 포함한 삶의 조건 전체가 식물적이었다. 나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식물과 각별한 애착을 형성하고 있었다. 색깔, 모양, 냄새, 감촉, 소리 모두에서 민감했다.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연두 빛 아기 호박, 앙증맞게 허리가 휜 새끼손가락만한 오이, 석유 냄새 비슷하던 돌미나리 향, 까만 흙을 털어내면 드러나는 하얀 햇감자의 매끈한 피부, 바람에 서걱대는 옥수수 이파리·······모두 10살 이전의 기억인데 한사코 순도 99.99%의 선명함을 자랑한다. 이들을 내가 단순히 먹을거리라는 수단으로 인식하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여전히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식물들과 생명의 연속성에서 두텁게 이어져 있다.


내가 채소를 먹는 것은 이른바 먹방에 출연한 연예인들이 고기를 먹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아니 그들이 채소를 먹는다 해도 그 또한 나와 다르다. 나는 적어도 포르노를 찍지는 않는다. 먹는 행위에 담긴 거룩한 제의와 흥겨운 놀이의 의미가 역설적 일치를 이루도록 하는 섬광 같은 순간이 전혀 배제된 경우란 내게 있을 수 없다. 그게 내가 체득한 강원도 산골 표 ‘먹는 인간’의 정체성이다.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된다. 10살 이후 겪은 도시빈민의 삶, 서서히 그러나 단단하게 자라난 사회정치적 각성, 그리고 의자로서 실천해야 할 과제가 결합된 ‘먹는 인간’의 정체성이다. 여기에는 대단히 선명하면서도 복잡한 판단 기준이 얽혀 있다. 먹는 행위를 가로질러 정치적 올바름, 반 향락적 절제, 산업농 비판은 한 끼 식사마저 무심코 할 수 없게 만든다.


이런 고뇌를 안고 있던 차에 고요히 닿은 『먹는 인간』은 지독한 가난의 기억에 연결된 내 소울 푸드 중용국수 한 그릇마저 부끄럽게 만들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눈물과 함께 읽었다. 감정이 이끄는 대로 계획 없이 몇 마디 적어보기로 한다. 출발점은 여기다.


“본디 도道는 먹는 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군가를 수탈한 사람은 수탈당한 사람이 얻은 이득(이라 간주하는 것)을 들이미는 적반하장으로 합리화하기 마련입니다. 지주는 소작농이 자기 소유의 논두렁에서 콩을 수확했다고 주장합니다. 성폭행한 자는 상대방도 즐겼다고 주장합니다. 일제(와 그 부역자인 뉴 라이트)는 식민통치가 조선을 근대화했다고 주장합니다. 박정희와 유신잔당은 개발독재가 우리를 보릿고개에서 해방했다고 주장합니다.


부모, 특히 아버지한테서 학대당하고 적반하장의 합리화에 20년 이상 시달려온 청년이 한껏 피폐해진 영혼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내면 정체성이 아버지를 부정하는 에너지로 형성되어왔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배우자나 자녀를 대하면서 아버지 그림자가 드리워진 자신 모습에 진저리친 적이 많았습니다.


자신에게도 혐오 감정을 지닐 수밖에 없는 아버지‘표’ 현실이 죽도록 싫었습니다. 아버지‘표’ 현실은 힘이 매우 셌습니다. 어머니도 결국은 아버지의 부역자일 따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돈을 쥐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애면글면하지만 여전히 쪼들리는 생활 속에서 배우자도 자녀도 순간순간 미워지기 일쑤였습니다. 날로 까칠해지는 영혼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매우 이성적·논리적인 분위기를 풍기면서 그에 걸맞은 언어를 구사했습니다. 이 풍경은 그의 상처반응 또는 방어기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한 박자 늦게 알아차린 것이 제 실패였습니다. 그는 첫 상담을 마치고 나서 장문의 비판 글을 온라인에 올렸습니다. 의사가 공감은 않고 자기 틀로 분석만 하더라가 요지였습니다. 저는 심한 당혹 속에서 진심 어린 사과 글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제 글을 보고 자신의 글을 신속하게 내렸습니다. 저는 제 글을 그대로 두었습니다. 두고두고 보며 제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였습니다.


저의 정서적 공감과 지지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뒤에도 그는, 공개 글은 아니지만 이런 사후 비판을 계속했습니다. 긴 호흡이 필요한 문제였습니다. 몇 번의 고비를 넘겨야 할 문제였습니다. 아직은 그에게 이 지구력을 요구할 시점이 아니었습니다. 수입은 멈춘 채 있고 시간은 흘러갔습니다. 이 어긋남은 끝내 우리의 만남도 어긋나게 하고 말았습니다.


수탈자는 피수탈자가 방어할 힘이 없을 때를 노려 덮칩니다. 당하고 난 뒤, 복원은 불가능합니다. 보상도 보복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그때 맞서는 것만이 길입니다. 그때그때 맞서는 것이 계속 지체될 경우 피수탈자에게는 회한, 자책을 담은 상처반응, 방어기제가 쟁여집니다. 마음치유 행하는 자가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뼈아픈 진실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인간의 어리석음은 무지에서 오지 않는다. 무지를 넘어서는 과정 가운데 불안과 탐욕이 개입해 맥락과 절연된 지식 포르노에 몰두하게 된 데서 온다. 지식 포르노는 자신보다 훨씬 더 큰 무지를 끌어들인다. 그럴수록 지식 포르노는 극단으로 천착해 들어간다. 천착주의에 빠진 지식 포르노는 통제가 불가능하다. 통제 불가능한 꼭 그만큼이 어리석음이다. 어리석음은 결국 문명현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다시는 볼 수 없을 듯합니다. 그는 순도 99.99%의 우울장애 전형이었습니다. 모든 우선순위가 타인에게 있었습니다. 모든 중심이 타인에게 있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맨 뒤에서 주춤주춤 따라 걸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변두리에서 자신을 떠나고 있었습니다.


그는 상담 내내 미안하다는 말을 무수히 반복했습니다. 어째서 미안하냐고 물으니 그가 서슴없이 대답했습니다.


“못나서요.”


그는 자신이 못나서 부모에게도 형제자매에게도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얼마나 절절했던지, 처음에 가슴이 먹먹하다가 나중에는 부아가 치밀어 올라왔습니다. 부아를 삭이면서 저 또한 절절한 심정으로, 뭐가 어떻게 못났는지 물었습니다. 그가 웅숭깊게 대답했습니다.


“태어난 것 자체가요.”


그의 팔목, 아니 팔에는 무려 20개에 가까운 칼자국이 있었습니다. 미안해서, 못나서, 그는 긋고 또 그었습니다. 살아 있으나 죽은, 사람이나 유령인 채 잘난 사람들 언저리를 떠돌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돈이 있을 리 없습니다. 치료 받는 것도 미안하고, 돈이 없는 것도 미안하고, 그냥 와서 치료 받으라고 간곡히 권하는 제게도 미안해서, 결국 그는 두 번 다시 오지 못했습니다.


오래 전 딱 한 번 마주한 얼굴인데 잊히지 않습니다. 그가 아직도 건강을 되찾지 못 하고 아프디아프게 살고 있다면 여기에 제 책임도 없지 않다는 죄책감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