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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의 심리학 - 익숙한 인생의 가치와 결별하라
폴 페어솔 지음, 전경숙 외 옮김 / 동인(김영길)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1. 저자 스스로 이 책이 출판되지 못하리라 생각했듯이 저 또한 (번역된) 이 책이 우리사회에서 주목받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반골적' 사유로 주류적 시장을 전복시키려는 음모(?)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지요. 배후가 누구냐고 다그칠 판이니 읽어 본 사람이 어디 권유나 할 수 있겠습니까?^^ 

2. 저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결혼과 성 치료 센터를 운영하는 신경심리학자이자 임상가입니다. 또 그 자신이 말기 임파종을 극복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가 삶과 학문을 통해 터득한 진실은 지금 미국을 필두로해 전 세계가 열광하고 있는 이른바 '자기치료주의'는 사기극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말하는 '자기치료주의'는 번역 상 어쩔 수 없는 측면이기는 하나 조금 부적절한 표현입니다. 아마도 그 내용은 이쯤 될 것입니다. 자기를 단절적 자율적 존재로 전제하고 그 자아도취적 환상을 최대한 부추기는 극단적 프로세스를 동원하여  이 사회에서 승자가 되도록 선동하는 사이비 마법. 

자기 긍정, 적극적 사고방식, 신념의 기적.......이런 유의 익숙한 표어들로 도배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자기계발/치유/위로의 기술은 이미 우리 사회를 제압하는 통치이념이자 종교적 신조로 자리잡았습니다.  이런 풍조를 깡그리 무시하고 정반대의 강령을 제시하는 것이 저자의 목적입니다.  

3. 저자의 사유 방식과 그가 제시하는 근거는 일단 부정할 수 없는 설득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처음엔 불쾌할 수 있지만 들어 보면 과연 그렇다 싶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그냥 지나치치면 안 될 중요한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른바 자기치료주의가 오늘날 이렇게 압도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린 것일까, 하는 의문의 지점이지요. 생각컨대 이는 서구 정신사의 거대한 파동적 흐름을 일별해야 풀리는 문제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저자의 사유는 각성된 고대(古代)정신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존재의 상호의존성을 꿰뚫어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것을 각성된 고대정신이라 할까요? 중세로부터 야기된 정신사적 왜곡을 바로잡아 원래 자리로 복귀했기 때문입니다.  

중세는 교회의 이름으로 초월적 인격신 아래 인간의 개별성을 매몰시키는 억압의 시대였습니다. 더군다나 기독교는 원죄 교리를 동원하여 인간이 존재론적으로 자기부정을 할 수밖에 없도록 강제했기 때문에 중세인은 총체적으로 자기모멸적 인간이었습니다. 

이 어두운 중세를 깨부순 것이 근대입니다. 인간의 개별성, 그리고 자기긍정을 신 앞에서 혹은 신을 짓밟고서 선언한 것이지요. 그 근대 정신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정치경제학적 무기를 앞세우고 지금까지 승승장구해 왔습니다. 이런 맥락에 슬그머니 무임승차한 통속 기독교의 전면적 세속화가 바로 자기치료주의인 것입니다. 

그리고보면 자기치료주의는 얄미우나마 근대적 정신 혁명의 계보에 속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지점은 우리로 하여금 뭔가를 숙고하게 합니다. 말하자면 이 책의 저자처럼 일도양단으로 '자기긍정'을 때려엎을 수는 없지 않느냐, 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는 것이지요. 

예컨대 우울증에 대한 저자의 이해는 조금 피상적입니다. 우울증의 본령이 지나친 자기부정 타인긍정에서 오는 존재의 무의미감, 아니 무(無: nothing) 감각일진대 거기다 대고 자기긍정을 버려야 한다고 꾸짖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물론 저자의 명제가 전체적으로 전략적, 의도적인 것임을 십분이해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적인 이의를 가지고 그의 사유 모두에 제동을 걸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는 사람은 그 나름대로 고유한 컨텍스트를 지니고 있는 법이므로 상호 소통이 일어나도록 독서를 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저자와 독자는 근대 정신의 극단화, 세속화를 넘어서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인간은  개별자인 측면이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타자와 분리될 수 없는 연대적 존재라는 사실, 더 나아가 보편적 우주와 합일되는 '영적' 존재라는 사실 또한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이런 점에서 저자와 독자는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아야 합니다. 

4. 아무튼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꼭 한 번은 읽어 볼만한 책임은 분명합니다. '반골적' 또는 전복적 사유가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임상가인 저도 읽다가 가끔 책을 덮고 스스로 지녀온 생각을 진심으로 흔들어 보았습니다. 

모두에 말씀드린 대로 아마 많이 읽히지 않았을 겁니다. 당연하겠지요. 그러나 그래서 더욱 권해드리고 싶군요. 아, 출판사나 번역자, 더구나 저자와 저는 아무 인연도 없습니다.^^ 

끝으로 읽을 때 주의하실 사항 하나만 더 얹어 드립니다. 저자의 사유를 드러내는 핵심적 단어인 '신중함'은 번역이 조금 아쉬운 바, 본디 아마 mindfulness일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는 불교의 명상이나 선(禪)에서 말하는 '마음챙김'을 영어로 옮긴 말인 듯합니다. 이것을 다시 옮기는 과정에서 번역자가 나름대로 숙고하여 선택한 용어인데 '신중함'만으로는 그 깊고 넓은 뜻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필요하신 분은 관련 서적을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실제로 마음챙김이란 제목의 책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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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심리학 - 상담학 총서 상담학총서
존 웰우드 지음, 김명권.주혜명 옮김 / 학지사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사람이라 하면 대뜸 정신과 의사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적 스승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두 부류의 사람들은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흐름 속에 있습니다. 실제로 정신과 의사들은 영적 스승들에게 없는 방법론적 측면을 염두에 두고 말하며, 영적 스승들은 정신과 의사들에게 없는 깨달음의 경지를 염두에 두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동시에 틀린 말입니다.

인격의 문제를 다루는 정신과 의사는 상대주의(色)의 틀에 갇혀 있으며 존재의 문제를 다루는 영적 스승은 절대주의(空)의 틀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개별적 생명체로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도정에서 인격 문제를 구체적으로 처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아야 하는 한편 인간 생명의 개별적 차원을 넘어서는 보편적 존재론적  차원이 있다는 사실 또한 여실히 보야야만 하기 때문에 진실은 바로 이 둘 사이 경계의 시공간에서 포착해야 하는 것입니다. 

존 웰우드는 이런 점에서 그의 삶의 경험이 그러하듯 정확한 관점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마음의 병, 특히 우울증 치유를 삶의 최고 화두로 삼는 사람으로서 의학의 한계를 넘나들어야 하는 경험을 할 때마다 이른바 영성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존이나 그리스도처럼 절대적 수준의 관통치유를 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아픈 이의 마음을 온통 감싸안고 통짜배기로 고쳐내는 내공을 향해 정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각에 도달하면서 의학과 깨달음의 통합을 모색하던 차에 우연히 존 웰우드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개인적으로는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물론 이런저런 기회에 쓴 글을 모으고 부분적으로 보완하는 형태로 만들어진 책이라 유기적 통일성과 뒷심이 떨어지는 흠을 안고있습니다. 우울증을 포함하여 부분적으로 함량이 떨어지는 곳이 더러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흠보다 내용이나 자세가 제시하는 이익이 워낙 커서 감히 일독을 권합니다. 아, 마냥 가볍지는 않다는 점 또한 기억해 두십시오. 읽다가 책을 덮고 그 의미를 머리에서 끌어내려 가슴으로, 몸으로 이해하기 위한 시간을 가져야 하는 대목도 있습니다.  

최근 들어 뇌과학적 접근이 신속하게 퍼지면서 마음의 치유 문제는 점입가경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뇌과학자들과 달라이라마가 함께한 학술 모임이 지성사회의 큰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사회가 어떤 수준에서 이런 흐름과 관계를 맺을 것인지 제 개인 능력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한의사로서 어떻게 반응하고 독자적인 인식과 실천의 얼개를 마련해야 할까, 생각은 온통 거기에 쏠려 있습니다. 어쨌거나 마음 치유 문제에 관심 있으신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하면서 어떤 울림과 공유가 일어날지 자못 궁금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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