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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러스트
필립 마이어 지음, 최용준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상황은 점점 나빠졌다. 공장은 계속해서 사람들을 해고했고, 밸리에는 해고당한 사람드로 가득했으며..남아 있는 직장은 아무 것도 업성ㅆ다. 한편 제강소에서 구년 반 동안 근무하며 높은 급료를 받던 버질의 사촌은 수영장이 딸린 멋진 집과 부인과 딸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렸다.
밸리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 비슷한 사연이 있었다. ..암흑의 시절이었다.
7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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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과 포의 마을은 철강 산업의 쇠퇴로 평범한 삶을 꾸려나가던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 노동자로 전락을 하였다. 잘나가던 풋볼 선수였던 포는 풋볼 특기생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음에도 트레일러에 남아 어머니와 함께 사는 삶을 선택했고, 마치 그게 그의 실패한 인생인양 떠벌리기 좋아하는 마을 사람들 덕에 주먹을 쓰는 일이 더 잦아졌다. 힘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그는 마을의 골치꾼 같은 존재였다.
포의 친구 아이작은 마을, 아니 주 전체에서 가장 똑똑한 소년이었다. 아니 이제는 스무살이니 청년이라고 해야하나? 아이큐가 167로 누나인 리보다도 머리가 좋았으나, 노인네라 부르는 자신의 아버지 헨리를 간병하기 위해 지긋지긋한 마을에 남았다. 누나는 엄마가 자살하고 나자 바로 예일대로 날아가버리고 어린 스물세살의 나이에 엄청난 부자인 사이먼과 결혼해 안락한 삶을 누렸다.
아이작이 자신을 멸시하는 아버지의 곁에서 오년을 버티다, 이제는 드디어 떠나기로 결심하고 포를 찾아가 동행을 부탁한다. 그리고 그들은 잠깐 노숙을 청하려던 곳에서 뜻하지 않은 살인사건의 주범이 되고 말았다. 살인을 저지른건 아이작이었지만, 아이작이 살인할 수 밖에 없었던 건 친구 포를 성폭행과 살인(포가 죽었을지 모를)에서 구하기 위한 방어적 행동이었다.
아이작과 포의 우정, 그 사이에는 아이작의 누나 리를 사랑하는 포의 마음도 작용하였다.
마을에서 가장 힘이 센 청년, 그리고 가장 똑똑하지만 가장 유약했던 소년. 둘의 어울리지 않은 우정은 부랑자 살인사건이라는 의도하지 않은 현실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모로 보나 자리를 떠났던 아이작보다 포가 더 의심을 받을 상황이었고, 둘은 그 상황에 번뇌하다가 아이작이 먼저 마을을 떠나고야 말았다. 남겨진 포는 살인범으로 지목되어 감옥에 가게 되었고 말이다.
포와 아이작, 그리고 아이작의 누이 리, 포의 어머니 그레이스, 그리고 그레이스를 사랑하는 경찰서장 해리스, 아이작과 리의 아버지 헨리, 총 6부의 이야기동안 각각의 인물들의 이름이 챕터 제목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각각의 시선에서 진행되는 무게감있는 이야기. 어둡고 가난한 현실 속에서 꿈을 향해 달려가고 싶으나 철강산업의 붕괴와 더불어 부모의 자살, 혹은 가난으로 인한 좌절등을 맛봐야 했던 어린 소년들의 날개 접힌 꿈들..
"우리는 곧 이 곳에서 벗어날 거야."
"모든 걸 제대로 해놓겠다고 맹세할게."
"아쉽게도 하루 늦었어."
아이작은 리의 대답을 듣기 전에 현관문을 나서서 어둠 속으로 뻗은 길을 따라 자신의 길을 떠났다.
138p
과감히 자신의 미래를 위해 병든 아버지 수발과 사랑하고 유약한 어린 동생 따윈 놔두고 훨훨 날아갔던 누이 리, 그녀는 오년이나 그들을 그대로 방치했고, 오년 후에 그녀가 모든 것을 되돌리려 했을땐 정확히 하루가 늦어버렸다. 그리고, 리가 아이작을 불렀던 과거에 아이작이 명문대 입학의 꿈을 버렸던 건..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아버지의 인정과 사랑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필요하다고 노인네가 인정하길 바랐기 때문이야. 235p
붕괴된 산업 뿐 아니라 가족 또한 행복한 삶을 영위하지 못했다. 자살하거나 이혼하거나 그렇게 무너져간 가정들이 많았다. 포와 아이작의 가정들도 역시 그랬다. 그들의 가족 이야기가 미국의 어려운 현실을 대변하듯 흘러가고, 그 중심에 그들이 연루된 슬픈 살인사건이 자리하였다. 살인사건으로 감옥에 갈 수 밖에 없었던 포. 그는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대로 아이작이 범인이라고 자백할 것인가? 너무나 무서운,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끔찍한 죄수들로 가득한 그 곳에.. 자신의 체중의 절반도 되지 않은 아이작이 들어오면 그대로 죽어버리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 또한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 바로 교도소였다.
포는 아이작을 구했고, 아이작은 포를 구했다. 포와 아이작은 비긴 걸까. 아닌 걸까? 257p
포가 감옥에 갈줄 짐작할 수 있었으나 자수하지 않고..떠났던 아이작. 그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의 살인은 사실 아이작의 죄라고만 단정짓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나 또한 이 상황에 직면한다면은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할 것 같았다.
리 역시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자신의 애인과 동생 중에 누구를 선택한다는 것은 정말 큰 어려움이었으리라.
모두의 선택, 그리고 그 셋 이상의 다른 사람들의 선택..
모두가 주인공이고 모두가 그 사건을 위해 선택을 한다.
아이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한층 더 성장하고, 어른들은 자신들을 되돌아본다.
이제 그만 인정해, 발을 멈춰. 아니, 계속 걸어. 아이를 믿어봐. 아이가 뭔가를 알게 될 거야.
아이작은 계속해 걸어갔다. 더이상 어떤 집에서도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아이 따윈 없어. 아이작은 생각했다. 여기엔 나뿐이야. 450p
집을 떠나 무수히 아이라는 자아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던 아이작은 드디어 아이의 부재를 깨닫고, 스스로 독립한다. 그리고, 감옥에 들어간 포 역시 어리석고 무절제했던 과거의 삶,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감옥에 들어 올 수 있었을 자기의 폭행 전과들을 떠올린다.
진실은 어떻게 밝혀질 것인가?
500page가 넘는 이 놀라운 장편 소설이 작가의 첫 데뷔작이라는게 정말 믿기지가 않았다.
두꺼운 소설, 그리고 각각의 주인공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내가 알고 있는 세상, 내가 겪은 세상 이야기가 아님에도 충분히 몰입도가 있고, 집중하여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의 어려운 삶에 완전히 동화되기란 어려웠지만, 그들이 택한 상황이었다면 누구나 살인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은.. 그런 무서운 감정마저 들게 만들었다.
끝으로 가면 갈수록,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그 작가의 생각의 깊에 다시한번 감탄하며..
새로운 결말을 열어준 작가에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 놀라운 데뷔작 한편으로 필립 마이어는 2009년 가장 떠오르는 신예로 주목받았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존 스타인 벡, 윌리엄 포크너 등의 거장들과 나란히 비견되는 영예까지 안은 것이다. 또한 월터 살레스 감독에 의해 영화화될 예정이라니, 놀라운 영화 한편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