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여행자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10개의 단편 중에 제일 재미있게 읽은 것은 '나날의 봄'과 '영하 5도'였다. 역시 난 말랑말랑한 연애소설이 좋은 가보다. 게다가 나날의 봄 같은 경우에는 마치 여성 작가가 쓴듯, 실제 다가갈듯말듯한 여성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져서 진부하지도 않고, 상큼하게 와닿아 좋았다.

 

나날의 봄은 특히나 장편소설처럼 늘어지는 느낌이 없이 처음부터 그 느낌이 산뜻하게 와 닿는다.

복사기와 씨름하는 신입사원 다테노의 옆모습을 바라보자니 그 턱선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나도 모르게 넋을 잃고 말았다...다테노는 여자를 어떻게 안을까? 9p

궁금한 여자선배는 결국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물어봄으로써 대충 추리를 한다. 처음부터 다테노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선배 이마이. 하지만, 그냥 그 선까지다. 더 물어보지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은채. 그냥 그 마음 그대로인듯 한데..  조금씩 서로의 관심사에 귀기울여 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그렇게 다가가는 연인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둘의 어떠한 결말을 맺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의 상상에 맡길뿐..

 

다테노가 좋아한다는 영화를 혼자 보고, 이마이가 응원한다니 그제야 다테노도 축구팀에 가입하고..

누군가를 천천히 좋아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 것을 천천히 인정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천천히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건 역시 불가능한것같다. 19p 이마이의 마음이 기울어지는 만큼 다테노도 같이 박자를 맞추고, 속도를 맞추어 다가와야 할텐데 걱정이 되었다.

 

다행인것은 수화기 너머로 몹시 조심스러워하는 목소리로 다테노가 이마이에게 알쏭달쏭한 데이트 신청을 해왔다는 것이다. 축구부 응원을 하러 와주면 역까지 마중나오겠다는.. 적어도 내 눈에는 데이트로 보였다. 그들의 사랑은 이렇게 말랑말랑해서 더 느낌이 좋았다.

 

섣부른 판단을 잘 하는 나로써 여기까지 읽고서 아, 도시 여행자는 참 말랑말랑한 소설이구나 하면서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참 여성적인 문체로 말랑말랑한 느낌이예요 하고 이야기를 했는데.

역시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저질렀다.

 

이 소설과 영하 5도까지는 그렇지만, 그 이후의 소설들은 좀더 느낌이 색다르다. 확실히 다른 시간 동안 천천히 나누어 쓴 소설들이라 그런지 작가의 여러 생각들이 혼합된 느낌의 소설들이 많았다.

 

영하 5도는 서울이 배경이라 더욱 관심있게 읽혔던 소설인데, 일본인 여성과 한국인 남성 사이에 알듯 모를듯 서로 관심은 있으나 지나쳐 가는 과정, 그러면서 동시에 그들이 궁금해하는 영화인지 소설인지가 겹친 다는 것으로 그 둘의 인연고리를 풀어내고 있다. 나 또한 그들이 말하는 소설이 어떤것인지 궁금해질 정도로.. 값싼 넥타이를 그렇게 수집하는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그랬는지..또 어떤 소설 혹은 드라마에서 그랬는지 도저히 모르겠다라는 말씀..

 

 어쩐지 일본 소설임에도 중간중간 한국과 관련된 소재들이 많이 등장해서 더 눈에 띄기도 했다.

영하 5도가 아니더라도 나날의 봄에서 다테노가 전 애인과 서울에서 갈비로 다툰 이야기, 녀석들에서 주인공이 찍은 작품은 김치찌개 남은 국물이었고, 그가 인상적으로 말한 친구도 이군이었다. (한국인으로 짐작되는..) 오사카 호노카에서 친구가 돈을 번 수단이 한류 붐으로 욘사마 상품으로 돈을 벌었다는 게 나온다. 참, 그러고보니 오사카 호노카는 오사카의 색채를 좀 많이 띤 작품 같다.

다른 소설들은 각각 다른 도시긴 해도 두드러지게 배경이 드러나는 느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오사카 호노카에서는 비교적 오사카의 느낌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오코노미야키집이라던지 그들이 다니는 술집과 호텔 ,명과로 산 오사카 호노카 등을 들어 나름대로 그 도시의 여운이 느껴지는 듯 했다.

 

책의 원제와 제목이 같은 "캔슬된 거리의 안내"는 무기력하고 한심한 형이 일하는 동생에게 얹혀지내는 이야기, 그리고 동생 즉 주인공이 전애인의 집에 드나드는 이야기, 주인공이 어릴 적에 군함도라는 섬에서 가이드 아르바이트하던 이야기의 세 축으로 진행이 되었다. 어쩐지 형을 닮은 사내가 자전거 자물쇠 와이어를 절단하는 것을 유심히 바라봤던 것처럼 나 또한 그 형을 보며 누군가가 떠올라 계속 오버랩이 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요시다 슈이치의 장편을 읽어보지 않아서 아직 그의 느낌을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살짝 들여다본 기분은 들었다. 단편은 함축적인 글이라 생각을 더 많이 하게 한다.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그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바다 건너 요시다 슈이치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책, 바로 도시 여행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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