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소디 인 베를린
구효서 지음 / 뿔(웅진)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내가 평생 가닿고자했던 곳이 하나코였다는 사실을 못내 고백하는 것.
김상호, 겐타로의 유언에 등장하는 하나코. 그녀는 40년만에 소식을 들은 연인 김상호의 유언에 자신이 등장함을 알고.. 김상호의 족적을 찾아, 그리고 것이나 사람이 나닌 곳으로 표현된 그의 뜻을 찾아 김상호가 살다가 자살한..독일로 향했다. 재일한국인으로 태어나 독일에서 생을 마감한 김상호.
그는 불현듯 독일로 유학을 떠났고, 그곳에서 TNF라는 문서를 손에 넣어 갑자기 평양에 사본을 구하러 다녀왔다. 그리고 한국에 17년 구금되었다가 독일로 돌아와서 살다 자살하였다.
 
그의 삶과 죽음의 원인이 궁금해진..하나코. 하나코는 TNF라는 그 단서가 될 문서를 통역가 이근호에게 부탁을 하고, 그 문서 안에서 또다른 예술가 요한 힌터마이어의 삶이 펼쳐진다. 그렇게 이 책은 요한 힌터마이어와 김상호 두 사람의 이야기를 펼쳐내었다. 두 조선인 천재 음악가의 이야기를...
 
의지가 아니에요. 붙들리고 홀리는 거죠. 강제되는 거예요. 그것에 이끌릴때 겐타로는, 아니 토마스는 가엾게도 미끼를 따라가는 한낱 곤충이거나 담수어에 지나지 않아요. 자신도 알았어요. 고쳐지진 않았죠. 슬프잖아요. 92p
 
조국이라는 단어에 홀리는 겐타로. 하나코는 겐타로를 이렇게 표현했다. 랩소디 인 베를린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디아스포라의 이야기..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왔어. 끝없이. 해국 꽃잎과 이파리가 하염없이 나부꼈어. 네 셔츠와 스카프도 그랬어. 길에 들어서면서부터 길이 끝날때까지. 두 시간동안 멈추지 않았어. 우린 말없이 걸었어. 길고 먼 길을 걸었어. 온통 흔들리는 보라색과 연둣빛이었어. 네가 보였다 안보였다했어. 연둣빛 안구에 보라색 동공. 내 눈이 그렇게 물들었을거야. 들이쉬는 숨은 연둣빛이고 내쉬는 숨은 보라색이었어..
..사실은 섭리이길 바랬어...
...내가 널 좋아하게 됐다는 거..
하지만 내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이미 짙게 물들었다는 것...112.113p
 
보라색이 선연하게 아름다운, 그들의 사랑. 5P 3/10
색으로 표현한 겐타로의 먹먹한 사랑. 그리고, 그 둘의 사랑을 더욱 빛나고 애처롭게 만든 그 보라색이라는 빛깔. 내가 한때 좋아하던 색이었지만, 보라색이라는 색은 항상 슬픔을 동반하는 빛깔인것 같다.
 
자네의 것은 바깥에서 오는 거였어. 자네도 모를 바깥 어디에서. 하늘, 빛,구름, 바람 같은 곳으로부터. 나는 그런 것들을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이미 내 안에 가득찬 것이 있었지. 처음을 잊었고, 그래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라네... 자네는 한번도 배운 적이 없지. 자네에겐 바깥의 것이 거침없이 들어와 원시의 몸을 끓게 하고, 소용돌이치는 소리로 살아나게 한다네. 147p
 
천재를 알아보는 뛰어난 눈과 귀, 하지만, 본인은 절대 그 타고난 천재가 될 수 없었던 그냥 주변인일 수 밖에 없던 사람. 그래도 한낱 풀무꾼에 지나지 않았을 요한을 이름을 붙여주고, 음악을 펼치게 만들어준 또 하나의 주변인. 그로 인해 세상에 요한 힌터마이어가 알려지게 되고, 후세인들은 그의 음악을 기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정말 실제같은 그 이야기들로 나는 요한 힌터마이어가 실존인물인줄 착각하며 읽었다. 작가가 소설을 쓸 예술적 영감을 얻게 된 것은 바하로 인해서였다 한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 그로 인해 두 명의 천재 음악가가 재 탄생한것이다. 김상호와 요한 힌터마이어.
그리고, 그 둘의 핏빛 눈물나는 사랑..많이 닮고, 많이 슬픈 시대를 뛰어넘은 그들의 공통점.
머나먼 타국 땅 독일에 살고 있었으나 둘의 몸에 흘렀다는 조선의 뜨거운 피.
 
국적은 한국이지만, 토마스는 한국말 몰라요. 일본에서 살았고 독일에서 살았죠. 세상엔 그런 사람들 이 있어요. 살고 싶은 곳에서 살지 못하는 거죠. 떠도는 것도 아니면서 떠돌지 않는 것도 아니죠. 영원히 그럴 수 밖에 없을 것 같은. 음울한 운명을 불치의 통증처럼 안고 사는 사람들. 물론..그들 잘못은 아니죠.... 206.027p
 
하나코가 말한 불치의 통증..
소설을 다 읽고, 인상적인 구절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다가 끝 부분까지 다 읽고 나서야..아.. 이런 의미였구나 하고 다시금 되새겨졌던 그런 말들..
그저 조선을 그리워하고, 한국을 사랑했던 두 음악가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 안에 스며있을 수 밖에 없었던 애절한 이야기들이..정말 놀랍게 펼쳐지는 랩소디 인 베를린.
 
하나코가 따라가는 김상호의 이야기 속에 요한의 삶이 숨어있고, 그리고 우리가 알고 싶지 않은 암울한 시대상들이 투영되어 있었다.
 
두껍고, 딱딱하고..어설픈 애국심을 호소하고..
책 소개글이 어쩐지 어렵게 느껴져 얼핏 잘못 추측할 수 있었던 이런 억측들은.. 책을 다 덮고 나면 눈녹듯이 사라져버린다.
이 책... 놓치면 정말 후회하게 될 책이라.. 감히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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