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 - 느리게 행복하게 걷고 싶은 길
이해선 지음 / 터치아트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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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있으면 마음이 푸근해지는 그런 여행 에세이를 만났다.

결혼하고 나서 시간도 사정도 여의치 않아 해외여행은 못 가고 대신에 제주도는 일년에 한번씩 다녀오게 되어서 제주도의 매력에 푹 빠져 살고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제주 올레라는 새로운 여행문화가 생겨서 사람들이 애용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임산부때, 그리고 6개월 아기를 데리고..두번의 여행에서 모두 걷는 여행이 무리가 될것같아 해안 도로를 드라이브 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돌아온 여행이었는데, 올레길이라는 새로운 테마가 나의 관심을 끌었다.



이 글은 저자가 제주도 올레길을 여행하면서 만난 풍경, 사람들, 그리고 여러 전설 등에 대해 자신의 추억과 맞물려 가볍게 에세이를 풀어낸 작품이다. 그 사이사이 들어 있는 풍경 사진들이 얼마나 멋드러지는지 제주도를 사랑하는 내 눈에는 더욱더 빛나는 보석같아 보였다.



90년대 초에 혼자 우도 촬영차 들렀을때 배가 고파 꼬르륵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을 동네 주민인 할아버지 한분이 듣고서 자신의 집에 가서 할머니께 라면좀 끓여내오라고 하셨다.

"객지에 나왕 배고픈게 제일 서러운데 많이 드십서예"

"혹, 자리젓이렌 먹어본적 이수꽈? 먹을 줄 알민 나가 가져오꾸다."

섬에서 자란 저자는 할머니가 손으로 쭉 찢어얹어주는 자리젓과 라면에 찬밥을 진수성찬 못지않게 맛있게 먹었다.

선착장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는데, 할머님의 말씀이 귓전에 맴돌기를..

"내 새끼들도 객지에서 저렇게 배가 고플 터인데..."

짧은 순간 나는 돌아가신 내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라는 저자의 멘트가 귀에 남았다.



올레길에서 수시로 만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보면서 저자는 부모님의 빈자리를 추억하기도 하고..그분들에게서 정겨운 그리고 정말 수많은 제주도의 전설을 전해듣기도 한다.

할아버지 묘에서 갓 딴 산딸기를 나눠주시는 할머니서부터..농장의 귤을 무상으로 가져가 먹으라는 마음씨 좋은 농부.그리고 대문이 없는데 도둑이 들겠냐는 민박집 해녀할망.. 제주도만의 구수한 사람들을 만난다.



항상 멀게 바라보거나 목장에서 안장 얹고 타야했던 말이 스스로 다가와 같이 길을 걷는 통오름의 올레길도 인상적이었고..(말과 함께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는 길이있다는것이 몹시 놀라웠다. 내가 어려서부터 말을 좋아해서 그런가보다.) 14코스의 올레길 중 하나만 선택해야한다면 꼭 추천해준다는 7코스의 올레길은 50여개국 외교관들이 극찬하여 입소문이 나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명소길이라 하였다.



4~5시간 정도의 코스별 올레길을 걸을때마다의 저자의 이런 저런 이야기도 좋았고, 너무나 멋진 제주의 사진도 정말 눈을 호강시켜 주기에 충분하였다. 직접 보면 더욱 감동적인 곳이겠지만, 먼저 눈으로 이렇게 호사할 수 있음이 얼마나 행복한가..

7코스 중의 외돌개 다음 돔베낭길에서의 그의 표현이 사진만큼이나 아름답다.


바다 위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들, 연보랏비 갯무꽃들, 먼 바다에서 불어와

처음으로 얼굴에 와닿는 그 푸른 바람들, 알베르 까뮈는 그의 고향 티파샤에는

신들이 내려와 산다고 했던가요? 제주 돔베낭 길에는 그야말로 신들이 내려와

사는 것 같습니다. 길을 걷는 올레꾼들의 눈동자가 바다로 물들어갑니다.

어쩌면 영혼까지 푸르고 맑게 물들었는지 모릅니다.

165p







올레길과 함께 전설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는것도 또 하나의 묘미이다. 아예 설문대할망으로 시작되는 제주도의 전설에 대해 따로 이야기집을 찾아보고픈 생각도 들었다. 어디선가 듣긴 들었던 것 같은데, 어렴풋하게만 기억나는 제주도 설문대할망.. 그리고 진시황이 보낸 제주도의 수맥을 끊은 고종달. 그리고, 외돌개, 수월봉 등.. 곳곳이 다 전설과 연결되어 있었고, 주민들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다 전설이었다.



아, 제주도의 특이한 방언들도 새롭다.

나이든 여인을 일컫는 "삼춘"이라는 우리와 다른 표현.. 우리는 이모라고 하고, 삼촌은 남자를 일컫는데, 제주도에서는 할머니나 나이든 여인을 부를때 쓰면 좋아들하신다고 한다.

또 돌고래를 "수애기"라는 예쁜 말로 부르는 것도 정겹다. 죽은 고래가 떠밀려와 썩은섬이라고 불린다는 서근도. 저자는 그 섬을 수애기섬이라고 부르기로 하였단다. 바다 사진위에 고래 그림을 적절하게 입힌 그림이 참 운치있었다.



올레길 걷는 일이 새로운 여행문화가 되어가면서 작은 상점의 이름도 올레상점이 되었고, 차림새만 봐도 올레길 가십니까? 라는 이야기를 듣는일이 많다고 하였다. "올레길 가십니까?"라며 같은 동행을 자처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저자가 만난 한 할아버지의 이야기도 가슴을 먹먹하게 하였다.



버스 정류장에서 다가온 한 할아버지.

저자는 사실 망설이기도 하였지만 이내 할아버지와 같이 동행하기로 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몰라 망설이던 차에 할아버지가 가게에서 막걸리나 한잔하자고 권하신다. 그래서 막걸리 한병을 나눠마시다보니 할아버지가 풀어내는 사연인즉..73의 그가 췌장암 선고를 받고 절망에 빠져 있다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길이 신에대한 기도와 올레길을 걷는것이었다 한다. 그래서 일년 남짓 올레길을 걷고 보니 기적같이 암이 사라졌고, 그는 지금 도시에서 어려운 이들을 위한 밥차를 운영하며 가끔 이렇게 올레길을 다시 걸으러 온다고 하였다. 저자는 노인과의 동행이 짐스럽지는 않을까 잠시 망설였던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고, 선지식으로써의 그를 새롭게 보게 되었다.



14코스와 과외코스까지 그녀가 걸은 많은 올레길들이 사진, 사연과 더불어 실려 있고, 끝으로 올레길 코스와 거리, 소요 시간, 교통, 지도, 숙박, 먹을 거리등의 촘촘한 정보들이 잘 나와 있다.

제주 여행을 계획하거나, 제주도를 눈으로라도 여행하고픈 많은 사람들에게 꼭 한번 권유하고픈 휴식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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