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의 거짓말 : 성서 편 명화의 거짓말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북폴리오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명화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 마음대로 감상하면 더 좋겠지만, 가끔은 작가의 의중이 궁금해서, 혹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그 너머를 보기 위해 명화에 대한 해석이나 감상 등을 찾아 보게 된다. 명화의 거짓말이라는 책으로 그리스신화편을 읽어보고 와, 이 책 정말 재미나고 신선한데?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바로 일본인 나카노 교코의 책이었다.

이번에도 그 두번째 책이 나왔대서 기대를 하고 읽었는데 이번에는 성서편. 종교인들에게는 민감할 수 있는 주제라,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서평에도 어떤 덧글들이 또 달릴지 모를 일이지만 (작가 역시 그런 사람들의 수많은 이견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썼고 작가 후기에도 그 말을 덧붙였다.) 나카노 교코 방식으로 새롭게 재해석된 것만은 분명하였다. 수많은 일본인들이 기독교를 종교로 받아들이지 않기에 그들에게 기독교는 뭐랄까 거리감을 두고 바라보는 또다른 학문 같은 것이라 해야할까? 암튼 색다르게 느껴지는가 보다. 이 책에서도 기독교와 성서에 대한 그녀의, 여느 일본인과 다를 바 없는 그런 생각들이 그대로 느껴져 반영되었다. 심지어 일본 만화, 영화, 신 등과 비교되는 부분도 있어서 종교인들에게는 많이 껄끄러울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불편한 감정을 배제하고 읽는다면 궁금하고 호기심에 가득찬 내용이 된다는 것. (제발 이상한 덧글들이 안 달리길. 이 글에 대고 자신이 기독교임을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글에는 답글을 달지 않을 것이다. 몇 차례 비슷한 경험을 하고 나니 아주 기운이 쭉 빠졌기에. 난 순수히 그냥 책을 읽고 쓴 내 감상일 뿐이니까..자꾸 이상한 덧글들이 달리니 나 자신도 민감해진다.)

 

미술도 종교도 전공하지 않다보니, 아주 가끔 교과서에서 만나보거나 혹은 티브이 다큐멘터리 .. 간혹 이런 책을 통해 접하게 되는 명화등이 대부분이었다.

직접 유럽의 미술관 등에 가서 진품을 만나보면 더욱 영광스럽겠지만 아직 그런 기회는 얻지 못했고 말이다.

 

이 책에서는 기독교 정설에 입각한 성서 이야기만 다뤄지는게 아니라, 이교도라고 볼 수있는 그 외의 성경에 대한 이야기도 아울러 다루고 있다.

우리가 만나본 구약성서, 신약성서 외에도 수많은 버전의 아주 다양한 성서들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아주 최근에 알게 된 놀라운 이야기였다. 다만 정설로 받아들여지지 않기에 그 부분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았을뿐이라는거.

 

성서에 나온 내용들 중 의구심을 품을 여러 부분들에 대해 비 기독교인인 작가는 나름 예리하게 짚어내고 의구심을 표현한다. 그에 대한 여러 가설들이 있다는 것도 물론 언급을 한다. 다만 누구나 궁금증을 가질 수는 있다는 것이다. 나또한 늘상 궁금했던 점이 예수님 역시 유대인이었을텐데 왜 전세계사람들이 그토록 유태인을 싫어하는 것일까? 하는 부분이었다. 어른들께도 여쭤보고 나 역시도 여러 각도로 찾아봤는데 이 책에서 내린 결론도 내가 내린 결론과 비슷하였다. 유태인들이 예수님을 죽이고,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았기때문이라는 것. 심지어 본디오빌라도 자체도 예수님을 벌하려하지 않았는데, 유태인들의 강요로 벌하게 되었고 그는 손을 씻으며 자신은 이에 대한 책임이 없다(예수에게 벌을 내린 것에 대한)는 것을 분명히 하였고 이에 유태인들은 우리와 우리의 자손들이 그 책임을 질것이다 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답변으로 후대의 유태인들이 겪은 고통은 이루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영화 다빈치 코드가 놀라운 인기를 끌었듯이 성서에 담긴 여러 기묘한 이야기들은 나카노 교코의 시선에서 다소 적나라하게 혹은 호기심 가득하게 풀려나간다.

물론 그녀의 해석 자체도 한계가 있기에 어마어마한 역사를 지니고 해석되어온 성서의 모든 것을 파헤치기란 극히 어려운 일일터, 명화와 관련된 몇가지 그녀의 관점이 실려있는 정도일뿐이지만 말이다.

그녀가 지적한 몇가지 이야기 중 부각되지 않아 미처 간과하고 제대로 알고 넘어가지 못했던 부분 중 하나가.

아브라함은 이집트에 도착하자 아내 사라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당신이 정말 아름다운 여자라고 생각하오. 이집트인들이 당신을 보면 당신의 남편이라고 해서 나를 죽이고 당신만 살려둘 것이오. 그러니 나를 오라버니라고 부르시오."

그러더니 아내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사라를 파라오에게 헌상하고는 '양,소, 수나귀, 남녀 노예, 암나귀, 낙타'등을 받았다. 즉 자신의 목숨을 지키고 재산을 불리기 위해 아내를 왕의 첩으로 바쳤던 것이다. 이래도 좋은 걸까?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사라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남존여비로 일관된 <구약성서>는 그런 것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저 이무렵 사라는 이미 60세가 넘은 나이였다는 점만 언급한다.62p

성경에 나온 이들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 행한 행동치고 때로는 이해되지 않는 그런 이야기들이 꽤 많이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어렵게 얻은 자식을 죽여서 제물로 바치라 한 하나님의 시험도 무시무시했지만, (물론 그 시험의 경우에는 최종적으로 양을 보내주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지만)

살아남기위해 아내를 바친 아브라함의 이야기도 그리 아름답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나카노 교코의 명화에 대한 이야기들은 이런 류와 비슷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흥미진진할 수 있지만, 종교인들이 보면 반발할 수도 있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상징적인 의미 등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인간의 관점에서 해석하려 한 부분들이 제법 많았으니까.

 

종교서처럼 보이는 표지, (예수님의 십자가 그림을 표지에 실었기에)임에도 종교의 이야기만 다뤘다기보다는 비종교인의 관점에서 성서와 기독교 명화에 대한 여러 뒷 이야기들을 다뤘다는 게 더 분명할, 명화의 거짓말 성서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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