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주 - 진주를 품은 여자
권비영 지음 / 청조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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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의 권비영님의 신간이라길래 무조건 읽고 싶었다.

하지만, 제목에 여자 이름이 적혀 있어서, 그냥 그녀의 이러저러한 불륜 내지는 사랑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내가 잘못 짚어도 한참을 잘못 짚었다.

은주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으니까.

 

상처를 감싸 '진주를 품어 내려는 영혼들의 이야기'-뒷 표지의 말

진주는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운 보석을 얻기 위한 아픔은 조개의 부드러운 살이 찢기는 고통 만큼이나 쓰라리고 매서운 것이었다. 그 모든 것을 감내해야 진주가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진주란 보석은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은주라는 여인의 이름이 적혀있으나 전체적인 이야기는 다문화 여성들, 다문화 가족들에 대한 한국의 현주소와 같은 문제와 다문화와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없더라도 폭력의 대물림으로 인해 얼룩져버린 슬픔 등이 녹아있는 피하고 도망치려 하지만 결국 그 안으로 다시 되돌아오게 되고 그 아픔마저 다 끌어안고 살다 비로소 화해하고 이해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신랑이 출근하고 아이가 일어나기 전 그 잠깐의 시각동안 어제 오늘 책을 한권씩 읽었다. 물론 다 읽진 못하고 그때부터 읽기 시작해, 아이 등원 후의 시간까지 이어 마저 읽은 책들. 어제는 여름 빛을 오늘은 은주를 읽었다. 그리고 두권의 책 모두 다 재미있었다. 마음같아선 아이가 오기 전까지 한두권의 책이라도 더 읽고 싶었는데 백수가 바빠 죽는다더니 뭐 이리 딴 일에 신경쓸게 많은지 하루 한권의 책도 요즘은 간신히 읽어내고 있는 중이다.


어쩜 부모가 이럴수 있을까 싶은, 그런 이야기부터 시작을 한다.

다 큰 딸이 집을 나갔다. 어미란 사람은 다짜고짜 딸이 의지하고 지낸 친구 엄마를 찾아와서 딸을 내놓으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예의범절이라곤 도무지 엿볼수 없는 안하무인격의 엄마, 얼마나 몰상식하고 못되게 굴었는지, 얼마나 딸 아이가 상처를 받았을지 금새 상상이 간다.

아빠는 딸을 죽일듯이 때리고, 엄마는 딸이 버는 돈을 무조건 다 뺏어가고, 마치 딸이 자신의 금전 출납기인양 이제야 네가 날 배불려주는구나 이런 식으로 아이를 궁지로 내몰았다. 어디서 그런 착실한 딸이 나왔을까 싶은데, 요즘 아이 같지 않게 참하고 선량했던 은주는 부모의 그런 굴레에서 벗어나기도 힘들었거니와 너무나 당연한듯이 돈을 뺏어가고 구타하는 부모들의 모습은 정말 부모가 맞을까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그리고 친구 엄마인 성희의 엄마, 그녀는 은주에게 남다른 애정을 갖고 도와주고 보살펴준다. 하지만 그녀도 지금은 은주가 어디로 갔는지 알수가 없다.

다만 그 부모에게서 벗어나기를, 어디론가 제대로 숨기를 바랄 뿐이다.


성희네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 혼자 아이를 키워왔지만 여러 좌절과 시련이 있었음에도 의지하고 대화를 나눌수있는 가족, 딸아이가 있음에 안도하며, 스스로를 추스리기 위해 노력해온 성희의 엄마가 있었다. 여러 일을 해오다가, 지금은 다문화 가정의 한국어 강사로 나가며 봉사하는 삶에 열성을 보이고 있고, 그녀가 마음을 쓴 은주도 다문화 여성을 위한 한국어 강사로 활동하는데 동참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성희네에 우연히 하숙을 왔던 터키인 남자, 에민이 다문화 가정 여성들을 위한 영어 교육 등에 나서게 되었고 은주와 여러모로 마음이 맞고, 은주의 참한 모습에 반하여 둘은 서로 좋아하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집나간 아들에, 하나 남은 딸을 자신의 돈줄로 생각하는 은주 엄마에게 에민이 성에 찰리가 없었다. 은주도 한때 괜찮은 집안의 남자와 사귀어보기도 했지만 남자쪽에서 은주네 가정이 한참 처진다며 결혼을 파토낸적도 있었는데 말이다. 에민과 자유로이 만날수도 없고, 엄마 아빠의 옥죄여 오는 족쇄의 굴레는 너무나 심하고 은주는 그렇게 아주 멀리 도피를 한 줄 알았는데..

그 머나먼 제주까지 어떻게 엄마가 찾아왔을까? 혹시 경찰에 수배를 한 것일까? 은주는 가족에게 정말 개끌리듯 다시 끌려가고 말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은주네 이야기만으로도 머리가 아파 올 지경인데 사실 하나하나의 가정사들을 들여다보면 어쩜 이다지도..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집안의 가난때문에 한국에 시집온 다문화 여성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부정적인 시각(성희, 난희)에서부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아니, 그러기에 더더욱 불쌍한 그들을 끌어안고 보듬어야한다는 성희엄마, 은주 등의 사람들의 시각까지. 여러 생각이 동시에 부딪히기도 하고, 실제로 다문화 여성들의 행복하기만 한 삶보다 그렇지 않은 삶이 보이기도 한다.


대부분 남편과 20살 이상 차이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에도 남편과 알콩달콩 잘 사는 소피아 같은 신부가 있는가 하면, 소피아의 주선으로 시집을 왔지만 다른 동남아 남자와 눈이 맞아 가출하고 도망을 간 타냐 같은 여성도 있다. 그 어느 쪽도 현재 우리네 다문화 가정의 현실의 모습이었다.

또, 일본에서부터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 한국에 왔으나 그와 좋은 인연이 되지 못해 마냥 해바라기 신세로 기다리는 준코가 있고 자신을 옥죄고 집밖에도 못 나가는 남편 탓에 갑갑하지만 태어난 아기를 통해 고국을 보고, 유일한 희망이자 삶의끈으로 살아왔던 메싸는, 자신을 닮아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아들 현수가 못내 걱정스럽고 미안하기만 하다. 아들은 결국 집을 나가고 메싸는 정신없이 아이를 찾아다닌다.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데, 동남아에서 시집온 다문화 가정에 우리와 형제국가라는 터키인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나라의 폭력에 얼룩진 어려운 가정 등의 이야기까지. 그 모든 이야기가 한권의 소설 속에 이렇게 옹골차게 담겨있다는 것이 신기하였다. 내가 생각했던, 착각했던 은주라는 여자의 그저 사랑, 불륜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가 사랑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식으로 쓰여진 소설들은 많이 아쉽기만 했으니까.

은주와, 성희 엄마와 그리고 에민의 이야기, 그보다 넓게는 너도 나도 다 피해자이고 희생자일 수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나의 업보가 내 자식에게 이어질 수도 있고, 세상의 말종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선행을 하고 있는 나보다 나을 수 있다는 그런 이야기.

손가락질을 받을 자가 과연 누구일지. 책을 다 읽고 나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그런 책이었다.


은주. 한번 꼭 읽어봄직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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