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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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가 그들(청)의 편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세자는 적의 땅에서 결코 돌아오지 못할 것이었다. 적의 땅에 머물며 낮과 밤마다 홀로 삭였던 고독이 조선의 땅에 돌아와서는 고독을 넘어 슬픔이 되었다.

그러한데, 임금은 나를 위해 울어주지 않으실 것인가. 정녕 울어주지 않으실 것인가. 161p

 

병자호란때 청으로 볼모로 잡혀간 세자 소현.

그 존귀하신 분의 슬픈 이야기를 이렇게 책으로 만나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일제시대 때의 슬픔을 감당해야했던 덕혜옹주의 이야기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높고, 고귀하신 분이셨던 장차 왕이 되셨어야 할 우리의 세자 소현의 이야기는 그보다 더 오래되었으면서도 더 가슴아리게 다가왔다. 망해가는 나라 명을 받느는 조선의 대신들에 의해 청에 잡혀가 4년, 7년의 모진 세월을 견뎌내는 세자의 입지는 갈수록 약해져갔다. 그리고, 아버지인 왕조차 갈수록 세자를 의심하고 아들과 거리가 멀어져갔다.

 

정승의 자제로 태어나 시국을 잘못 타고난 탓에 세자처럼 끌려왔다가 한낱 천것의 칼에 맞은  석영의 이야기나 왕의 종친의 딸이면서도 황제의 여자가 되었다가 청의 대학사의 작은 마님이 되어버린 흔의 이야기. 그리고 무수히 잡혀온 양반, 상민들이 노예가 되고 여자는 능욕을 당하였다.

전쟁의 끔찍한 기억들, 그리고 다른 나라에 세자를 볼모로 잡혀야했던 끔찍한 수모.

 

교과서에서도 많이 다뤄지지 못하는 우리의 역사가.. 한편의 슬픈 책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저 한 줄 두줄로밖에 배우지 못했던 그 분의 이야기를 이렇게 슬픔에 가득차 읽어내려갔다.

 

세자가 원손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비루함의 너머에 이있는 것, 혹은 그 중심에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언젠가는 이루어져야만 할 꿈이었다. 208p

 

소현은 청국에서 오랜 세월을 버티다 돌아왔음에도 왕의 신임을 오히려 잃고..
힘든 볼모 생활에도 불구하고, 청의 강압대로 출정을 나가고 말을 아끼고 노력했던 세자의 모든 것들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조선은 더이상 소현을 위한 나라가 아니었다.
조선으로 돌아온 후 학질이라는 병으로 죽었으나, 세자가 죽었음에도 왕은 의원을 탓하지 않았다 한다. 오히려 1년 후 세자비에게도 사약이 내려지고 원손인 그의 아들과 다른 두 아들들 모두 귀양을 가게 되었다.
이로써 왕이 혹시 세자를 죽인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올 수밖에없었다.

소현의 슬픈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소현을 몰랐을 적에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그 슬픈 모습만이 인상적으로 남아있었다. 조선왕조500년에선가 봤던 그 믿기 힘든 아비의 잔혹함..
소현을 읽으면서도 그것을 느꼈다.

 아비에게 버림받은 세자, 그리고 그의 슬픈 애환.


 작가 김인숙은 슬픈 과거사에 묻혀버리고만 세자 소현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슬프고도 애절하게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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