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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행복해졌다 - 차로, 두 발로, 자유로움으로 세 가지 스타일 30개의 해피 루트
전은정.장세이.이혜필 지음 / 컬처그라퍼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차로 달리고, 발로 걷고, 친구들과 쉬엄쉬엄 여유자적하게 다닌 삼인삼색의 제주 여행기.
지은이 조이락은 造- 전은정, 異-장세이, 樂- 이혜필 세 저자의 각각의 여행기가 조화된 제주 여행책이다.
그들과 함께 한 제주녀 한 할망이 배후(?)에 있었고, 이혜필님의 경우에는 범쿤이라는 친구까지 더해져 여행을 풍요롭게 해주는 패밀리를 구성하였다.
제주에 내려가면 이대로 차에서 내리지 않고 계속 운전만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창을 활짝 열어놓고 구불구불 이어지는 해안 일주도로를 달리는 것도 좋고, 파란 하늘과 너른 들판을 보면서 곧게 뻗은 직선 도로를 달리는 기분도 최고다.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는 직선 도로를 달리다 보면 하늘 위에 떠 있는 거대한 초록색 융단 위를 달리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37p
차로 달리는 여행은 임신했을때부터, 이듬해 6개월의 어린 아들과 함께 한 여행까지.. 짧은 기간 동안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은 일정으로 다녀와야 했던 제주 여행에서 가장 우리가 선호했던 여행이었다. 제주에서의 멋진 드라이브.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 부부는 충분히 행복했다. 어느 행선지를 고르지 않더라도, (물론 한 두군데 목적지를 정해서 출발은 했지만.) 바다를 보며 달리고, 차가 많아서 스트레스 받는 대도시의 드라이브와 달리, 한적한 도로 위를 느긋이 달리는 그 기분은 제주도만의 드라이브 맛을 느끼게 해주는 기쁨이었다. 신랑도, 신랑의 직장 동료도 출근길에 가로수가 멋드러진 어느 도로를 달리다가, 아..제주도를 달리고 싶다~ 라는 생각으로 바로 이어졌다고 하던데..바로 제주의 드라이브의 참맛을 느낀 사람들의 반응이 아닐까 싶다.
특별한 코스보다 발길닿는 대로, 혹은 그저 가는 길 곳곳을 바라보는 재미로도 충분한 여행이었기에 전은정님이 추천해주는 코스들이 은근히 다녀온 곳들이 많아 반갑기도 하였다.
1100도로와 516도로(박정희 대통령이 제주도민들에게 하사했다는 , 어떤 사람들의 피땀이 어린 그 도로), 1112도로까지..
1112번 도로는 제주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길로 손꼽힌다고 한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북유럽의 어딘가가 이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이국적인 느낌으로 충분한 이 도로는 특히 눈 내리는 겨울에 가장 신비한 매력을 뽑낸다. 하얀 눈이 뾰족한 녹색 잎 위에 올라 앉아 만드는 눈꽃은 한라상의 겨울이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그림' 중 하나다. 47p
우리 부부도 태교 여행으로 1112도로와 절물 휴양림 산책을 선택했었는데, 그때의 건강한 기운이 우리 아기에게도 충분히 전달되길 바라며 심호흡 크게 하며 공기를 들여마셨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잡지를 만들던 세 여인의 글이라 그런지 하나같이 글도 잘 쓰고, 하고 싶은 말도 많아 보였다. 한권의 책에 세 사람의 이야기가 담기는게 모자라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다보니 글자가 좀 작아지는 경향이 생기기도 하였고 말이다. 책이 아닌 인터넷만으로 여행을 검색할 적에는 괜찮은 목적지와 맛집, 코스 등을 찾기 위해 정말 많은 시간을 들여 글을 읽고, 걸러내는 작업을 해야해서 번거로웠는데, 이 책을 보니 내 노력이 참 헛되게 느껴질 정도로 꼼꼼하게 잘 나와 있어서.. (물론 아쉬운 사람들은 추가 일정을 고려해야하겠지만.. 관광지 위주의 여행이 아닌, 이 책의 일정은 제주도를 걷고, 드라이브하고 쉬며 여행하는 어른들이 즐길..자연 그대로의 여행이기에..) 이 책을 갖고 다시 제주를 찾아야 하는게 아닌가 싶었다.
녹차 하면 오설록 티 뮤지엄만 알고 있었는데, 책에 소개된 경덕원이라는 곳은 묘하게 인공적이면서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곳곳에 숨어있는 굉장히 '관광제주스러운' 공간이라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119p 사진 속 동굴 카페에서의 운치 있는 차 한잔. 정말 꼭 한번 경험해보고 싶었다. 또 우리나라 최고로 맛있다는 이시돌 우유를 만드는 이시돌 목장이 성이 이씨요, 이름이 시돌인 한국인 농부가 아닌 스페인 농부 isidore의 이름으로 나중에 가톨릭 교회 농민의 주보 성인이 된 사람이라는 것도 새로 안 정보였다.
이 장세이님은 한라산 등반도 하고, 오름 등반, 그리고 그 유명한 올레 걷기도 체험하는 걷기 여행의 기쁨을 소개해주었다. 제주 올레에 관한 책, 혹은 제주 여행때마다 얼핏 들었던 설문 대할망의 슬픈 설화를 제대로 이야기해주었다. 그녀가 한라산에서 만난 오백나한은 모두 설문대할망의 아들이다.

할망은 한라산의 어머니고, 슬하에 500명의 아들을 둔 거신이다. 바다에 일 나간 아들들의 죽을 쑤려고 솥 가장자리를 돌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솥에 빠져 죽었다. '돌아온 500명의 아들은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죽을 다 먹고 나서야 나막신인지 뼈다귀인지를 보고 "아, 이래서 엄마가 밥때가 되면 일찍 일찍 들어오라고 하셨구나" 하면서 피눈물을 흘리다 바위가 되었다. 그 바위가 영실기암, 오백나한이다. 해마다 오뉴월이면 오백나한의 피눈물이 붉디붉은 진달래와 철쭉으로 피어난다.
1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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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친구 제주 미실(워낙 사람을 끌어당기는 인기인이었기에 )은 고민하는 그녀를 올레 7코스 입구에 내려주고 갔다.
"길은 원래 혼자 걷는거야"라면서..
어떤 고민을 가져와도 충분히 곱씹을 시간이 있어서였을까. 생각이 보폭처럼 느려졌다. 시간이 충분하다는 것. 얼마나 큰 위안인지. 달리는 것도 아닌데 길 풍경은 시시각각 변한다. 올레 7코스는 본을 대고 그린것처럼 섬의 생김을 따르는 길이다. 순순한 섭리의 길은 수많은 효용의 길과 다른 여백을 가졌다. 168p
"올레는 어땠어?"
"길이 보여 줄 수 있는 모든 길을 봤어."
"고민은 해결됐고?"
"정할 게 뭐 있어. 길 따라 순순히 걸으면 되는 거지. 안 그래?"
174p
오름은 다른 산처럼 정상을 목적으로 오르는 산이 아니라 둘레를 따라 돌아야 제 맛이 난다. 둘레 모두가 정상이고, 매 정상마다 풍경과 전망이 달라진다. 동서남북 방위에 따라 다른 오름 무더기가 보이고 어렴풋이 한라산과 바다가 보인다. 오름은 분명 산이되, 높이보다 넓이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산이다. 180p
세 여인 중 가장 젊어서 그랬을까? 발로 걷는 힘든 여행을 하면서도 그녀는 많은 생각을 하고, 더 나은 곳을 찾아 여행을 다닌다. 그리고, 올레 이외의 추천 코스를 묻자, 사람들이 사려니숲길을 일러주었고, 마침 실연의 상처를 안고 있던 그녀는 사련의 숲길이라며, 그곳을 새로이 정의하고, 블랙 슬리브리스 원피스에 커다란 왕골모자 차림을 하고, 멋진 분위기를 즐기며 떠났다. 그리고, 비가 오고, 길을 잃어 결국은 119 구조대원에게 구조되기도 하고 말이다. "복장 참 불량하시네요" 라는 핀잔까지 들으며말이다. 다양한 경험을 한 제주의 여행이었지만, 그녀들은 제주를 사랑한다. 그리고 또 다시 일상 속에서 그리워하고 있다.
남편복, 자식복을 대신해 사주에 떠억하니 자리잡은 여행복, 친구복. 이 두가지 복에 더해 여지껏 철들지 않은 무한 자유 정신을 무기 삼아 내가 취하는 여행방식은 '현지의 지인 주변에서 오래 머무는 여행'이다. 터프하게 표현하자면,' 빌붙어서 뭉개기'라고 할까? 아니아니, 기왕이면 좀더 멋지게..그래, 바로 '유유자적'이다. 270p
친구는 닮는다고 했던가? 삼청동 카페 '님' (Nimes)의 주인장이기도 한 혜필님의 제주에서의 소중한 벗, 제주할망은 바로 화가 김미열님으로 갤러리 필연의 주인이라고 한다. 어쩐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그들. 거기에 또 다른 패밀리 범쿤까지 더해져, 제주에서의 현지인같은 삶으로 여행을 즐겨본다.
제주사람처럼 자연 체력단련장에서 에너지 업을 하기도 하고, 정말 여유있게 즐기는 한달짜리 여행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다. 여행인지 삶인지 헷갈릴 정도로..
한라 수목원과 더불어 밟기 좋은 루트로 추천해준 곳은 수목원 입구 자연음식 전문점에서 웰빙식사를 하고, 커피는 예술 감상과 세트로 하고 싶으면 제주 도립미술관에 가서 작품감상과 더불어 즐기면 되고, 분위기 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하우스 가든 건물의 왼쪽 끝에서 '브라운 커피'라는 곳에서 즐기면 된다고 한다.많은 일정 중에서 어쩐지 먼저 실천해보고 싶은 일정이라 소개해보았다.
겹치는 듯, 또 새롭게 소개되는 그녀들의 제주도 여행.
그 중에서 락 혜필님의 코스 중에 태고의 숲, 곶자왈도 무척 매력적인 곳이었다. 수십만년 묵은 태고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한 진짜 숲 '곶자왈' 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났기 때문이었다.
끝에 다시 소개된 그녀의 루트는 역시 다른 이들의 루트보다 훨씬 길다. 11박 12일짜리 유유자적 코스인 것이다. 아, 정말 제주도에서 그렇게 맘껏 쉬다가 오면 좋을텐데.. 그녀가 부럽고 또 부러웠다.
취재로, 여행으로 다양한 이유로 제주를 여러번 다녀오고, 제주와 사랑에 빠져 구석구석 누비는 그 경험담을 담아낸 이 책은 다시 말하지만, 관광지를 나열한 그런 책이 아니다. 요즘 읽었던 걷기 스페셜, 제주 올레에만 국한된 책도 아니다. 3명의 여인이 펼쳐낸 다양한 색깔의 자연으로의 여행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그런 여행이다. 테디베어 박물관, 유리의 성 등 유명 관광지에 대한 소개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다른 책을 더 참고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그런 관광지를 배제하고, 그저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는 곳들을 찾은 나에게 딱 어울리는 책이었다. 그래서, 더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으로 마지막 책장을 소중히 덮었다. 이젠 정말 이런 여행을 다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