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렌 암스트롱, 자비를 말하다 - TED상 수상자가 제안하는 더 나은 삶에 이르는 12단계
카렌 암스트롱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려운 문제를 맞닥뜨릴 때 줄곧 “그렇다면,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항상 어떤 사건의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정신을 더욱 확장해 스스로가 비슷한 조건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느낀다는 것을 상상하도록 한다. 그러한 과정에는·······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가를 자각하며 이해 한계를 경험하는 일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다.(198쪽)


증오나 적대감에서 벗어나

무한한 호의가 무제한으로 온 세상에 번져가기를!

서든 걷든, 앉든 눕든,

우리가 깨어 있는 한,

마음속에서 이런 사랑을 길어 올려야 한다.

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삶의 방식이다(숫타니파타1.18).(202쪽)



고등학교 동창 하나가 찾아왔다. 구십 줄 노모와 육십 줄 아내의 건강 문제 때문이다. 이야기는 결국 소통이란 화두로 흘러간다. 어머니는 주로 근거 없는 불안에서 비롯한 불신을 이유로 아들과 소통이 잘 안 된다. 아내는 주로 서양 의학적 단편 지식에 터한 불신을 이유로 남편과 소통이 잘 안 된다. 어머니와 또 다른 그의 불안, 아내와 또 다른 그의 무지가 개재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맺힌 곳을 자분자분 풀어준다. 끝으로 대화 방식을 조언해준다.


친구의 격을 넘어선 감사 표시와 함께 그가 일어선다. 그의 눈시울에 깨달음의 붉은 빛이 은은히 서린다. “알면 받아들인다.”


안다와 모른다, 이 비대칭적 대칭은 범주 대립이 아니다. 스펙트럼이다. 100% 안다는 없다. 100% 모른다는 없다. 안다와 모른다가 뒤섞인 흐름이 있을 뿐이다. 어느 쪽으로 더 기울어진 상태인가, 정확히 알 수 없다. 좀 더 정확히, 그러니까 전체 진실에 터한 안다 쪽으로 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뿐이다.


어찌 하면 좀 더 정확히, 그러니까 전체 진실에 터한 안다 쪽으로 갈 수 있는가. 맥락을 살피는 일이다. 진부한가. 진부하다며 진실에서 멀어지는 것이 더 진부하다. 맥락은 개체가 전체의 바다로 나아가는 데 필수불가결한 배다. 그 배를 저어가면 전체의 바다에 기어코 닿는다는 말이 아니다. 결코 닿지 못 할 전체를 끝없이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이다.


상상하는 나만이 참 나다. 참 나는 상상하는 너가 있어 참 나다. 상상으로 너를 알아간다. 알아감으로 받아들여간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안다, 받아들인다, 전에 몸에서 먼저 느낀다. 느낀다는 안다보다 몸에 가깝다. 몸에 가까워서 모른다에 가깝다. 모른다에 가까운 느낀다는 안다, 받아들인다, 과정이 진행되는 내내 고요히 흐른다. 마침내 모두 받아들였다는 오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살짝 덥석 잡아준다. 알면 받아들인다가 휴먼스케일 안에 살아 움직이려면 느낀다를 떠나서는 안 된다. 붓다의 회향,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차마 장엄을 선포하지 않고 왜 숭고에 머무르는지 잘 보여준다.


느낀다의 겸허가 배어든 상상으로 나가 너를 안다는 것은 지식 너머 지혜를 짓는다는 것이다. 지식 너머 지혜를 짓는다는 것은 지혜 너머 살아 움직이는 실재를 함께 나눈다는 것이다. 살아 움직이는 실재를 함께 나누는 것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비다.


친구가 문 앞에서 손을 내민다. “오늘 치료 고마웠네,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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