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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부름 가는 길에
미야코시 아키코 글.그림, 김숙 옮김 / 북뱅크 / 2012년 1월
아직도 며칠전 쌓인 눈이 녹지 않고 있다. 아이와 밖에 나서면 미끄러지기라도 할까봐 손을 꼭 잡고 걷게 된다.
눈이 수북하게 쌓인 숲길을 지나 할머니 댁에 케이크 심부름을 가는 여자아이 키코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할머니댁에 눈을 치우러 가신 아빠가 깜빡하고 케잌을 두고 가셨다. 키코는 먼저 나서서 갖다 드리러 혼자 다녀오겠다고 한다. 이제 갓 다섯살이 된 우리 아이 제법 잘 자라서 집안에서는 곧잘 심부름도 척척 해내는데 아직 밖에서 혼자 다녀오는 심부름은 하지 못하고 있다. 그 차이를 아직 잘 모르지만, 아들도 똘망똘망한 눈으로 그림책을 들여다보았다. 사실 처음에는 색감이 없는 그림이라 낯설게 느꼈지만, 흑백의 그림속에 깃든 따뜻함을 느낀 걸까? 아이도 재미난 이야기속, 그리고 환상적인 동화 속으로 이내 빠져들었다.
눈쌓인 숲길에서 아빠 발자국을 발견하고 따라가다가 넘어져서 그만 케이크 상자가 찌그러지고, 케이크도 망가지고 말았다. 속상한 키코가 얼른 아빠를 따라가니 처음 보는 낯선 집으로 아빠가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창밖에서 본 아빠는 모자를 벗은 모습을 보니 아빠가 아니라 옷을 입은 커다란 곰이었다. 너무 놀란 키코 앞에 어린 양이 다가와 숲속 파티에 같이 들어가자고 하였다. 이때의 어린양의 모습은 키코 또래의 친구 아이처럼 보였다.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동물들에게 무척 친근함을 느낀다. 그래서 아이들이 즐겨보는 책에서부터 다양한 장난감 등에도 동물들의 모습이 새겨진다. 처음 만난 동물친구로 어린 양, 딱 좋은 친구가 아니었나 싶다. 아무리 귀엽다고 해도 좀더 무서운 동물이 다가와 같이 들어가자 했으면 키코가 겁먹지 않았을까? 우리 아이도 즐거운 마음으로 양과 함께 문을 열고 따라 들어갔다.
키코가 들어서자 갑자기 음악이 뚝 끊기고 동물들이 모두 새로운 손님을 바라봤다. 눈이 아주 똥그래진게 키코 뿐 아니라 바라보는 나까지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다음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불안과 긴장 등이 적절히 조화되어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다음 장을 열었다.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아이들 책인데 (조금 더 큰 아이들 책에는 가끔 나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어른들의 소설책에는 나쁜 일이 아주 당연하게 일어나는게 현실의 수순이라 슬프다.) ...
너무나 반갑게도 모든 친구들이 키코를 반기며 환대하였다. 놀라긴 하였으되 다들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친구들이었던 것.
마치 내가, 또 내 아이가 환대를 받은 것처럼 따뜻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동물이 친숙하기는 해도 또 의인화된 동물들이라고는 해도 동물 책에서는 동물들끼리만, 사람이 주인공인 책에서는 또 사람들만 (동물이 나와도 의인화된 동물 말고 대개는 동물과 사람의 수직적인 관계가 이뤄지기 일쑤였다.) 나오는 동화를 많이 보곤 했는데, 이렇듯 의인화된 동물들과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는 동화책을 읽어주니 아이도 뭔가가 새로운 기분이 들었나보다. 말로는 좋아하는 동물들이 있었어도 또 직접 친구가 되고 초대받고, 환대받는 것은 또다른 경험이니 말이다.
모두 키코와 이야기하고 싶어하고, 키코의 망가진 케이크를 걱정해 자기가 먹을 케이크들을 모아 너무 정성스럽고 예쁜 모듬 케이크를 완성해주기도 한다. 정말 이렇게 따뜻한 친구들이 어디 있을까. 길 잃은 아이들이 불안함을 느끼지 않도록 소중한 사람들, 아니 소중한 새로운 친구들이 나타나 도움을 주는 모습이 참으로 따뜻하고 감동적으로 전해져왔다. 아이를 제외한 풍경과 동물, 가족들 모두 흑백으로만 처리가 되었는데 모두가 십시일반 걷어준 케이크가 알록달록 예쁜 컬러 케이크가 되었다. 아이가 전해받는 그 따뜻한 감동을 더욱 배가시킨 극적 효과가 아니었나 싶다. 처음부터 모두 알록달록한 컬러 색깔이었으면 그 케이크가 더욱 두드러져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왜 다른 것에는 색깔을 칠하지 않았냐며 자기가 색칠하겠다고 하는 아이를 말리느라 조금 힘들긴 했지만, 작가가 전해주는 의미를 엄마는 조금은 깨달을 수 잇었던 것 같아 행복했다. 아이가 좀더 자라면 그 의미를 따로 설명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깨닫게 되겠지. 그런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