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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동전
이서규 지음 / 창해 / 2010년 2월
절판

작가가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가던 길에 어느 은발의 노신사가 100년도 전에 나온 1달러 동전을 보이며 말했다.
"..그거 아나? 이게 자네 나라에서 온 것 말야."
그의 이야기를 한참 듣다가 어느 덧 내릴때가 되었을때 다시 말했다.
"동전이 악마를 보여준다는 말을 믿나? 그렇지, 파우스트가 제 영혼을 치유할 수 없는 병을 줄 수 있어. 바로 욕망 말이지. 가져도 가져도 채울 수 없는 욕망, 그 결과물이 배반일세." -프롤로그 중에서
이상한 말을 하고 사라진 노인은 유령처럼 모습을 금새 감추고 말았다.
실제 작가의 이런 프롤로그로 시작되기에 정말 이 이야기가 허구인지 사실인지 더욱 헷갈리게 되었다. 게다가 1950년대의 한국은행 은화 탈취사건은 실제 있었던 일이기에 실제와 허구의 공존이 우리를 더욱 아리송하게 만든다.
온몸이 하얘진채, 내장파열로 죽은 젊은 남자, 그리고 현대의학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ㄱ자로 몸이 구부러지는 발작 증세를 보이는 젊은 여자. 그 두 사건은 병원에 부임한지 얼마 안된 조인철이라는 병리과 의사와 묘한 인연을 맺게 된다. 그리고, 그는 신부이면서도 날카로운 눈을 가진 , 알고보니 베트남전 군의관으로 참전한 경험이 있던 이신부와 함께 그 두 사건을 추적해나가기 시작한다. 젊은 남자의 죽음의 원인은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고, 그것은 베트남전에서부터 사용되어온..아니 실상은 독일 나치가 레지스탕스에게 써오던 고문방법이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그 이야기가 몇번이나 나오는데, 너무나 끔찍하고 잔인하여 치를 떨 수 밖에 없었다. 마치 크림슨의 미궁의 식시귀를 떠올리듯. 아니, 실제 있었던 일이라 그런지 내게는 더 잔인하게 느껴졌던 고문이었다.
조인철의 가운에 우연히 들어온 젊은 여자의 몸에서 나온 은화는 1달러짜리 미국 은화였다. 그리고, 그것은 놀라운 에너지를 갖고 있어 이신부조차 그 은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두 사건과 은화, 그리고 6.25 때의 한국은행 탈취사건으로 되돌아가는 이야기들..
E pLURIBUS UNUM
여럿이 모여 하나를 이룬다.
발작을 하는 소녀가 갖고 있던 1달러 은화에 새겨진 문구이자, 죽기 직전의 청년이 조인철에게 유언으로 남긴 말이었다.
60년이 지나 은화는 왜 사망사건과 관련이 되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일까?
처음부터 숨막히게 진행되는 이야기들은 나를 차갑고 무서운 세계로 금새 끌어당겼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려고 하는지.. 궁금하여 책장을 넘기면서도 깊은 밤이라 그런지 더 무섭게 느껴졌다.. 그리고, 욕심 앞에 사람들의 이기심이 얼마나 무섭게 작용하는지.. 성공을 위해서는 그 어떤 무서운 일도 할 수 있다는 그 잔인함에 치가 떨렸다. 사실 여기 나온 고문 방법이 아니더라도 어려서 내가 들었던 6.25 때의 잔인하고 무서운 이야기들은 많이도 끔찍하였다. 살아오면서 그 무서운 일들을 많이 잊고 살아서 그렇지.. 전쟁을 겪어보지 않고도 반공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로서는 전쟁에 대한 무서운 이야기들은 공포 그 자체였다. 어린 동생은 자주 악몽으로 공산당에게 쫓기는 꿈을 꿨다고 할 지경이었다. 들은 이야기들이라 그런지..자라면서 너무 많이 잊었던 것 같다. 그때 정말 이렇게 끔찍한 일들이 많았을텐데..말이다.
막판에 다소 느슨하게 해결되는 방식이 아쉽긴 했지만,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라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 한가지 무서운 것은 이 책 속의 악마가 읽는 독자들에게 전염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