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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지 마 뛰지 마 날아오를 거야 - 행복을 유예한 우리 시대 청춘들에게
안주용 지음 / 컬처그라퍼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서울과학고 여자 기숙사생 세명이 수박 서리를 감행하였다. 그리고, 다시 사회 초년병으로 나선 여자 셋은 새로운 서리, 지구 서리에 도전한다. 세계 일주를 하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포항공대에서 생물을 전공하고 극지연구소 바이오센터 연구원으로 일하던 저자는 직장도 모든 것도 훌훌 털어버리고, 찰스 다윈에 대한 오마주라는 동기로 갈라파고스 군도부터 인도의 라다크에 이르는 여행일정을 짜고 석달의 여행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였던 인도 라다크에서 운명과도 같은 사랑 믹을 만난다.
한국에는 그녀를 기다리는 남자친구도 있었고, 모범생으로 자란 그녀를 믿고 사랑한 가족들도 있었다. 편안한 집을 버리고 그녀는 현대 유목민의 삶을 선택하였다.
단순한 여행에세이 그 이상의 것, 재미있지만, 평범하지 않은 그 선택에 호기심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빠져들게 되었던 것은 여행 그 이상의 인생 에세이가 담긴 그녀의 독백이자, 자아성찰과 같은 책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유를 갈망하는 여자라기 보다는 아이의 엄마로 현재의 삶에 안주하고, 오히려 틀이 없는 삶에 놓이게 됨을 두려워하는 보수적인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선택한 그녀.
책을 읽는 도중에 동생에게 몇몇 이야기를 전해주자, 동생이 "이제 언니는 엄마의 관점에서 보게 되는 구나"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사춘기 소녀, 그리고 성숙한 숙녀로써의 삶이 아닌 엄마를 이해하는 삶, 아직도 완벽한 엄마는 되지 못했지만, 타지에서 고생스러운 삶을 살것같은 딸을 걱정하는 그녀 엄마의 마음을 백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 아기인 내 아이가 자라서 보도 듣도 못한 머나먼 곳에서 고생길 훤한 삶을 살겠다 한다면 나 역시 어떻게든 그 마음을 돌리려 애쓸 것이기에..
그저 담담히, 평범하지만, 깨기 힘들었던 그녀의 알 껍질. 지각 한번 하고서 대성통곡을 했던 전교 1등의 삶부터 3년 연애기간동안 고이 지켰던 순결에 대한 이야기까지.. 그리고 듣는 사람이 놀랄 정도로 솔직하게 그녀의 성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들까지도..
정말 솔직한, 비밀 일기장에서 쓰였을 법한 이야기들은 이제는 당당하게 펼쳐내는 그녀 모습에 너무 놀라기도 하였다.
끝도 없이 펼쳐진 히말라야 산중 평원에 서너 평 남짓한 천막을 치고 사는 유목민 가족과 초고밀도 메가도시인 대한민국 서울 특별시 도심 한복판 100평짜리 헨트하우스에 사는 부부 중 과연 누가 더 넓은 곳에서 사는 것일까. 유목민이 되는 상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97p
나와 함께 걷고 있는 이사람, 이 척박하고 낯선 땅을 내게 꿈처럼 고향처럼 바꿔 놓은 이 사람과 함께라면 이 세상 어디라도 기꺼이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이 내 가슴 속에는 그때 이미 자라고 있었던 것 같다. 98p
관광객들이 예수님 닮았다 말한 믹을, 그녀는 처음 본 순간 어린 왕자의 느낌으로, 그의 뒤에 비치는 후광까지 같이 발견하였다 한다. 그리고 그의 눈에도 그녀가 오롯이 자리하였고, 독일의 잘 나가던 직장인이었던 그가 15년 이상 여행객으로 살아가고 있던 그 삶에 그녀 또한 발을 딛게 된것이었다.
이 책은 정말 단순한 여행 기록이 아니다. 그녀의 삶의 기록, 그녀가 천생연분이라 믿는 믹을 만나 변화하게 된 이야기, 사랑이 사람을 어떻게 바꿔 놓을 수 있을지에 대한 마법같은 이야기라고 할 수있다. 가족에게는 또 그녀의 전 남자친구에게는 고통이 되었을 시간이었음에도 그녀는 오히려 그 삶이 더 행복하게 느껴지고 소중하게 느껴졌을.. 그런 순간이었으리라.
죽도록 일만하고 성냥갑같은 서울의 아파트에서 숨막히게 살아가는 평범한 삶이 별난 거라 말한 그녀. 먹고 살만큼 일하고 시간에 쫓기지 않고 사람을 만나고 자연을 만나면서 살고 싶다는 엄마와의 대화 속에서 그녀는 진정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 믿고 싶었다.
나와 다른 삶, 가치관을 갖고 있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이 느끼는 행복 지수겠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