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저택
펄 벅 지음, 이선혜 옮김 / 길산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두껍기도 했지만, 재미있어서 술술 빨리 읽힐 수도 있는 이 책을 읽으며 중간 중간 많은 생각이 들었기에 정작 책을 다 읽기까지는 제법 많은 시간이 걸렸다. 두꺼워도 보통 하루나 이틀이면 다 읽었던 다른 책들과 달리 정말 며칠을 두고 천천히 소화하면서 읽은 책은 오랜만이었다.
 

펄벅의 작품으로는 유명한 책 대지만 알고 있었는데, 그녀가 쓴 다른 작품들이 이토록 재미난 작품일줄은 몰랐다. 물론 요즘의 관점으로 보기에는 아니, 나 개인적인 관점으로 보기에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우 부인이었지만, 그래도 그녀의 현명함으로 이끌어지는 집안의 가풍과 문화는 존경할만한 것이었고, 그녀의 우월감은 정말 보수적인 여인의 그것이라 하기에는 상당히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같은 유교 문화권 아래 놓여있으면서도 중국 여인들은 우리나라 여인들과는 또 다르다. 물론 요즘에는 그런 풍속이 많이 사그라들긴 했지만, 그래도 중국에서는 적어도 우리나라보다 더 여인들이 대접받는 듯 했고, 자신의목소리를 더 강하게 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닮은 듯 다른 중국 여인들의 삶이, 그것도 남편을 능가하는 강인한 여인의 내조가 묻어나는 이 책은 놀랍기만 하였다. 사실 중국인이 아닌 중국에서 산 서양인의 시선에서 본 작품이기에 실제 그들의 삶과 많이 다른 부분도 있겠지만, 그래도 정적인듯 하면서 모든 것을 통솔해낼 위엄을 갖추고 있는 우부인의 능력이 부럽고 존경스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우 부인의 마흔번째 생일을 맞으면서 책은 시작된다.

그녀의 결심은 가족 모두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40의 나이에도 여전히 아름답고 가녀린 몸매를 지니고 있는 우부인, 그녀만을 사랑하는 남편에게 우부인이 직접 첩을 얻어주고 자신은 더이상 남편의 처소에 들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남편이 딴 생각을 가진 것도 아니고, 평생 그녀만을 사랑해왔음에도 그녀는 자신이 나이들어 더이상 자식을 낳을 용기도 없고, 남편에게는 이제는 젊은 여인이 어울린다는 핑계로 굳이 그에게 새로운 짝을 만들어준다. 가족들 모두가 경악했고, 심지어 하인들조차 모두들 놀랐다. 가장 친한 친구였던 강부인 역시 놀랐다. 뚱뚱하고 몸매관리에 실패했지만, 마흔이 넘도록 자신을 임신시키는 남편이라도 본인은 그 남편을 위해 기꺼이 아기를 낳겠다고 할 정도로 남편을 사랑하는 강부인의 눈에는 우부인의 처사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첩도 그녀의 계획에 의해 집안에 풍파를 일으키지 않을 만하면서 적당히 예쁘고 적당히 무식하고.. 적당히 적당히 ..한 여자를 골라 시골의 어느 처녀를 돈을 주고 사왔다. 마치 돼지고기 사오듯이 (책에 그런 표현이 실려있었다.) 셋째 아들과 동갑인 어린 처녀를 남편의 짝으로 점지해주고 본인은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처소에 가서 영혼의 자유를 누리며 살고자 한다.

 

영혼.. 이 책에 줄곧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영혼의 이야기다.

사실 우부인은 무척 똑똑하고 현명한 여인이었다. 남편보다 책도 많이 읽고, 집안의 대소사도 거의 그녀의 몫이었고, 강부인의 어수선한 집과 달리 모든 사람들이 우부인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따랐다. 하인들까지도 기꺼이 그녀의 맑고 낭랑한 목소리에 따라 움직였다. 그저 책을 읽는 사이사이 잠시 숨을 고르고 생각해봐야했던건 조용하면서도 힘이 있는 우부인이라는 캐릭터에 몰입되기 위해서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토록 영향력있는 안주인이 될 수 있다는게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너는 여자치고는 아주 훌륭한 영혼을 갖고 있다."시아버지는 이윽고 말문을 열었다.

"그뿐만이 아니란다. 네가 그 머리를 가지고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과거시험을 볼 수도 있었을게다. 그리고 장원급제해서 이 나라의 관리가 되었을 거야. 하지만 네 뇌는 남자가 아닌 여자의 머릿속에 들어 있단다. 여자의 피가 그 안에 흐르고 있으며 그 뇌에 연결된 채 고동치는 심장 또한 여자의 것이지. 그리고 네 뇌는 여자의 삶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단다. 여자의 뇌가 육신의 한계를 넘어서 커지는 건 좋지 않다." 98p


 

그리고, 현명한 우부인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첩을 들인 결정은 모두를 놀라게 했지만, 그녀가 그렇게 한 이유에 대해서는 책을 읽을 수록 자세히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마음으로부터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녀는 그녀의 의무를 다하였고..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불러들인 서양의 사제로부터 깊은 감화를 받는다.

 


 
그녀는 영혼이 육체를 벗어나면서 완전한 자유를 느꼈던 그 순간만큼 기분 좋은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간밤에 느낀 자유가 영혼을 적시는술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술고래가 술 앞에서 무너지고 마는 것처럼 영혼 역시 자유의 유혹을 뿌리칠수 없었다. 그녀의 영혼이 별들 사이를 헤메는 동안, 그녀는 다른 모든 것을 잊어버렸으며 이 커다란 집 안에서 그녀가 짊어지고 가야 할 무거운 짐도 내려놓았다. ..오늘 아침 그녀는 자신이 이 같은 자유를 만끽하도록 부추긴 안드레 신부에게 화가 났으며 그 앞에 무릎을 꿇은 스스로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254p


 

 

 

육신을 초월한 영혼, 즉 이 책에서 말하는 정신의 이야기.

그 누구보다 현명했지만,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해 울타리 안에 갇혀있었어야 했던 우부인의 영혼이 안드레 사제를 만나 영혼과의 교감을 느끼며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사랑 이야기되 저속하거나 식상하지 않은 고결한 영혼의 사랑이야기.

 

남편을 사랑해야 한다는, 그 외에는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었던 내게는 다소 충격이기도 한 소설이었기에 똑똑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자 했던 그녀의 과감한 선택이 놀라우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이 작품을 계기로 펄벅 여사의 다른 작품들까지도 모두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면 앞으로 모든 작품을 다 고루 읽어보고픈 마음이 들 정도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