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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를 죽이려고
이제하 지음 / 뿔(웅진)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이상문학상, 한국일보 문학상, 동리문학상 수상작가 이제하님의 3년만의 신작 장편소설, 마초를 죽이려고..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지가 얼마 되지 않아, 처음 만나는 작가분들이 많았다. 이제하님도 마초를 죽이려고로 처음 만나는 작가분이었다. 대중성이나 상업성보다는 문학성에 더 높은 점수를 받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 이유는 굳이 띠지에 써져 있어서가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든 느낌이 어려서 가끔 읽어보던 아버지의 서재에 꽂힌 책 같다는 느낌이 다분해서였다. 이야기책을 좋아하는 지라 내 책을 다 읽고, 심심한 마음에 아버지 책을 기웃거려 읽어보면 분명 이야기책(소설)임에도 어린 내가 이해하기엔 난해하고 어려운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것은 작가가 출판사와의 인터뷰에서 이야기하는 끝 부분의 이야기에서도 나타나 있다.
그나마 책을 읽는 세대라고는 하지만 이들은 언어 표현에 대한 기초적인 인식이나 소양 없이 만화와 영상과 생략 기호로만 곧바로 문학을 접하는 세대 아닌가요.294p
책이나 그림 등의 작품을 접하고 있는 그대로 느끼고 표현하기도 좋아하지만, 모두 다 이해하기보다는 내가 이해하는 범위 안에서 이해하고 즐기는 편이기도 하였다. 그래도 기초적인 인식 소양이 부족하다고 하신건 좀 서운한데? 하는 느낌이 들다가도, 그의 냉철한 한마디 한마디는 오프라인의 두터운 지식으로 무장된 독자층이 아닌, 네티즌들의 가벼움을 꼬집고 있었다. 아, 이 책은 아버지가 좋아하실 만한 책이야. 하고 느꼈던 것도 작가가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려나?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을 읽고 있던 나를 보고, 아버지는 큰 관심을 표명하셨다. 그 책은 어떤 책이냐? 무슨 내용이냐? 하시면서 말이다.
마음 속에 스승을 지니지 못한 자, 만세에 아수라 길을 걸어.. 하는 그 누구의 잠언이 뇌리를 어지럽혔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선생님 댁 문이 열리기만 하면 이 아수라 같은 세상에서 한 가닥 길이라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일념 하나만은 분명했던 것 같다. 나는 울고 싶은 기분에 휩싸여 있었다. 10p
주인공인 지헌이 아버지가 사업 빚으로 돌아가시고, 집 나간 어머니가 돌아오시는 등, 집안의 큰 일들을 겪고 난 후에 열번째 인생의 스승을 찾아 최화백의 집 앞에서 주구장창 기다린다. 몇날 며칠이고 아무 말 없이 기다리다가, 들어오라는 사모님의 이야기에 드디어 힘을 입어 발을 내딛었다. 그 만남을 시작으로 지헌은 그 집의 부르심을 받아 제자가 아닌 비서로 먼저 일을 하기 시작한다. 비서래봤자, 운전수 노릇이나 하고 집에서 기거하면서 도울 일이 없나 살피는 것이었고, 그러면서 최화백 가족에 얽힌 가족간의 문제나 갈등 등에도 접하게 된다. 말기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최화백의 수족처럼 자상했던 혜수 사모님, 그리고 최화백의 한국화에는 필요없는 모델이자 젊음이라는 뮤즈로 대변되는 40살 이상 차이나는 어린 연인 서채리, 파출부같은 외모의 수양딸 테레사, 사모님 같은 외양의 파출부 등이 주요 가족이나 가족같은 멤버였고, 그 외에도 전처 소생의 다큰 자식들이 여럿 있었다.
은유와 비유를 써서 그런다고 했던 걸까? 휘휘 돌아서 들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헌이 그동안 섬긴 스승이라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쭉 나오지만, 자신의 의지로 마지막 스승을 찾아 나선 것이 그의 애인인 지은이의 꿈에 최화백이 상징처럼 등장했다는 것 외에도 자신의 인생을 다 걸어 그렇게 스승에 목을 매단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였다. 최화백이 그의 스승이 될 만한 성품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긴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주로는 그와 그의 가족사, 그러니까 젊은 서채리를 연인으로 들이게 도와준 혜수 부인과의 독특한 공생관계 같은 것에 초점이 맞춰져서.. 마초가 중심이라는 소설의 틀보다는 어쩐지 여성들의 이야기가 더 눈에 들어왔으니 말이다.
책의 처음 부분에서도 지헌의 어머니 이야기가 돋보인다. 아니,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것일수도.
구두가 필요한 사람은 지나가는 길에 다른 사람들의 신발만 보이고, 머리를 하고 싶은 사람은 지나가는 사람들 머리만 보인다고 하듯. 나 또한 여성인 내 이야기가 더 눈에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께서 읽으시면 나와는 또다른 감성으로 대하시겠지만..
어른이란 소리가 너무 막연하다면 윗사람, 그것도 막연하다면 조언을 받고 따라야 할 대선배 같은 것이라 해도 좋다. 요컨대 그것으로 뭔가를 배우고 가치척도를 삼아야할 아버지 같은 기둥이나 뿌리가 내게는 필요했던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나 원망이 결국은 그 보상심리로 선생님을 찾게 했을 것이다. 나는 대빵이 자식들에게 자상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기 전에 찢어지게 가난할 망정, 높은 자존심과 의연한 성품으로 굳건히 서서 저절로 존경이 갈 수 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기를 바랐을지 모른다. 131p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했지만, 그런 아내가 처녀가 아님을 깨닫고 둘 사이에 자식이 여럿이었음에도 아내를 내쫓았던 대빵. 그리고 자수성가해서 성공한 똑똑한 어머니는 다시 모든 생활을 접고 자식들에게 돌아와 남편이 남긴 빚을 갚고 자식들을 온전히 세우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안에 최 화백이라는 사람의 제자, 혹은 비서가 되기 위해 집에 들어가겠다는 아들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해졌던 어머니였지만, 아들의 선택이니 믿고 존중하면서, 오히려 아들에게 충분한 의지와 버팀목으로 자리하게 된다. 아들 지헌은 그가 해결해야하는 어려운 일이 직면할때마다 어머니에게 손을 벌려 도움을 받고, 어머니는 놀랍게도 그 모든 것을 현명하게 해결해주시는 것이었다. 마초로 대변되는 최화백의 생활조차, 혜수부인 살아생전에는 그녀가 많이 보살피고 도와주는 울타리 안에서 꽃피우던 것이 아니었던가 싶다.
아내의 죽음 이후 뜰을 거닐며 죽은 아내와 대화를 나누는 마초의 모습. 젊고 발랄하지만, 너무나 통통 튀어 최화백과 어울리지 않는 듯한 서채리.
젊은 연인, 젊은 아내의 등장은 어쩐지 불륜으로 치닫을 것 같은 가상의 시나리오를 연상케 했으나 그녀는 한결같이 최화백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 뿐이었다.
문제는 초식동물과 육식 동물의 패턴이 뒤엉겨 있는 것이 정말의 생태라는 사실이다. 한집, 한 울타리안에서 그나마 유지되던 평화가 바깥 세상과 뒤엉길 때도 여전히 평화로울 수 있는가.... 주위에서 선생님을 쓰러트리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모님의 접때 얘기는 그 비슷한 비유로도 설명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비서라는 직함으로 내가 해야할일은 그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의 패턴을 가려내고 중화시키려는 노력이다. 147p
무언가 많은 일을 해내고, 최화백에게 도움이 되려고 노력을 했지만, 사실상은 그저 그 집안에 존재하는 젊은 남자라는 지지대 역할만 하였던 지헌.
그래도 최화백의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무너진 사제 지간을 대변하는 최화백의 제자라는 무리들의 무뢰배같은 행동에 스승을 보호하려 노력하는 모습을보였다는 것이 그의 마음 속 노력의 발로라면 발로랄까?
사람이 사람을 믿는것은 그 재능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셈일까. 목줄기로 눈물이 기어 올라오는 것을 느끼고 나는 외면했다. 227p
비서로 열심히 일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제자로 받아들여달라는 황당한(?) 제안을 한 지헌을 최화백은 놀라움의 눈길로 바라보다가, 같이 선을 그어보자고 한다.
그 선을 긋고 또 긋고, 큰 종이를 가득 메우고 최화백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대작업 이후에야 그들의 선으로 하는 대화는 끝이 났다. 그리고 그는 지헌을 제자라 불렀다.
음, 그러고보니 이 책은 처음 읽고 났을때의 느낌보다 읽은 내용을 곱씹을 수록 씹는 맛이 우러나는 그런 책 같기도 하다.
아, 이런 내용이 있었구나. 여기는 이랬지..참 하는 그런 느낌.
바삭한 누룽지가 입에는 달지 않아도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정겹게 감기는 것처럼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내 느낌이 다 표현이 되려나?
마초를 죽이려고 라는 제목과 이 시대 진정한 스승을 찾는다는 그 소절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소설을 있는 그대로 즐긴다는 내 평소모습과는 다른 느낌으로 접했던 책이었다. 문학시간에 작품을 분석하듯 읽으려니 피곤했던 것. 소설은 그냥 있는 그대로 읽히는 맛이 더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