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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창고 살인사건
알프레드 코마렉 지음, 진일상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11월
평점 :
"무취에 공기보다 무겁지만, 한번 코를 그 안에 들이밀면 그때는 이미 늦어요. 아주 빠르고 아름답게 죽을 수 있죠.
하지만 하안 씨는 그렇게 죽을 가치도 없는 인간인데." 55p
텅빈 자신의 와이너리에서 발효가스에 의해 질식사한 알베르트 하안의 이야기로 이 소설은 시작되었다. 죽은 사람이 이토록 모든 사람의 증오를 받고 있을 줄이야...
"난 기쁩니다." 목사는 말을 끝맺고 있었다. 65p
심지어 그의 추모식에서 기도를 하는 목사님마저도 기쁘다는, 자신의 의견을 잠시 피력하기도 하였다. 알베르트 하안, 그는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자연사한 것으로 보이나, 와이너리에 아무 와인도 없었다는 것은 이웃의 와이너리에서 발효가스가 넘어온 것으로 추정이 되고 살인일수도 있는 짙은 의혹이 불거진다. 그도 그럴수밖에, 그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증오와 원한을 사고 있는 인물이었다.
심지어 그의 아내에게조차도..
"시골에서는 소식이 금방 퍼진답니다. 특히 좋은 소식은요." 25p
바로 죽은 남자의 아내가 한 말이었다.
샤힝어의 아들. 알베르트의 버찌를 따다가 잡혔던 어린 아이가 알베르트의 창고에 끌려가 몹쓸짓을 당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없었으나 아이는 어떠한 질문에도 침묵하며, 악몽을 꾸며 매일밤 소리를 지르고 아버지가 안아주려하면 놀라서 몸을 뺐다고 한다. 또다른 이웃인 쿠르츠바허는 알베르트가 뜻밖의 목돈을 빌려주어 담보를 맡기고 돈을 다 갚았으나, 알베르트는 돈을 갚았다는 사실을 무효화하고 그와 적대적인 관계에 놓여버렸다. 법적으로만 떳떳한 그가 사실상 등쳐먹은 노인들의 숫자는 참으로 많았다. 자신의 아내에게는 모진 매를 가하여 자신의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였고 말이다.
폴트 경위는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는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특히 그들의 와이너리에 초대되어 가는 날이면, 공무든 어떤 이유에서든 신선한 와인을 마음껏 마실 수 있었고 그는 자신의 그러한 삶에 만족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너무 접대를 밝혀서 사리분별력이 떨어지거나 또 지나치게 냉정한 사람도 아니었다. 다만, 그는 진실을 밝히고 싶었을뿐이었으나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범인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며, 심지어 그의 부인조차도 자신이 사주했을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의 유일한 친구였던 두 사람 스보보다와 팔렌 역시 알고보면 하안에게 종속되다시피한 불쌍한 인생들이었다.
도대체 누가 그 사람을 죽였을까? 자연사라고 하기엔 너무나 맞지 않고, 그렇다고 죽인 범인을 색출하기엔 경위가 나날이 취하는 날만 늘어갈따름이었다.
와인향기가 가득한 마을, 그 와인의 발효가스로 쉽게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은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최근에만 네번째 발효사였다고 하니 조심해야할 심각한 문제임에는 틀림없었다. 자연사를 가장한 사고사, 그리고 와이너리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죽음, 아름다운 죽음에 걸맞지 않는 추악한 인간의 종말.
그들의 이야기와 식사는 항상 와인을 곁들이며 진행된다. 진지한 대화든 가벼운 대화든 대화를 할 장소마다 신선한 와인을 곁들이는 것은 그들의 일상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기본이었다. 와인에 무척이나 문외한이었던 나, 게다가 와인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술이 싫었던 나조차도 그들의 와인에 얽힌 대화를 듣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한잔 곁들이면서 소설을 읽고픈 마음까지 들기도 하였다. 어쩐지 너무나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말이다. 죽음, 그리고 살인 사건 분명 어두운 사건을 다루고 있었음에도 경위마저도 순박해보이는 이들에게는 죽은 사람 외에는 살인자조차도 나빠보이지 않는 아이러니함을 가득 갖추고 있었다.얼마전 읽었던 "미스터 버터플라이"라는 소설도 우아한 스릴러라는 별칭이 어울릴 정도로 정적이면서 특이한 장르의 비액션 소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분명 표지에 나온 조지 클루니와 권총은 웬지 액션 영화일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데 소설은 무척이나 잔잔하고 정적으로 흘러갔다. ) 이 책 역시, 어둠과 살인사건, 음모 등이 서려 있을 줄 알았는데 조용히 아주 조용히 그들만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 같아 색다른 느낌으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이 밤 오랜만에 와인 한잔 하면서 이 책을 덮고 싶은데.. 와인 싫다던 신랑이 와인 두병 있던 걸 마저 다 마셔버려서 집에 없음이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