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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
멜라니아 마추코 지음, 이현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2월
평점 :

마추코 집안의 이야기는 적잖게 마법적이고 신비했다. 나는 수맥 찾는 사람으로 피에몬테에서 온 페데리코라는 사람과 열두 살에 팬티 속에 12달러를 넣어 가지고 미국으로 갔던 디아만테라는 소년을 호감을 가지고 기억했다. 67p
멜라니아 마추코, 그녀가 적은 이 이야기는 그녀의 할아버지, 디아만테를 모델로 실화를 바탕으로 이 이야기를 썼다.
가난한 이탈리아 출신의 11살의 어린 소년과 9살 소녀 비타의 미국 뉴욕행.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힘겨운 인생으로의 첫 걸음을 내딛는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할 수 있다.
비타는 어린 소녀의 이름이기도 했지만, 이탈리아어로 "삶, 인생"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비타의 아들 다이 대위가 이탈리아를 찾은 이야기, 그리고 디아만테의 손녀가 이 책을 쓰기 위해 할아버지와 비타 그들의 족적을 찾는 이야기에 이르기까지..책은 여러 시간대의 이야기가 중첩되어 들어가있고, 결국은 큰 흐름, 비타와 디아만테의 사랑과 인생 이야기로 흘러간다. 거의 100년에 이르는 그들의 이야기가..
현관문에는 개, 흑인, 이탈리아인 출입금지라고 적혀 있었다. 91p
꿈을 안고 찾아간 땅 미국은 그들을 반겨주는 곳이 아니었다. 더럽고 지저분한, 그래서 그들과 어울릴 수 없다 배척하는 0번지의 가장 밑바닥 인생부터 그들은 밟히고 쓰러져 가면서 딛고 올라야했다.
우리도 모두 날아올랐다. 땅에서 120미터 위로, 그리고 별은 빛난다. 별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것도 다시 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뿐이다. 안녕. 117p
어린 소년 소녀가 미국 땅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다섯살도 안된 치키토가 거리에서 신문을 팔고, 사람들에게 지린내 나는 맥주를 몇방울 얻어마시고 길바닥에 쓰러져 웃음거리가 되고, 제대로 태어나지도 못한 미국 동생은 하늘의 별이 되어 한줌의 재로 흩날렸다.
내 동생들을 봤어. 탈라리코와 아메데오가 나하고 같이 있었어. 우리가 교회 벽의 석회를 먹어서 내 동생들 배가 터졌어. 내 동생들은 죽었어. 난 살았고. 144p
어린 나이에 그가 머나먼 이국으로 가는 배에 올라야했던 것은 이탈리아에서의 지독한 가난 때문이었다. 그 아버지 또한 몇번이나 미국 땅에 가려다 실패를 했기에, 모든 자식들이 굶어 죽고 단 하나 남은,똑똑한 디아만테만이 아버지의 꿈을 이어줄 희망이었다. 살아남은 아들, 지독한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도 살아남은 그 아들 디아만테만이..
그래서 그는 미국에서의 힘겨운 시간을 버티고 버텼지만, 10년의 세월이 지나고 결국 이탈리아로 돌아오게 되었다.
모든 것은 그들이 마시는 커피, 너무 진하고 씁쓸하고 추억처럼 먼지가 낀 커피와 함께 침묵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 사람이 맞나? 이렇게 투명한 눈을 가진 이 남자가 디아만테였나? 과거를 떠올릴때마다 생생하게, 실물처럼 나타났던 그 소년이 맞나? 다이아몬드는, 아주 귀하고 눈부시게 빛나고 유리를 자를 수 있기도 하지만 빛이 비칠 때에만 빛이 난다. 어둠 속에서는 아무 가치도 없다. 339p
그들에게 인생은 달콤한 밀크 커피가 아니라, 진하고 씁쓸해서 혀까지 아릴 그런 커피였을까?
항상 달콤하게 마시던 커피를 이 책을 읽을 때 나도 모르게 아주 진한 블랙 커피를 타서 마시기 시작했는데, 오랜 세월을 에둘러 만나게 된 두 주인공 디아만테와 비타 역시 그들 앞에 놓인 쓰디쓴 커피를 마시며 이뤄지지 못한 사랑을 되씹는다.
디아만테는 자신의 병이 뭔지 안다고 대답했다. 다른 삶을 꿈꾸었던 데서 병이 생겼다. 그리고 이 삶에 배신당하고 삶을 잃은 것이 심지어 꿈까지 잃은 것이 이 병의 원인이었다. 518p
그의 병명은 미국이었다. 520p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지 못했으나, 가난의 굴레를 끊어주어 자식들에게는 자유를 주게 된 디아만테 할아버지의 이야기.
그리고, 할아버지의 인생사에서 숨겨졌으나 숨길 수 없었던 여인 비타의 이야기까지..
멜라니아 마추코가 마치 유물을 발굴하는 고고학자처럼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 박혀있는 아픈 이산의 체험들을 세상 밖으로 차곡차곡 꺼내놓는다.
매혹적인 소녀 비타에게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을 것만 같은 강렬한 생의 에너지가 넘실거린다.
삶이 그녀를 속일수록 더욱 꿋꿋하게 그 무시무시한 운명의 상처를 기꺼이 끌어안는 비타의 용기가 눈부시다.
-정여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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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나 또한, 과거의 부모님 세대, 또 할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를 전해들으면 또는 소설을 통해 만나게 되는 선조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지금 이렇게 풍요롭게 살고 있는게 믿기지 않을 만큼 우리 민족 또한 가난했던 시절이 있었고, 힘들었던 시국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탈리아 또한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고, 아메리칸 드림의 꿈을 통해 가난의 굴레를 끊고자 노력했던 많은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손녀 작가가 풀어낸 아름다운 문체로 족보와도 같은 두툼한 책으로 만나게 되니 백년전의 그 나라, 그 땅으로 되돌아간 생생한 느낌에 읽는 내내 몇번이나 숨을 멈추어야만 했다.
비타, 처음엔 어떻게 써야할지 막막했던 감동의 작품.
실제가 아니라면, 단지 연구 조사에 의해 이렇게 생생히 되살릴수 없었을 그 파란만장한 이야기.
그 감동의 순간을 소중한 이들과 함께 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