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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말할 필요 없이, 인생은 유머러스 - 최양락의 인생 디자인
최양락 지음 / 대림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개그맨 최양락님의 인생 에세이가 나왔다고 해서, 가볍게 읽고 웃어 넘길 수 있는 소위 너덜너덜 젖꼭지 같은 웃음 가득한 그런 에세이집일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책을 다 덮고 나서 든 생각은 한권의 진지한 인생 에세이 집을 읽은 느낌이었다. 그는 우리를 웃기고, 가족을 웃기고 개그맨마저 웃기는 유일한 개그맨이자, 오랜 동안 사람들 곁에 서고 싶은 진정한 개그맨이다. 예능인을 꿈꾸는 다른 어떤 사람들과도 차별화되는 진정한 개그맨 말이다.
롤러코스터를 탄 듯, 절정까지 치달았다가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며, 정신 못차리게 어지러운 몇년을 보내고 난 후 그는 다시금 인생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인생과 개그관에 대한 글을 덤덤하게 풀어내었다. 그리고 그의 개그가 재미있는 만큼 그가 얼마나 노력하는 사람인지, 그의 웃음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우면 좋을 지에 대한 것들이 명확한 그런 책이었다.
내가 한 말을 듣고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웃는 그 순간의 짜릿함,
내 입에서 나간 말이 사람들의 귀를 돌아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뀔 때의 환희 같은 것 말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한때 신랑감 1위 조건에 뽑히기도 했던 유머 감각, 그 유머감각의 중요성을 나는 초등학교 5학년때 깨달았다. 공부도 잘하고 체육, 미술, 모든 것을 잘하는 어느 남학생의 인기는 남녀를 불문하고 탑이었는데 그 비결은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뛰어난 유머감각이었다. 그 아이를 보며 이상하게 나도 웃기는 재주를 갖고 싶다고 생각해서 개그본능까지는 아니지만, 재미있는 말을 하려고 노력을 하게 되고 남들에게 호감을 얻고 싶어 노력을 하게 되었다. 최양락은 바로 그것을 초등학교 3학년때 깨닫고 평생을 개그맨 한 꿈만 바라보며 살아온 사람이다. 많은 연예인, 개그맨들이 예능에 몰두하는 요즘에도 어쩌다 예능에 출연은 하게 되어도 그는 항상 개그맨임을 잊지 않는다.
개그의 달인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딱 하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52p
수십년을 노력해와도 개그의 달인이 되기 힘들다는 그의 말. 인생이란 이런게 아닐까 싶었다. 개그맨도 사람을 웃기기 힘들고, 달인이 되기 힘든데 우리네 현실이란 오죽할까 싶었다. 나또한 모든 사람을 다 웃기기도 힘들고 모든 이들의 마음에 다 흡족한 사람이 되기는 더더욱 힘이 든다. 그렇다고 내 자신을 온통 희생해가며 만점짜리 개그맨으로 살아가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의 책 속에는 그가 개그맨으로써 겪은 풍파와 그리고 고비를 넘기게 된 사연들, 황금기를 겪었던 과거와 지금의 달라진 모습. 또한 많은 사람들이 되고 싶어하는 이야기꾼으로써의 자세 등에 대한 조언을 해주고 있다. 끝으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최고 인기를 구가했던 개그맨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들에게서 배울 점들을 일목요연하게 짚어주고 있다.
자신의 위치는 생각하지 않은 채 시대의 변화만 뒤쫓아가서도 안 될 것이며,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편한대로만 해도 곤란하다.
시대 변화와 자신의 자리 찾기, 이것은 평생 안고 살아야 할 숙제 같은 것이리라. 124p
개그에서 예능으로 달라진 현재의 웃음 코드들. 잠시 쉬었다 돌아온 그가 적응하기에는 난코스의 과제였다고 한다. 그저 온통 웃고 즐겼던 예능이라는 과제가 예전의 개그맨들에게는 얼마나 힘든 고역이었을지 느끼지 못하였던 부분들을 재미나게 풀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직장에서나 힘든 일들이 있고 풀리지 않는 난제들이 있듯이. 화려한 연예계의 뒷면에는 그만큼 좌절과 실패도 많고, 성공했다가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그런 슬픔도 많았다.
KBS개그맨이라고 알고 있던 그가 사실은 MBC개그 대상 출신이라는 점을 새로이 알게 되었고, 그런 그가 왜 KBS에서 활동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실려 있었다. 서울예전에서 축제 무대에 개그 응모를 했다가 떨어져 울고 있을때 그를 달래며, 떨어진 이유를 알아보고 들려준 예쁜 여학생이 바로 유명한 탤런트 이휘향님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개그맨이 집에서는 절대 웃기지 않는 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때는 낯설었지만, 이제는 당연하다 생각해왔는데 그만은 예외라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고, 그 사연의 뒷면에 김수환 추기경님이 계신 것도 알게 되었다. 이 책에는 정말 그에 대해 궁금한 모든 것이 다 나오는 것 같았다.
한남자가 고래등 같은 기와집 지붕에 서서 구슬프게 피리를 불고 있다.
스산한 겨울밤, 피리 소리까지 더해져 온통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데 갑자기 남자 옆에 화살이 꽂힌다.
깜짝 놀란 남자. 화살 끝에는 종이 하나가 매달려 있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종이를 펼쳐본다.
종이에 쓰여 있는 내용을 다 읽은 남자의 표정이 자못 비장하다. 종이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다음 신청곡은 오동동 타령. 사랑하는 영희와 듣고 싶어요."
176p |
웃음의 다양한 코드에 대해 설명도 해주면서,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이야기꾼의 면모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개그 콘티를 짜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개그맨들이 토로하는 다큐를 본적이 있었는데, 최양락과 그 주변의 다른 개그맨들 모두 그런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었던것. 매사를 웃음을 생각하고 연결지어 노력해보려는 삶이 그들을 최고로 만든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가 소개해주는 최고인 다른 개그맨들, 강호동, 유재석, 임하룡, 심형래 등의 많은 분들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짧게 유재석님에 대한 이야기를 실어볼까 한다.
진행자 유희열은 국민 MC에세 이런 것까지 시켜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게다. 그러자 유재석은 웃으며 말했다.
"망설이지 말고 다 시키세요. 출연자가 나오면 쏙 빼먹어야 합니다. 빨대로 쏙 빼먹고 집에 갈때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못 갈 정도로요."
그는 그 자리에서 개그, 노래, 춤을 시키는 대로 다 했다. 머뭇거리지도, 망설이지도 않고 기꺼이 최선을 다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210P |
방송에서 한없이 예의바르고 착해보이는 유재석, 실제로도 그는 그렇게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었나 보다. 그래서 안티가 그토록 적은 일인자이고 말이다. 최양락은 이제는 강호동, 유재석과 어깨를 겨룰 돌아온 황제는 아니라고 당당히 말한다. 하지만, 그와는 또다른 코드로 그는 송해 선생님의 80이 넘는 세월동안 누리는 방송생활처럼 자신도 오랫동안 사람들의 옆에서 유머라는 코드로 함께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이 여전히 아름답게 보였다.
예전에 남과 여, 네로 황제 등을 할때 조금은 얄미워보였던 개그를 한다 생각했는데, 이제 그의 모습은 좀더 편안해지고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그의 개그 철학과 노력을 알고 나니 그의 개그가 좀더 정감이 가게 느껴지게 되었다. 어느 분야에서나 최선을 다하지 않고서는 성공하기가 힘이 든다. 그리고 모두가 최선을 다하는 개그 분야에서는 더욱 빛이 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최양락의 "인생은 유머러스", 그의 환하게 웃는 표정만큼이나 마라톤같이 긴 인생을 웃어 넘길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