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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부모는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
신의진 지음 / 걷는나무 / 2010년 6월
평점 :

며칠전 루미나리에 공원을 갔다가 아장아장 걷는 아기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강아지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키가 커보이긴 했지만, 아기 얼굴이 앳되어 개월 수를 물어보니 28개월이란다. 우리 아기와 불과 6개월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걷긴 걸어도 주로 안겨있으려고 하는 울 아기가 여전히 할아버지에게 안긴채로 있자, 그 아이는 아기 사진 찍어준다며 (아마 우리 아기를 한참 어린 아기로 봤나보다.) 디카를 들이밀었고, 낯가림이 심한 우리 아이는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였다.
그 일 이후로 외할머니는 또 걱정을 하신다. 초등학교에 같이 들어갈 또래의 아이는 저렇게 키도 크고, 직접 카메라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영리한데 우리 아들은 너무 어린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사실 엄마 생각에 똑똑하게 느껴진다고 해도 유난히 다른 아이들보다 늦게 기었고, 걷기는 훨씬 늦게 걸었다. 말이나 다른 무엇보다도 걷기 발달이 느려서 유유자적하던 나도 나중에는 좀 걱정을 할 정도였다. 내가 늦게 걷지는 않았지만, 나나 신랑이나 워낙에 운동신경이 둔한 편이어서 아기가 늦게 걷는 것쯤 큰 문제가 되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주위에서들 걱정하시니 인터넷으로검색을 해봤다. 그랬더니 같은 걱정을 하는 다른 엄마에게 병원에 가봐라 어찌해라 하는 답변들이 많았다. 이렇게 어린 아기를 데려간다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어 아이의 뜻에 맡겨두고 지켜봤는데 다행히 지금은 걷자마자 뛸 정도로 아주 잘 걷는다.
단지, 아이마다 발달의 차이가 있다는 것에는 나도 크게 공감한다. 우리 아이가 뭐든 빨리 하면 좋겠지만 다소 느릴 수도 있다. 그것을 엄마들이 큰 병이나 되는 양 지레 겁을 먹는 것은 잘못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 우리 아이도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지는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몇 단어만 말을 하곤 하지만. 적어도 말귀는 다 알아듣고, 말을 하지 않아도 그게 무엇인지는 다 짚어내고 표현한다. 이 책의 작가 신의진님 말씀대로 아이의 발달이라는게 지속적인 발달인 사선 형태가 아니라 계속된 기다림과 자극 속에 어느 순간 갑자기 확 변하는 계단 형태의 발전을 보이기 때문에 일정 기간 동안 똑같이 보이다가 어느 순간에 '탁' 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다른 아이보다 조금 늦다고 걱정하지 말고,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면 될 것 같다. 아직 우리 아이들은 너무나 어리지 않은가? 게다가 저자 말대로 행복한 표정, 웃는 얼굴을 전반적으로 많이 유지하고 있으면 그 아이는 문제가 없는 뜻이라 한다. 가족을 향해 정말 살인미소라고 할 정도로 너무너무 예쁘게 웃어주는 아기, 그리고 자신도 그 웃음을 즐기는 아이. 우리는 아기를 보며 행복함에 빠져들 정도이니 아들을 걱정할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
사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엄마들의 열성이 말로 듣고, 머리로 생각했던 그 이상으로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대다수의 엄마가 그러지 않을 수도 있지만, 블로그, 카페 등에서 보이는 열성엄마들의 노력은 정말 무서울 정도로 대단하였다. 아이들에게 단계별 전집, 학습지를 들여주고 비싼 육아서적 교사가 집에 와서 아이들 수업을 한다. 아기때부터 그 수업이 이어지고, 그리고 문화센터는 몇군데씩 다니는게 기본이고 어려서부터 엄마가 따라다니며 이런 저런 교육을 시킨다. 아이는 재미있게 즐길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옆에서 보는 나 조차도 힘에 겨울 정도다.
아직 우리 아기에게는 그 정도의 열성을 들이지를 못했다. 그저 책이 좋다고 하면 읽어주고, 나가 놀고 싶다고 하면 걸려주고 한게 전부였다. 사실 어쩌면 저자가 말하는대로 현명한 엄마가 아니라 게으른 엄마라 그랬는지도 모른다. 첫 아이라 열성은 있어도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고, 그렇다고 돈이 많아서 다 돈으로 해결할 수도 없고 그럴 자신도 없었다. 아이에게 지나친 조기 교육은 오히려 독이 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대학 문턱까지는 엄마가 질질 끌어서 합격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이후의 인생이 화려하게 꽃피지 않은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에 너무 앞서 나가는데 겁이 나기도 하였다.
작가가 강조하는 것은 느리게 키운다라는 의미를 잘못 해석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조기교육이 무조건 잘못되었다는게 아니라 너무 앞서서 나가려고 하면 아이가 오히려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그렇다고 시기를 지나치게 놓쳐 되돌리기 힘들게 하는 것도 게으른 부모의 무지한 소치라 하였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시행착오를 거치는 수밖에 없다. 아이의 입장에 서서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실천 가능한 일이라 한다.
돌, 두돌 밖에 안된 아이들에게 앵무새처럼 한글을 억지로 가르치지 말고, 아이의 사고 수준이 발달될 때를 기다려야 한다. 사고력을 요하는 학습은 4~5세가 되어야 제대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강요된 조기교육은 학습효과만 떨어뜨리는게 아니라 암기 습관만 길들이는 것이라한다.

자신의 두 아들, 경모, 정모를 키운 경험을 바탕으로 또 많은 아이를 상담한 결과를 바탕으로 내놓은 책, 이 책은 사실 10년전의 동 제목의 책을 다시 개정 증보하여 내놓은 책이다. 이번에는 느림보 학습법이라는 방법까지 덧붙여 말이다. 이 책을 통해 천재 둘째 아이와 남들보다 다소 느린 첫째 아이를 키워야했던 엄마로써의 신의진 박사님을 새로이 만날 수 있었고, 그 전 책 신의진의 아이심리백과에서 만났던 그 세심함을 다시 한번 새길 수 있었다.
느리게 키운다는 것에 대해 아이를 방임하고 마음대로 키운다는 게으른 부모의 소치로 왜곡 해석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정말 제대로 때를 알아 아이에게 가르칠 수 있는, 반 발자국 앞서 나가거나 반 발자국 뒤서 따라와주는 그 두가지 방법을 적절히 조율할 수 있는 너무나 어려운 방법이라 한다. 느리게 키우기. 우리 아이를 위해 엄마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육아법이 아닐까 생각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