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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 김별아, 김주영, 권지예, 구효서, 하성란, 전경린 … 35인 글.그림 작가와의 동행
김주영 외 지음 / 지식파수꾼(경향미디어) / 2010년 10월
절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문학과 예술을 하는 이들이 초대하는 거제도와의 만남.부끄럽게도 나는 아직 거제도를 가보지 못했다. 거제도는 항상 내게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통영과 거제쪽 바다는 유람선을 타고 돌면 달력 그림이나 다름 없는 멋진 풍경이라고 누누히 신랑이 이야기를 해주었으나 통영까지 간다는게 참 쉬운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외도와 소매물도. 너무나 예쁘다는 외도는 정말 말로만 열심히 들었고, 티브이 속에서나 만날 수 있었다. 소매물도는 직장 생활 할적에 선배들이 추천해주는 멋진 섬이었고..
결국 나는 아직 거제도를 가보지 못했다. 섬이라고는 제주도와 안면도를 가본게 고작이려나? 인천공항 영종도도 섬에 넣으라면, 공항 갈적에 들렀으니 넣을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 섬에대한 나의 여행은 초라하기만 하였다. 그래서일까? 보다 많은 이들이 거제를 찾기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거제 문화예술회관 관장 김형석님이 스토리 텔링으로 사기쳐서 거제도를 객단가 높은 곳으로 만들자라는 취지로, (사기라는 의미가 부정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프로젝트를 추진한 것이었다. 네시 호수, 줄리엣의 집 마케팅 등 스토리텔링이 만들어낸 관광 명소들은 세계적으로도 많다. 그러기에 거제도에 스토리텔링을 부여하자는 것. 거제 포로 수용소는 우리의 감추고 싶은 수치와 상처의 공간이었고, 대우 조선소는 이순신장군이 처음으로 승전을 거둔 공간을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우리의 자존심과 자긍심의 공간이었다. 그야말로 수치와 영광이 거제에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스토리텔링의 보고였다. 19p 스토리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그야말로 내로라하는 화가와 작가들을 불러모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거제 기행 후 남긴 멋진 거제의 그림과 글들이 우리에게 책으로 엮여져 새로운 여행 에세이로 소개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 속에는 거제의 사진과 글이 있는게 아니라 한자리에 모아놓은 멋드러진 그림들과 글들이 우리 눈을 현혹시키고 즐겁게 만들어준다. 한국의 관광도시뿐이 아닌 세계적인 명품 도시로 우뚝 서기를 바라는 마음은 제주도 외 또다른 관광 명소의 탄생을 꿈꾸는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도 모두 적용되는 일이 아닐까?
나또한 아직 가보지 못한 거제였지만, 가장 가보고 싶은 우리나라 명소 중 하나가 바로 거제이기도 하였다. 아기가 있고, 신랑이 바쁘다는 핑계로 차 타고 장시간을 내려가야 하는 거제로의 여행을 쉽게 추진하지 못했지만, 책장을 넘길 수록 멋진 그림과 글에 매료가 되어서 이미 내 마음은 거제에 닿아 있는 것 같았다. 글 또한 작가들의 글 모음이라 역시 다르다. 여러 작가가 자신만의 특색으로 글을 쓴지라 다 읽는 맛이 다르고 하나하나 놓치기 아까울 정도로 재미나기도 하였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글들은 그 중에서도 몇가지로 따로 있었지만.. 자신이 보고 느낀 거제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에세이부터, 인생에 있어 여러번 만난 거제의 느낌을 총괄적으로 드러낸 작가, 자신의 어릴적 이름에 얽혔던 슬픈 해프닝에서 시작된 거제의 이름 풀이, 그리고 이어지는 거제 기행에 대한 남다른 분석들, 청마 집안이 살고 있다는 거제의 이야기까지 이어진다. 작가들이 각각 거제의 명소들을 따로 맡아 글을 쓰기로 하였다니 그러면서도 그 명소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다르다. 밥사주고 싶은 여자, 밥 사주기 싫은 여자라는 재미난 이분법으로 시작된 이현수님의 글 같은 경우에는 지심도의 사랑이야기가 돋보였다. 문단의 한 선배가 재벌가 규수와 함께 지심도로 사랑의 도피를 했는데, 그들의 사랑을 말릴 수 없음을 안 재벌가에서 결국 승낙을 했음에도 지심도가 너무나 아름다워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단다. 지심도라.. 1박 2일에서나 보고 들었던 섬이었는데, 그런 곳이었구나. 아, 가고 싶은 거제의 명소들이 자꾸만 추가되어간다.
글에 푹 빠져 있을라치면 연이어 다음 그림이 또 내 마음을 흔들어놓는다.아, 여행 에세이를 이렇게 감칠맛 가득하게 읽을 수도 있구나. 작가들의 글재주는 정말 남다르다고 느낀 것이 그들이 다르면서 같은 재능으로 표현해내는 맛있는 음식의 묘사라던지 다채로운 거제의 묘사들은 음식까지도 사랑하는 내 여행 욕구를 완전히 채워주는 듯 하였다.열기, 바삭하면서도 쫀득한 그 열기 구이라는 것. 생선 구이를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웬지 그 음식은 내 입맛에도 쩍쩍 달라붙을 것만 같았다. 선생은 4월 말 2박 3일간의 거제 여행을 제안함녀서 마침표처럼 한마디를 덧붙였다."해이수, 나는 몇번 가봤는데, 그 맘때의 거제 물빛이 제일 좋더라."그말을 듣자마자 나는 남의 집 담장 아래서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파안대소 속에서 봄날의 일몰과 붉은 꽃봉오리와 푸른 물빛이 꼴라주되고 마블링 되어 한몸으로 뒤섞였다. 4월말이 되기까지 나는 때때로 거제를 그런 춘심과 혼몽으로 앓았다. 85p 아하.. 4월 말, 기억해 두자. 거제의 바다가 가장 아름다울 그런 날. 그리고 작가들이 여행다녀온 바로 그 시기를 말이다.
참, 이 책은 세 파트로 나뉘어져있다. 여행 에세이가 이렇게 다양하게 한 책 속에 담겨 있을 수 있다는데 놀라워하면서 또 그 내용들이 각각 새록새록 재미나게 읽힌다는 것이 비단 이 글을 여행기로만 치부하기에는 지나치게 아쉬운 점이 많았다. 글그림 예술집 정도로 하면 어울리려나? 아뭏든 거제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가득한 책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청마 유치환의 사랑이야기. 유부남이던 그가 시조 시인 이영도를 사랑해 20년에 걸쳐 안타까운 그리움을 노래하게 하였다니, 유치환에 대해 내가 몰라도 너무 몰랐던 듯. 게다가 그들의 사랑이 이뤄질 수 없음은 유치환이 유부남이었고, 시조시인 이영도는 어린 딸 하나를 기르며 사는 젊은 미망인이었기 때문이란다. 그의 사후에 이영도는 그에게 받은 연시와 연서를 추려 책 한권을 내게 된다. 유치환의 특별한 시선집인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118p 이뤄질 수는 없었지만, 많은 훌륭한 작품을 낳게 한 청마의 사랑, 거제에서 만날 수 밖에 없는 멋드러진 이야기들.
부끄럽게도 화가분들의 이름은 잘 알지 못했지만, 작가분들의 경우에는 몇 작품을 최근에 읽은 기억이 있어 기억나는 이름의 작가분들이 몇분 계셨다.구효서, 하성란, 김별아, 전경린 님들..정말 유명한 글들을 많이 쓰신 작가님들의 거제기행이라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김별아님이 취중에 꿈처럼 느끼며 쓴 방사 서복의 거제 탐방기는 정말 옛날이야기를 바로 전해듣듯이, 자기 자신이 서복이 되어 생동감있게 이야기를 진행해주었다. 고려 의종의 폐왕 이야기를 다뤄 준 전경린님의 글도 인상적이었다. 사실 모두가 다 재미있던 지라 내 취향대로 몇가지를 꼽아본 것 뿐이다. 세번째 마음을 보듬는 치유의 섬 거제 편에서는 일제 시대의 한글 탄압에 대한 구효서님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조선어를 끝내 고집한 윤동주님의 이야기서부터 지심교 분교에서 우리나라 학생과 선생님들이 찍은 사진, 국어사랑 나라사랑이라는 한글의 그 사진 속에 얼마나 일본군의 탄압에 힘겨웠을 그 이야기를 구효서님은 되새겨보시는 것이었다.
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있어 기대가 되기도 하였지만, 사실 각 작가분들의 색채가 강렬해 어떤 내용이 완성될지 몰라 재미나지 않을까봐 걱정도 되었던 책이었다. 하지만, 내 우려와 달리 너무나 근사한 거제도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완성되었다.그리고 나는 꼭 아이와 신랑과 함께 거제도로 갈 것이다. 그들이 거제도로 갔듯이 나 또한 4월의 거제 바다가 아름다운 날, 거제에 가서, 아름다운 지심도도 바라보고, 맛있는 요리도 먹고 청마의 사랑의 깊이를 느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