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동양신화 중국편 - 신화학자 정재서 교수가 들려주는
정재서 지음 / 김영사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어려서부터 신비한 신들의 이야기, 신화를 즐겨 읽었는데, 그때 읽은 신화는 그리스 로마 신화, 바로 서양의 신화 이야기였다. 동양의 신화에 대해서는 따로 접해 본 적이 없었고, 자라면서 여기저기서 드문드문 귀동냥으로 들은게 전부여서 제대로 알지 못하는게 많이 아쉬웠다.
 
대학에 들어가, 어느 남학생이 자기 아이디를 '치우'라고 쓰길래, 치우가 뭐냐고 물을 정도로 나는 동양신화에 무지했다. 서양의 신화 못지않게 신비하고 놀라운..아니 오히려 더 깊이 있고 새로운 신화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해줄 이야기 동양신화에 관심이 생긴게 그래서였다.  처음에는 책이 무척 두꺼워 깜짝 놀랐는데, 알고 보니 신화학자 정재서 교수님이 6년전에 2권으로 나누어 편찬한 책을, 다시 한권으로 묶어 내면서, 약간 수정하여 다시 내놓은 책이라 하였다. 정말 두 권이라면 믿어질 그런 두께의 책이었는데, 워낙 좋아하는 신화다보니 동심으로 돌아가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아마도 이 책은 어느 정도 글밥을 소화할 수 있는 아이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리라.
 
1만 8천년동안 혼돈의 알 속에 있던 거인 반고가 잠에서 깨어나 알을 깨고 나오자 거인의 기운으로 뭉쳐진 두마리 뱀 모양 기운은 각각 하늘과 땅으로 나뉘었다. 다시 1만 8천년이 지나 하늘과 땅은 구만리 멀어진 거리가 되었고, 세월이 다시 무수히 흐르자 반고가 죽고, 그의 숨결이 바람과 구름이 되고 목소리는 우레가 되고, 왼쪽 눈은 해가 되고 오른쪽 눈은 달이 되었다. 37.38p
 
동양 신화에서 인류의 창조는 여신 여와에 의해 이루어진다. 여신의 손으로 진흙을 뭉쳐 사람을 만들었고,위대한 어머니, 대모신이 되었다. 제대로 빚은 사람은 고귀한 사람, 귀찮아서 흩뿌려 만든 사람은 비천한 사람이 되었다. 47p 
   


여신 여와가 사람 뿐 아니라 가축과 곡식까지 만들고, 천지를 보수하는 공사까지 하였다.
여신 여와의 이러한 모습은 인류 초기의 여성이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존재였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하지만 후대에 이르러 가부장적 관념이 침투하자 여와는 오빠이자 남편인 복희의 반쪽인 종속적인 존재로 격하되어 그려진다. 74p 
   
또 진시황이 처음으로 썼다는 황제라는 칭호는 사실상 신 중에 최고의 신이 황제였다는데에서 자신을 신격화시키기 위함이 아니었나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었다. 1만 1520가지의 귀신과 요괴를 공부하고, 온 상상계의 지배자가 된 황제, 그는 절대 권력도 학습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 강력한 신이었다. 그를 보필하던 치우가 나중에는 그와 대립하여 싸우게 되는데, 이 치우가 바로 동이족의 신으로 나오고 싸움의 신이라 한다.
중국의 역사서에서는 아주 흉악하고 못된 괴물로 나오는 치우지만, 승리자인 황제 측에 의해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치우는 강인한 몸과 아울러 훌륭한 무기 제작능력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풍백과 우사의 도움을 받아 강력하게 대응하는 치우를 무찌르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지만, 황제는 결국 치우를 죽이는데 성공하였다.
 
치우는 동방지역의 신이었으므로 은이나 고대 한국 등 동이계 종족이 숭배하였던 신일 가능성이 크다. 치우를 도와주었던 풍백, 우사가 단군 신화에 등장하는 것만 보아도 그러한 점을 엿볼 수 있다. 붉은 악마에 그려진 도깨비 얼굴, 바로 치우의 모습이었다.
 
귀동냥으로 들었던, 여와, 반고, 치우 그리고 항아, 서왕모 등의 이름만 익숙한 많은 이름들의 신과 인물들이 나온다. 그들에 대한 궁금증도 풀 수 있어 좋았고, 궁금했던 동양의 신들에 대해 한권의 책으로 꼼꼼하게 정리하여 읽을 수 있다는게 행운이었다.
아시아의 대표적인 신화학자 정재서 교수는 동양 신화 특유의 매력을 한껏 보여준다.
우리는 또 하나의 소중한 현대의 고전을 얻게 되었다. 라는 엽서헌 사회과학원 교수 ,중국 신화학회 회장의 말에 공감한다.
 
서양의 대표적인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은 인간의 모습과 거의 흡사하고, 여인들은 대개 미녀로 그려지고, 최고의 신 제우스조차 바람둥이로 그려지는 등 지극히 인간의 속세와 가까운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온 동양의 신들은 신이라기보다는 괴물에 가까울 정도로 기괴한 모습들을 하고 있다. 개의 머리나 뱀의 꼬리를 한 모습의 반인반수의 모습도 흔히 나타나고, 서왕모도 처음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아닌 무섭게 생긴 노파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저자가 산해경, 목천자전, 초사, 회남자 등 중국의 신화 고전물을 철저히 고증하고, 중국, 일본, 대만을 수차례 답사하여 얻은 600여장의 다양한 그림들은 정말 책 속을 뚫고 나온 생생한 신의 모습으로 새롭게 우리앞에 펼쳐지게 된다.
 
다양한 민족이 엉켜 살고 있는 중국이어서, 신화가 일관적이지는 않다. 앞서 나온 같은 인물이 뒤에서는 또 다른 인물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그리고, 후대에서 아마 자신의 이익에 부합해 내용을 수정하거나 첨가하는 경우도 있었기에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이 자꾸 나오고, 내용들이 똑같지 않다고 해서 당황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늘에 태양이 열개가 뜬 이야기(삼족오 까마귀의 이야기), 예 장군과 항아의 슬픈 비극 이야기, 신비한 개 반호가 공주와 결혼하여 여러 족속을 번성시킨 이야기 등.. 멋진 신화가 새롭게 펼쳐진다. 그리고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신비하게 다가오는 먼 곳의 이상한 나라 괴상한 사람들 이야기는 더욱 재미있었다. 태양과 경주하는 거인 과보, 대인국 근처의 소인국 (30cm) 사람들, 머리가 셋이거나 몸이 셋인 사람들, 가슴에 구멍 뚫린 관흉국 사람들, 등의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상상 속 사람들과 겹치는 인물들도 미리 나와 있었고, 인어 아저씨 저인국 사람, 날개 달린 사람, 개머리 인간 견융국 사람등 기괴한 인물들이 정말 많았다.
 
사람 뿐 아니라 신비한 동물, 신비한 신의 모습들도 정말 많았는데, 사람의 모습에 동물의 모습이 섞인 모습으로 무섭기도 하고, 징그럽기도 한 다양한 그림들이 삽화로 실려있었다. 미친 병을 낫게 해주는 짐승 영소, 요사스러운 기운을 막아주는 구미호(원래는 좋은 이미지였다), 무기의 피해를 막아주는 짐승, 박 등의 동물들은 들어도 못본 동물들이 정말 많았다.
 
귀양살이를 예고하는 새 '주'나 가뭄을 예고하는 새 '옹'들은 삽화가 없었더라면 상상하기 더 어려웠으리라. 서양의 스핑크스보다도 훨씬 많은 동양의 다양한 괴조들.. 동양의 인면조는 흉조의 이미지가 후세로 가서는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길조의 이미지로 바뀌기도 하였다. 고구려 덕흥리 고분 벽화의 만세라는 이름의 인면조는 무덤의 나쁜 기운을 쫒아내고 죽은 자를 영원한 안식의 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434p
 
정말 환상적인 신화여행속으로 다녀온 느낌이다. 어릴적 책장에 꽂혀있던 아빠 책을 읽으며, 가끔씩 어린 내가 읽을만한 재미있는 책을 발견하면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기뻤는데, 이 책 역시 엄마 책장에 꽂혀 있어도 아이들에게 보물단지처럼 재미난 그런 책이 될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놀라운 신화 속 세상. 그 중국의 모든 신화가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그리고, 동이로 상징되는 우리 조상의 원류도 살짝 살짝 소개가 된다. 어쩌면 현대의 한민족보다 먼저 중국의 중심에 섰을 (지금은 잊혀진), 동이의 치우 등의 많은 신들은 여전히 우리 가슴 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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