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월
전민식 지음 / 북폴리오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어느 책에서던가 인터넷에서던가, 그런 말을 들은적 (혹은 읽은적)이 있었다. 아마도 어떤 책에서였을 듯 한데..

요즘 사람들이 구직을 하거나 할때, 그 사람들의 대인관계서부터 사소한 사생활까지, 그의 입사지원서에 적혀있는 이메일이나 페이스북 주소만 알고 있어도 금새 몇번의 클릭만 해도, 평소 그의 생활 습관이라거나 성격, 혹은 이성친구 여부까지, 어느 정도의 신상이 다 노출된다는 이야기를 말이다. 블로그에 아이들 사진 올리고, 실명 등을 공개하던 엄마들이 언젠가부터 아이들 얼굴 노출을 꺼리고, 실명이 아닌 다른 예명을 사용하고, 자신의 닉네임에서도 아이의 이름을 지우기 시작한 것도 그와 비슷한, 우리 아이에 대한 정보가 인터넷에 마구 노출되면서 혹시나 일어날지 모를 범죄에 대한 우려 때문일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정보도 참 무궁무진하지만, 그에 반해 우리가 모르고 있는 사이에 우리의 정보 또한 내가 모르는 누군가에게 은밀히, 아니면 아주 대놓고 치밀하게 흘러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개인 정보에 대한 큰 두려움 없이 한때 정말 어지간한 인터넷 사이트에 다 가입을 해둔 적이 있었다. 뭐 그게 큰 일일까 싶었는데, 요즘 개인 정보가 마구 노출되고, 해킹되는 것을 보면 두려움이 크게 앞선다. 카페 운영진으로 활동하는 곳에서도 가장 많이 하는 일 중 하나가 바로 스팸 게시글 등을 지우는 일이었는데, 그렇게 스팸 정지 처리한 아이디들이 보면, 대부분은 진짜 스패머가 아닌 아이디를 도용당한 경우가 많았다. 진짜 자기 아이디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지만, 운영진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스패머들의 덧글과 게시글을 삭제하고 아이디를 정지하거나 강제 탈퇴시킬 수 밖에 없다.

 

이야기가 살짝 새어 나갔지만 다시 13월로 돌아와서.

13월이란. 실제 없는 시간이다. 어릴 적에 읽었던 5월 35일이라는 책은 (읽을땐 아무 생각없이 빠져들어 읽었었는데, 다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실제 존재하지 않는 날이었다. 동화 속의 5월 35일에 방문한 곳은 아이들이 꿈꾸는 맛있는 음식으로 이루어진 동산 같은 그런 신기한 공간을 방문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런데, 이 책 속의 가상의 13월, 가상의 현실이라고 규정짓고 싶은 엉뚱한 세상은, 동화속 처럼 아름다운 공간이 아니었다.

지나치게 극단적일 수 있지만, 어디선가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으리란 법이 없는, 그래서, 갑자기 서늘한 한기가 올라오게 만드는 그런 소설이었다.

 

어른이 되고 나니 세상이 더이상 동화처럼 아름다울 수 만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소설 속의 주인공들에게는 무척이나 잔인한 세상이 아닐수 없었다.

인간들의 재미를 위해, 어려서부터 모든 생활이 다 세상에 생중계된 트루먼쇼의 이야기처럼.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재황이라는 청년은 관찰자 수인에 의해, 밥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모조리 보고서로 작성되어 어느 국가 기밀 연구소로 보내지고 있었다. 물론 본인은 전혀 모르게 말이다. 청년은 보육원 출신이었지만 준수한 외모와 명석한 두뇌로, 과 수석을 놓치지 않았고, 본인 스스로도 선하게 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 재황을 무너뜨리기 시작한 것은 광모라는 보육원 동기.

pc방을 운영하며, 여성들의 성매매알선 사업을 하던 광모는 재황에겐 더이상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과거 속 존재였지만 광모는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재황을 서서히 무너뜨려간다.

 

어느 정도인지 몰랐지만 재황의 분수에 맞지 않는다는 상류층 자녀였던 승희, 재황은 그녀를 마음 속부터 깊이 연모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보육원 출신 고아였기에 언감생심 감히 넘볼 수 없는 존재라 생각하고 스스로 담을 쌓고 살아왔다. 그녀가 먼저 다가오는 기적이 일어나기 전까지 말이다.

 

가난하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재황이 자신의 모든 비루한 과거를 딛고 스스로의 가치를 올려 승희와 걸맞는 존재(?)까진 안되겠지만 승희에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덜 꿀리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유명한 작가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재황은 판단하였다. 그리고, 그가 즐겨 읽었던 여러 소설에서 짜깁기해서 며칠만에 쓴 작품이 덜컥 대학내 문학상에 수상되면서, 승희는 재황에 대한 호감도가 더욱 높아졌고, 재황도 비로소 신분상승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의 작품이 표절임이 밝혀지면서 그는 나락으로 다시 떨어진다.

그리고 광모는 성매매를 할 여대생을 알선해달라며 무작정 재황을 닥달하다가 나중에는 사채 업자 협박까지 해가면서 그를 궁지에 내몰았다.

 

그러던 광모가 갑자기 변했다. 재황은 그런 광모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둘은 용역을 하며, 같이 돈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선하던 재황의 변화에 당황하는건 수인도 마찬가지였다. 관찰자의 입장이지만, 가까이 다가가거나 도움을 전혀 줄 수 없는 수인은 그저 재황의 무너지는 모습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지켜보는 수 밖에 없었다.

 

관찰자 수인과 대상인 재황의 시선에서 교차되는 이야기들

읽고 있으면 이들의 이야기가 어디까지로 치달을지 몰라 내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빨려들어가 읽었었는데..

그들, 특히나 재황에게 너무나 잔인했던 운명은 결말을 읽고 나니 그래서 더 허무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뭔가 그래서, 더 강렬한 느낌의 무언가가 있었어야했던게 아닐까. 그냥 바라만 봤어야했는가.

아쉬움이 남는 결말이었지만, 그럼에도 이기적인 인간들의 발상 중에는 우리가 모르는 그 어떤 프로젝트가 있을지 모른다는 가설을 늘 염두에 두어야겠단 생각은 심어주는 소설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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