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한 시 - 120 True Stories & Innocent Lies
황경신 지음, 김원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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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열한시, 그 즈음에 맑은 기억으로 깨어 있던 학창 시절, 라디오 생방송 음악을 들으며 기분 좋은 음악과 감미로운 디제이 목소리에 괜히 마음 한켠까지 풍요로워졌던 나의 10대 시절. 그 시절이 다시 그리워 얼마전 그 즈음의 라디오를 듣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몇년전, 아니 그보다 더 오래전일 수도 있는 내가 어릴 적에 듣던 그 음악도, 그때의 분위기도 아니었다. 너무나 시끌벅적 달떠 있고, 고즈넉한 밤과 어울리지 않게 오던 잠도 다 깨워버릴 그런 시끌벅적한 수다만이 가득 남아있는 느낌이었다. 이제 밤 11시의 라디오는 나의 시간이 될 수 없겠구나 싶었다.

 

아주 어릴적 초등학교때 꽤 많은 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댔던 것과 마찬가지로 다시 책을 손에 잡기 시작한것은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 내 아이가 돌이 지나고 난 이후부터였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책장 한장 넘기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는데 (너무나 빠른 인터넷에 익숙해지다보니) 그 몇장 넘기는 어려움을 참아내고 나니 이제는 책 읽는 것이 그 무엇보다 쉬운, 편안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라디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듣고 있지 않지만 학창 시절에 즐겨 듣던 초저녁부터 자정 무렵까지, 내지는 새벽 1시 정도까지의 음악들. 누군가가 나와 마찬가지로 깨어있다는게 좋아서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공부랍시고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을 좋아했다. 공부에 방해되지 않으려면 사실 누군가의 목소리조차 깔리지 않을 차라리 반주 음악 등을 듣는게 나을 수도 있었겠지만 겁이 많은 터라, 누군가가 같이 깨어있는 듯한 라디오가 더욱 좋았다.( 녹화방송일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한. 가끔 녹화도 있는 듯 했는데..)

그때 듣고 못 듣던 음악을 다시 들은 때가 결혼하고 난 직후였다. 정말 하루 종일 라디오만 듣고 살았다. 이때는 오전부터 오후까지만 라디오를 들었다. 밤에, 그러니까 예전에 나의 골든타임이었던 초저녁부터 자정까지의 시간은 요즘의 어린 세대들, 그러니까 내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음악과 소음처럼 느껴지는 각종 분분한 잡담으로 채워져 더이상 저녁 방송은 들을 수가 없었다.

 

책처럼 라디오도 내게 그렇게 두 시기가 있었다. 책에 집중하면서 라디오는 못 듣게 되었지만 말이다.

밤 열한시를 떠올리며 어릴적 고즈넉한 음악을 들을 수 있던 그 차분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각자에게 그 시간이 주는 감상과 느낌은 무척이나 다르리란 생각이 든다.

작가님 말씀대로 하루를 마감하는 듯, 그러나 반대로 날을 새워보는 것을 계획해도 좋을 시간.

학창 시절,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날을 샌다는 것은 사실 다음날의 일정이 짜여있는 내게는 거의 휴일이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이었던 시절이었는데.. 결혼하고 주부가 되니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 내 마음대로의 일상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전의 열한시, 열두시의 설렘은 사라지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시간에 마음껏 하고 살다가 아이가 자라면서 아이 일정을 맞추다보니 엄마 생각대로 새벽에 아무때나 깨어있는게 힘듦을 다시 깨달았다.

 

다시 황경신님의 밤 열한시로 되돌아와서.

많은 독자분들의 글에서 보듯, 이 책의 밤 열한시라는 제목과 같은 내용의 글에 대해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고 나 또한 나의 열한시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지만, 책에 나온 이야기는 그게 전부가 아니다.

 

어쩌면 시와 같고, 어쩌면 에세이와 같은 그런 글들이. 보통 사람들의 짧은 단편보다 조금 더 깊이있는 그런 글들이 마치 일기처럼 날짜가 콕콕 새겨진채 사계절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안에는 작가가 그리워하는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가 꽤 많은 부분 담겨 있다.

 

특히나 사랑이라는 것은 결혼을 하고 삶에 팍팍해진 사람들의 넋두리에는 그나마 덜 등장하지만,

감정에 눈뜨기 시작하는 어린 학생들부터 사랑을 경험해본 풋사랑의 이십대, 그리고 삼십대,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는 그 나이 쯔음의 젊은이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한때는 내게도 그랬을, (그렇다고 지금 사랑이 내게 없다는 것이 아니라 연인의 사랑보다 중요한 것을 갖고 사는 지라) 그런 감정의 이야기로, 지금도 여전히 누구에겐가 중요한 그 사랑과 이별의 감정이 이 책에 오롯이 담겨 있었다.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너무 힘들어서 이 세상이 온통 다 끝나버릴 것 같았던 순간들. 그러나 지나고보면 그렇지 않은 그냥 하나의 과거가 되어버리는 그 이야기들에 대해서도 책에선 아름다운 말들로, 그리고 작가가 뿜어내는 시같이 빛나는 말들로 표현되고 있었다.

 

그런데 난 왜 이리 메말라버렸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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