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죽어도 못 잊을 어머니 손맛 - 구활의 77가지 고향음식 이야기
구활 글.그림 / 이숲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경북 경산 하양에서 태어나 매일 신문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낸 구활님의 어머니 손맛을 그리워한 77가지 음식 이야기.
살아 계셨으면 닭이라도 한 마리 잡아 곰국에 밥을 말아 한 그릇 같이 드셨으면 좋았을텐데, 이승까지 오시기엔 길이 너무 멀다. 구활님의 글은 이 책으로 처음 만나봤지만, 어려서 듣고 자란 부모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 옛 이야기 같아 재미있었고, 또 공감가는 이야기들에는 고개가 끄덕여지고, 소박하지만 맛있어 보이는 새로운 메뉴들에는 침이 꼴깍 삼켜지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어머니 손맛을 그려낸 요리 레시피가 담긴 책일까? 싶었다 물론 책 표지를 보면 그런 생각은 금방 사라지지만.. 오히려 읽다보니 부모님 어릴 적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따뜻한 감성의 책이었다. 아버지께서 먹는 이야기 좀 그만 좀 해라 할 정도로 어느 순간부터인가 맛있는 음식은 내 주된 관심사가 되어 버렸다. 나도 모르게 입밖에 내놓는 말들이 다 그런 이야기였나보다 싶은 마음에 자제를 하려 노력하긴 하지만, 맛집과 음식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워지는 건 비단 나뿐이랴.
오늘날의 화려하고, 기교가 넘치는 그런 요리들은 아니지만,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 어렵기에 그것밖에 못 먹었지만 그래도 어머니 사랑이 가득한 그 맛이 너무나 그리워지는 구활님의 사모곡 같은 이 에세이 집을 나는 너무나 구수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께 권해드리면 더더욱 행복해하실 그런 책이란 생각도 들었고..
맛있게 먹어대던 부대찌개가 사실은 미군들의 잔반들을 한데 모아 끓인 꿀꿀이죽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는 부모님께도 듣고, 여기저기서 들었어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런이야기였다. 보기만 해도 냄새가 나는 잔반을 끓여서.. 그들이 먹다 남긴 소시지 하나라도 건지는 날에는 대박 행운이라며 기뻐했다는 이야기에 가슴이 아프기도 하였고, 아냐, 잔반이 아닐거야. 깔끔하게 남은 음식을 돌린게 아니었을까? 하고 괜히 위안삼아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책에는 정말 솔직하게 나온다. 냄새나는 잔반이라고 묘사되지는 않아도 먹다 남긴 흔적을 끓여 내놓은게 꿀꿀이죽이었다는 사실을.. 그 음식 하나 사먹으려도 홀어머니께 책 산다 뭐 산다 거짓말 해서 용돈을 타내어 배를 채우곤 하였다는 뒷 이야기까지도 말이다.
아, 그리고 우유떡.
이것도 엄마께 들은 이야기여서 반가운 소재였다.
분유를 배급으로 받으면, 쪄먹어서 이도 안 들어가게 딱딱하게 먹었다 하시었다. 아니, 왜 물에 타먹으면 되지? 쪄서 먹어요?
엄마께서도 글쎄, 그때는 먹는 방법을 몰라서 그랬던가? 하면서 어렴풋이 회상하셨는데, 구활 저자님 이야기를 들으니, 물에 타 먹고 다들 설사병이 나서 (우유를 분해하는 효소가 없어서 아마 그랬을 듯) 물에 타 먹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아까운 식재료가 처치곤란하여 누군가가 우유떡을 해먹었단 소리에 너도 나도 해먹기 시작했단다.
알루미늄 도시락에 우유 가루를 엷게 깔고 밥할때 함께 쪄내면 우유떡이 된다.
우유 떡은 뜨거울땐 약간 부드럽지만 식고 나면 차돌멩이로 변했다.
아무리 단단한 이빨로도 깨물어 먹지는 못했다.
쉬는 시간에 교실 벽에 붙어 해바라기를 하고 있을때 아이들이 딱딱한 우유 떡을 꺼내 갉아먹곤 했다.
24p
된장 소믈리에라 자처하는 저자는 전용 된장단지를 가져본적이 있다고 한다. 그 안에는 풋고추, 통마늘, 마늘홰기, 콩잎, 미역줄거리, 명태 통마리, 말린 무 .. 양은 많지 않지만 종류가 다양한 보물단지를 채워넣다 보니 된장단지가 쉬(구더기)의 천국으로 변해 여름을 제대로 난적이 없었다 한다. 또 백조기 여러 마리를 몰래 된장 독에 묻었다가 된장 단지 금지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된장 장아찌가 그렇게 다양했던가? 장아찌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구활님의 식성에 많이 공감가지는 않았지만, 보물단지로 여길 만큼 행복한 된장단지였다고 하니 어쩐지 그 마음만은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했다.
어릴적 입맛을 잃지 못해서 된장을 끓일때 매운 고추 외에는 두부도 못 넣게 하고 떡국에 계란도 못 풀게 한다는데 어릴 적 입맛이 평생을 간다는 그 지론에 우리 부모님은 어떠하신가 하는 생각이 다 들었다. 가끔씩 시골 밥상이라면서 두분이 너무나도 맛있게 드시는 것들은 우리 입맛에는 맞지 않는 반찬들이 종종 있었다. 아마 그 때 그시절에 먹던 반찬을 잊지 못해 그러셨을텐데.. 나도 어려서부터 엄마가 해주신 반찬이 가장 맛있는 것처럼 부모님도 그러셨을텐데 하는 마음이 새록새록 들었다.

빈식 부분을 보면서 옛 이야기들을 많이 떠올리게 되었고, 채식과 육식으로 이어지는 구활님의 이야기들에는 또다른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다.
이 책을 읽기 바로 얼마전에 6시 내고향이던가?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특이한 장, 시금장. 처음 접하는 그 고장 향토 음식을 이 책 속에서 또 만나니 이 또한 반가운 일의 연속이었다. 작가가 설명해주는 그대로를 나는 티브이 영상으로 보았고, 고향이 충청도인 나와 아버지 (그 프로 애청자이시다)는 아, 저렇게 만드는 장이 다 있구나 하면서 신기해하였다. 보리껍질 중 왕겨를 한풀 벗겨낸 다음 현맥 상태를 팔분도로 깎을때 나오는 고운 가루를 반죽해서 도넛 모양을 만든 후 짚불에 굽는다. 구운 깨주먹이를 줄에 꿰어 부엌 벽에 걸어두고 서서히 숙성 시켜 여름에 절구에 찧어 가루로 만든다는 것.
육식 이야기편에서는 피라미에 대한 이야기만 다섯편이나 진행되어 웃음이 나기도 하였다. 육식이라고 해봤자 가난했을 시절 요즘처럼 풍족히 고기를 먹을 수 없으니 개울가에서 잡는 피라미가 주된 단백질 공급원이었던 것. 우리는 참 입도 편하고 몸도 너무 호사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그 감사함을 잊고 살아서 문제지. 신랑 말마따나 이렇게 음식이 호사로워진것이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건데.. 나 어릴적만 해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참고 절약하고 살았던 것 같으니 정말 요즘 먹거리 하나만큼은 넉넉한 그런 시대가 되었다. 아직도 끼니를 잇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어 모두의 행복이라 말하기엔 어렵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이 풍요를 낭비로 이어지게끔 살아서는 안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한다면 조금 더 절약한다는게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절약하고 나누고 함께 할 수 있는 것. 추운 겨울날 옛날 이야기 해달라고 조르면 가끔씩 어릴 적 추억을 풀어놓아주시던 부모님의 이야기들을 훌륭한 입담을 가진 구활님의 추억으로 전해들으니 어릴적 받던 과자 종합 선물세트를 받은 기분처럼 행복한 기분으로 가득해졌다.
경북 지역만의 향토음식도 만나고, 물자가 풍족한 지금과 다른 수십년전의 독특한 음식 문화도 되새기고, 무엇보다도 작가의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만날 수 있었던 책, 어머니 손맛으로 과거로의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