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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9일 일요일 나는 한강진역에서 출발해 한남동 백악산을 한바퀴 걷고 다시 한강진역으로 돌아옴으로써 명신이 아방궁을 포위했다. 그들이 포박되기를 간절히 바라서다. 공수처는 실패했고, 그래서 민주노총과 응원봉 시민이 아방궁 앞으로 진격했다. 202514일 토요일 나는 진료를 서둘러 끝내고 다시 한남동 백악산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경의 중앙선 한남역에서 내려 독서당로를 따라 올라갔다.

 

피로를 모르는 제전(祭戰)은 여전히 아니 더더욱 신명과 결기로 출렁이며 뜨겁다. 그 광경을 보면서 나는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는다. “여고생과 민주노총이, 성소수자와 전농이 이렇게 만나 얼싸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다 명시니, 그 집사람 서겨리 덕분이다. 너무나 고마워서 사면 없는 무기징역을 선물로 보낸다. 사형은 가벼워서 안 된다. 죽기보다 더 즐거운 깜빵생활을 길이길이 누리게 축복해야 마땅하다.”


 

오늘도 후원 음식 축낼 수 없어 잠시 한남오거리로 나와 소박한 음식점으로 들어간다. 옆자리 두 테이블에 강원도 철원에서 온 전농 전봉준 투쟁단 사람들이 저녁을 먹는다. 나는 주인을 불러 그들 밥값을 먼저 결제한다. 이 사실을 안 한 사람이 내게 와 소주 한 잔 따른다. 결코 잡담일 수 없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소주를 마신다. 이렇게나마 나는 용감하고 현명한 소녀들에게 진 빚 작은 일부를 갚는다.

 

감히 밤을 지새우지는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이 노릇을 어찌하나. 그러나 이 소심한 낭패감은 한강진 소녀와 민주노총 사람하곤 아무 관련이 없다. 202515일 아침 나는 SNS로 공지를 확인한 다음 여지없이 다시 한강진으로 간다. 눈을 고스란히 맞았던 키세스시민이 요지부동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K-민주주의 장엄한 풍경이다. 저들이 곧 생불이고 살아계신 하느님이다.


 

하느님들을 모시는 조그만 수도원이 그 옆에 있다: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쉼터와 화장실을 내주고 가벼운 음식까지 대접한다. 여의도순복음교회 꼬락서니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하기야 멀리 갈 며리도 없다. 바로 건너편에서 사탄 짓을 하는 전광훈, 신천지 떼거리가 있으니 말이다. 종교에 뭘 크게 바라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속한 이 사회를 위해 최소한으로 져야 할 짐만은 부디 져주기를 소망한다.


 

일요일 저녁은 가족과 식사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달래서 약속 장소로 간다. 순댓국을 먹으며 일상으로 돌아온 그 밤, 나는 이렇게 페이스북에 적는다. “···한남동 백악산 마루 가장 높은 나무 꼭대기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있다. 필경 까치일 터. 젊은 벗들과 밤을 지새우지 못했지만, 기쁜 소식 함께 기다릴 수는 있지 않을까, 하며 미안함을 껴안은 채로나마 잠을 청하려 한다.···”

 

대한민국에서 시민으로 사는 일은 어렵다. 여의도, 광화문, 남태령, 한강진 제전을 이끈 소녀들 가슴에도 희디흰 부채 의식이 존재한다. 그들은 한결같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라고 말한다. 하물며 나 같은 가장자리 늙은이한테 드리워진 검디검은 죄의식이야 말해 뭣하겠나. 특권층 부역자 헤게모니 블록이 져야 할 짐이지만,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기꺼이 진다. 저들을 인간이라고 여기지 않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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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이니 을사년이니 하는 용어는 태음력에서 나왔으므로 엄밀하게는 아직 갑진년이다. 을사년은 설날, 그러니까 양력 129일부터다. 을사년이 오기 전에 명신이 부부를 처단해야 한다. 그러기를 바라 일 년 가까이 스마트폰 배경 화면으로 갑진부(甲辰符)를 깔고 열 때마다 기원했다. 탄핵이 인용될 때까지 배경 화면을 바꿀 수 없다.

 

사실 이런 내 RITUAL은 명신이 부부가 용산에 똬리 튼 그날부터 일상 결절점에 자리 잡았다. 출퇴근 때 열차 진입을 알리는 음악에 맞추어 8자 진언을 올렸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일간신문 1면 머리기사를 보고 8자 진언을 올렸다. 숲과 물을 걸으며 저 사악한 두 아이콘 뒤에 우글거리는 특권층 매판 부역 세력 처단을 빌고 또 빌었다.

 

제국주의를 샅샅이 공부하면서 우리나라 부역 실상을 낱낱이 밝히려고 수많은 글을 썼다. SNS를 통해 전해지는 집회 소식을 따라 광화문, 여의도, 남태령으로 달려갔다. 기부와 후원, 하다못해 서명으로라도 세상 바꾸는 일에 참여했다. 변방에서 주춤거리며 다가간 발걸음이라서 부끄럽지만 이렇게나마 내 60대와 소담하게 이별했다.

 

출렁이는 회한으로 이 글을 쓰는 지금 한남동 가짜 대통령 공관에서는 공수처가 체포를 시도하고 있다. 사악하고 비겁한 명신이 집사람, 석열이는 결국 체포, 구속되고 파면당한다. 이 일이 확정되면 나는 스마트폰 배경 화면을 바꿀 테다; 내가 사랑하는 나무나 풀이나 버섯 사진을 콧노래 부르며 찾아볼 테다. 20251309:1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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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남동 매봉산을 걷기로 한다. 매봉산은 응봉산이다. 매는 우리말이고 응()은 매를 가리키는 한자어일 뿐이다. 본디 남산, 그러니까 목멱산 동쪽에 이리저리 넘실거리는 구릉들 전체가 응봉산이었다. 한남동 매봉산은 물론 금호산, 대현산, 무학봉, 응봉산으로 불리는 응봉산을 다 아우른다. 대부분 도시가 된 중구 동쪽, 성동구 서쪽 지역 상당 부분이 모두 응봉산이었다.

 

응봉산은 조선 초기 태종이나 성종이 매사냥을 나온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 실용뿐만 아니라 풍광이 뛰어나 평양 모란봉과 비슷하다 하여 경기 모란봉으로도 불리었다. 세종도 한강을 품은 이 풍광을 동호(東湖)라 하고 독서당을 지어 선비들 공부를 장려했다. 오늘날 지명에 동호나 독서당이 남아 있는 까닭이다. 그 가운데 여기 한남동 매봉산에 가장 높은 조망지점이 있다.

 

내가 한남동 매봉산을 걷기로 한 까닭은 서남 자락에 김명신과 윤석열이 도사린 대통령 관저가 있어서다. 다 아는 대로 본디 외교부장관공관을 김명신이 강탈하고 불법 증축까지 해가며 제 아방궁으로 써먹는 중이다. 혹시 산책로를 막아 놓거나 입구부터 검문하고 통과시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렇지는 않다. 군데군데 간이 초소와 군인을 배치해 두어 신경 쓰이게 하기는 한다.


명신궁 철조망

 

내가 스마트폰 지도를 보며 가는 모습을 보고 젊은 군인이 길 안내를 자청하기도 한다. 국회의장 공관 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걷다가 주민을 만난다. 짐짓 물어본다. “저는 초행입니다, 저기 철조망 너머에 뭐가 있습니까?” 아연 엄숙한 대답이 돌아온다. “청와대요!” 김명신이 사이비 무속인 말을 듣고 살기 위해 도망친 곳인데 정작 마을 사람은 청와대라 부른다. 아브라카다브라!

 

나는 준비해 간 정화수를 꺼내 청와대향해 세 번 따른 뒤 8자 진언을 올린다. 철조망이 끝날 때까지 걷는 동안 8자 진언을 멈추지 않고 올린다. 한남오거리로 내려와 간단히 점심을 먹고 대사관로 따라 걸어 출발 지점인 한강진역으로 되돌아간다. 이로써 내란 수괴 영성 포위를 마친다. 포위해 놨으니, 누군가 포박해 가겠지. 나는 깊이 호흡한 뒤 가족에게 가는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 안에서 생각한다. 이제부터 내게 한남동 매봉산은 한남동 백악산이다. 청운동 백악산 아래 청와대는 비었으니 여기 와서 발원함이 마땅하다. 갑진년이 다 가기 전에 오만방자한 쥐 두 마리 처단하도록 빌어 온 부() 영검을 이루려면 말이다. 여의도나 광화문처럼 한남동에서도 나는 혼자가 아니다. 여기서는 숲이 우군이며 동지다. 나는 인간, 그 너머 반제 반식민 전사다.


갑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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