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의 집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먼저 읽어본 분들이 우울하다 우울하다 해서 읽기 전부터 지레 겁먹은 책이었는데..

우울하기는 하되, 아픈 내용이긴 하되 참으로 입에 붙게 말갛게 쓰인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재미가 다부지다고 해야하나. 하지만 인생의 고통이 그대로 농축되어있기도 하기에 타인의 고통을 재미라는 표현에 비할 수는 없고..

문체가 마음에 든다 말하는게 가장 나은 표현이겠다.

 

이상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가라는 권여선님의 책은 처음 읽어보는 책이었다.

그런데 이 책 절대 밝은 느낌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예사롭지 않은 필체하며, 자꾸만 생각나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고 해야할까.

 

삼벌레고개, 아래 사람들은 잘 살고 여유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윗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못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 그 중 우물집이 있었고 그 집에 한 가족이 이사를 온다.

새로 이사온 여자가 월남치마 휘두르고 달려와 잽싼 솜씨로 일필휘지 휘두르며 한문으로 계약서를 적어내려가는 것을 보며 잘난체하는 사람이라고 찍어버린 순분,(그녀는 그 집의 주인) 덕분에 새로 이사온 두 딸의 엄마는 새댁으로 불리게 되었고, 가난하지만 그 와중에도 늘 밝게 빛나는 모습으로 물도 씻어먹을 듯한 깔끔함으로 살림을 하고, 남편을 여태 정성으로 모시고 사랑하고, 아이들 또한 그렇게 말갛게 키워내고 있었다.

 

살림을 야무지게 한다는게 뭔진 잘 모르겠는데 표현이 이렇다

 

밑바닥에 눌었던 갈색 계란 물이 올라오고 새 계란 물이 밥알 사이로 퍼져 병아리색 계란 볶음밥이 되었다. 새댁은 구운 김을 부숴넣고 깨를 뿌리고 참기름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새댁과 원은 프라이팬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프라이팬 옆에는 깍두기 보시기와 보리차를 가득 부어놓은 양은 주발이 있었다. 밥은 따로 덜지않고 함께 먹었다.

"계란이 눌은 놈도 있고 덜 된 놈도 있고 찔깃한 놈도 있고 보들한 놈도 있으니 더 맛나지?"

"네 어머니, 이건 찔깃한 놈이에요."

"그래서 계란을 한꺼번에 안 넣고 반씩 나눠 넣는거다." 76.77p

 

새댁의 야무진 살림 솜씨는 주인댁인 순분네의 그것과 많이도 비교가 되었다.

순분네도 살림을 못하는 것은 아닌데 순분은 아들만 둘 금철과 은철이 있었고 새댁네에는 딸만 둘 영과 원이 있었다.

금철은 영을 좋아하고 은철은 원과 사이가 좋았다.

은철과 원은 나이가 일곱살로 동갑이었는데 둘은 참 일곱살 같지 않게 놀았다.

 

전직 교사 출신이었던 새댁이 워낙 야무지기도 했지만 아빠도 배움이 깃든 사람이라 그랬는지 원은 은철이 만나본 다른 아이들과 달리 야무지고 똑 부러지는데가 있는 아이였다. 둘다 예쁜 딸이었지만 유난히 많이 나오는 원이라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 원은 은철에게 스파이 놀이를 하자고 한다. 사람들의 이름을 알아내서 저주하기도 하고 하는 그런 놀이. 아이들은 참 잔망스럽다고 해야하나? 아뭏든 아이니까 가능한거겠지 싶은 그런 가벼움, 하지만 나중에 원은 자기가 저주한 자기 식구들의 불행이 다 자기 잘못인것 같아서 그만 엄청난 후회를 하고 만다.

 

영, 원, 희

일곱살 원이에게 희라는 인형 동생이 생겼다.

토우의 집이라는 이름은 그래서 붙은게 아닌가 싶다.

은철의 생각대로 희가 오고 난 이후부터 동네에는 나쁜 일들만 줄줄이 생겼다.

아는 분들도 돌아가시고, 우물집에도 계속 나쁜 일만 생겼다.

정말 너무 나쁜 일들이..

그 모든 일이 다 희가 오고 난 후부터인데.. 원에게는 이제 희만 남아있다.

 

아이들이 여간 빨리 크는게 아니라며 걱정하는 엄마, 엄마의 그 말까지 따라말하는 원, 그리고 원을 무조건 따라말하는 은철.

새댁이 정신을 놓고 나서는 순분이 새댁처럼 아이들을 건사하고 돌보지만 결국 그녀도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오게 될 뿐이었다.

 

잠시라도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는 것.

아빠는 왜 그리 큰일도 아닌데, 아이들이 정신을 놓을 정도로 무섭게 벌을 준 것이며..

그 아빠를 너무나 사랑한 엄마는 너무나 사랑하는 두 딸을 건사할 생각도 못한채 정신을 놓아버린 것이며.

그 중에서도 혼자서 이기적일 수 있는 언니는 자기 나름의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며.

그 모든 게 다 자기 탓이라 생각하는 어린 아이 원은 그대로 입을 다물게 되어버린 것일까.

 

슬프고 슬픈 그런 이야기였다.

사실 우울한 이야기 투성이라 다른 작가의 밋밋한 문체로 씌여졌다면 정말 지루하고 갑갑한 느낌이었을텐데..

이 작가님의 책은 참 다른 느낌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늘 해피엔딩만 좋아하고 발랄한 이야기만 좋아하는 나였음에도 이번 작품은 우울하고 갑갑한 내용이 소재가 되었음에도 그래도 끝까지 지루하지않게 읽었음을.

고백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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