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지중해에 빠지다 - 화가 이인경의 고대 도시 여행기
이인경 지음 / 사문난적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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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50에 인생의 한 고비를 넘으면서, 마치 잊고 있었던 고향, 아무 문제 없고 모든게 행복했던 곳을 떠올리듯, 나만의 마법의 주문, 신화와 판타지가 잠재의식 위로 떠오른 거였다. 맘껏 펼쳐보고 원 없이 환상을 즐겼다면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별게 아니었다고 거기서 졸업했으련마는, 나는 억지로 빼앗긴 보물처럼 미련이 많았고, 무슨 만병통치약, 마법처럼 여겼던 모양이다. 어린 내게는 위로와 기쁨이었으니까. 18p

 

그전까지 나는 한려수도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바다라고 믿었었다. 에게 해에서 한려수도와는 또 다른, 분명히 다른데, 못지 않게 아름다운 바다가 있다는 걸 알았다. 한려수도가 섬, 육지와 바다가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라면, 에게해는 육지 풍경이 대체로 보잘 것 없어 바다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는 것. 그냥 그래도 바다! 그저 바다! 그래서 바다만 남았다! 22.23p

 

여자에게 있어 나이란 무엇일까? 한참 공부하던 10대에는 얼른 20대가 되어 마음껏 자유로이 살고 싶었고, 20대에는 뭐가 그리 바빴는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지냈었다. 그리고 30을 코앞에 둔 29살의 나이에는 옆에 남자친구가 없을때라 30을 그냥 맞이하는게 막연한 두려움으로 다가와 30이 되면 세상에 큰 변화라도 일어날 줄만 알았다. 그저 크나큰 불안감이 자리했달까? 정작 30이 되어서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29살때보다 오히려 더 자신있고 당당해진 나를 발견했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신랑을 그때 소개 받아 연말에 결혼까지 하였다.

 

그리고 아직 맞지 않은 여자 나이 마흔과 쉰.

요즘 읽고 있던 펄 벅의 여인의 저택이라는 소설에서도 여자 나이 마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직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싶어서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던 그 마흔에 대해 마치 인생의 전환기인양 주인공은 크나큰 결심을 하고 모두가 말리는 그 결심을 실천한다.

그리고, 이 책.. 아줌마가 지중해에 빠지다는 소설 이상으로 내가 좋아하는 장르인 여행 에세이인데, 쉰이라는 그녀의 나이를 염두에 두고 여행을 다녀오고 또 글을 쓴 작품이다. 화가인 이인경님은 바쁘게 살아오느라 30, 40을 무심히 넘겼다가 50이 되자 비로소 자신의 나이에 대한 인지를 하게 되었다 한다. 그리고 마치 기념여행인것처럼 훌쩍 자신이 너무나 가고 싶었던 지중해로의 과감한 일탈을 꾀하였다. 바로 여자 혼자서!

 

모든걸 결정하고 예약, 결제까지 한 후에 부모님과 남편에게 통보하자 모두들 깜짝 놀랐다. 그리고 여자 혼자 어딜 가느냐, 가려면 엄마와 함께 가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나 또한 정말 우리 부모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자식은 언제까지나 자식인가 보다. 이제는 나이로부터도 자유로워져서 정말 여행을 맘껏 즐길 나이가 되었다고 말하는 저자분의 명쾌함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 분의 나이가 그래서 더 빛나보이고 여행기가 더 즐겁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여행에세이 치고 사진이 거의 없고 글로 가득해서 그 점이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리스식 정통 만찬에 대한 상세한 묘사라던지 미술을 전공한 덕에 파르테논 신전에 대한 배경 지식이 풍부해서 우리가 모르고 있던..아니 나만 모르고 있던. 그런 정보를 함께 얻을 수 있던 것도 좋았다. 아직 못 가본 나라들이었음에도 막상 내가 직접 가서 본다 한들, 파르테논 신전이 그 전에 상아와 금, 청동으로 장식되어 있다가 지금은 대리석만 남은 그 사연에 대해 꼼꼼이 알 수 있었겠는가? 신화의 주인공들이 살아 숨쉬는 곳이 아닌지라 생각보다 밋밋해서 이제 바다만 남은 여행이라 평했던 여행기였어도 내 눈에는 충분히 매력적인 여행이었다. 그리고 드물게 보여준 사진이었을 지언정 에게해의 바다는 정말 신이 창조한 듯한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성경에 등장하는 감람나무가 올리브인것도모르고 있는 무식한 나, 사실 궁금한게 있을때마다 찾아보면 새로이 알게 되는게 많은데 어려서는 꼼꼼이 찾아보던 그 습관이 어른이 되니 오히려 잊혀진 추억이 되어버려 모르는게 있어도 그냥 넘어갈때가 많았다. 그런 나의 무지를 촘촘하게 채워주는 책들을 만날때마다 행복함을 느낀다. 

 

이집트를 좋아하면서도 막상 이집트에 대해 아는게 너무나 부족함을 깨달았다. 람세스, 클레오파트라, 투탕카멘 등만 알고 있었고 핫셉수트 여왕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 처음 들었는데, 너무나 놀라운 여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막강한 권력 못지않게 놀라운 사실은 그녀가 모세의 양어머니였다는 사실! 이집트 공주가셊모세의 양어머니였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놀랍긴 해도 그녀의 존재에 대해서는 모세에 가려 덜 알려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막강한 실권자였다니..

 

이 책에 등장한, 그리스, 이스라엘, 이집트 모두 다 나 또한 매력을 느끼고 있는 곳들이었고, 어렸을때의 나 만의 공상에 어울리던 나라들이었다. 그 공상을 부끄러워했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어떠했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도 친구가 수업시간에 일어나 다른 친구의 장점을 추천하라는 말에 "@@이의 상상력을 본받고 싶습니다." 라는 발표를 하자, 모두들 웃어버려서 나의 상상력이 빨강머리앤에 나오는 앤의 공상처럼 헛된 시간이었나 하는 자괴감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어떤 계기에선지 나의 공상은 더 이어지지 않았고 말이다. 저자가 그리스를 더 꿈꿔왔다면, 나는 사실 이집트에 더 매료가 되어 있었다. 나의 전생은 이집트 신화 속 여주인공이 아니었을까? 하는 망상과 더불어 웬지 멀고도 친근하게 느껴지는 그 나라가 나의 소중한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자리잡았다. 늦은 나이라고는 하나 당당히 자신의 옛 꿈 속으로의 여행을 떠난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나라면, 아직 그 나이가 되어보지 못해 모르겠지만 저자처럼 당당히 자신의 꿈을 찾아 홀로 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 자신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동생아, 나 그냥 수다 떨고 싶어서 쓰고 싶어서 썼어! 그러니까 너도 있지도 않은 정답 알아내려고 앞뒤 맞춰가며 분석하지 말고 그냥 재미나게 읽어주렴. 너 나랑 얘기하는 거 좋아하잖아! 215p

 

아줌마라는 당당한 이름을 제목으로 내걸고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은 이인경님, 이 책을 쓴 목적이 뭐냐는 사촌동생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며 책을 마무리하였다. 그래, 나도 정말 이 분의 이야기를 재미나게 즐겼어. 그럼 되는거지. 여행에세이는 사진이 많아야하고, 여행 책이면 일정 같은게 촘촘해야하고,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 그저 작가가 해주는 이야기를 충분히 즐길 준비가 되어 있으면 되는 것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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