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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를 뒤흔든 16인의 화랑
이수광 지음 / 풀빛 / 2010년 3월

화랑이라면 황산벌 전투에 출정해 세번이나 적진에 뛰어들어 결국 계백의 손에 목숨을 잃은 관창이나
대가야를 정벌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사다함을 주로 떠올리게 된다. 아마도 어려서 읽은 어린이 삼국유사나 어린이 삼국사기에 나온 화랑이야기가 그들의 이야기가 주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교과서에서 배운 화랑제 역시 신라의 고급 인재 양성소 같은 느낌의 제도였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화랑은 그들의 전쟁과 학문에 관한 내용보다는 신라 왕녀, 귀족여인들과의 결혼과 연애 등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근간이 화랑의 족보라 할수 있는 김대문의 화랑세기 이기때문이다.
게다가 화랑 하면은 그저 문무가 뛰어난 귀족 집안의 자제 인줄 알았는데, 외모까지 출중해야 자격이 되었다고 하니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화랑이라는 말도 "꽃미남"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스 신화처럼 아름다운 남자를 숭상하는 기풍이 신라에 있었다 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중간에 보면, 조상의 신상을 숭상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불교와 유교, 그리고 많은 전쟁 등의 이유로 아마도 지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듯 한데 수많은 신상이 만들어져서 귀족과 왕족들이 그 신상을 숭배했다고 한다.
화랑의 으뜸 우두머리인 풍월주가 총 32명이 있었는데, 작가는 그중 14명의 뛰어난 풍월주와 비담, 관창까지 총 16명의 화랑을 선정해 우리가 읽기 쉽게 소설처럼 구성해냈다. 이 책을 읽다보면 화랑의 개관적인 흐름과 그들의 혈연관계, 애정관계 (사실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나중에는 너무 헷갈리기도 하였다. 사실 족보가 따로 나와 있었어도 어지러울 정도였다.) 그리고, 신라의 삼국 통일 과정 등을 섞어서 읽을 수 있었다. 주 내용은 물론 꽃미남 화랑의 연애사라고 할 수 있다.
4세 풍월주 이화랑은 피부가 백설같이 희고 눈은 활짝 핀 꽃과 같았다. 마치 백설공주를 묘사하는 듯, 꽃미남 이화랑을 묘사하고 있다. 같은 화랑 가운데서도 군계일학과 같았던 이화랑이 당대의 공주 숙명공주와 사랑에 빠졌으나 어린 소년 소녀라 고백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진흥왕이
"모후께서 숙명을 부인으로 맞이하라고 하니 명을 따른다"며 어머니의 명을 받들어 어머니가 같은 여동생을 부인으로 맞이하게 된다. (뒤에 양도라는 화랑도 친누이와 결혼을 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화랑은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너무나 힘들어하고, 왕도 숙명공주도 아들을 낳았어도 둘 사이는 사랑으로 채워지지 못한다. 결국 숙명공주와 이화랑은 사사로이 정을 통하고 숙명이 이화랑의 아이 "원광 법사"를 잉태하자 둘은 결국 도망을 친다. 왕비가 사라지자 서라벌이 발칵 뒤집히고 진흥왕이 대노하여 이화랑을 죽이려 하자, 권력의 중심축에 있는 이화랑을 죽이는 것에 사도 왕후가 반대한다. 그래서 진흥왕은 결국 공주와 이혼하고, 그녀를 이화랑과 결혼시키는 대신, 이화랑에게 평생을 충성하도록 요구한다.
아버지가 다르다고는 하나 어머니가 같은 오누이가 결혼을 하고, 또 왕비가 신하와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이고.. 정말 놀라운 일들이 화랑의 역사에는 많이 나온다. 아니, 꼭 화랑의 역사라고만 할 수는 없겠다. 신라 왕실의 역사라고 할수 있겠다.
신국을 뒤흔든 사랑의 주인공, 이화랑과 숙명공주의 이야기 뿐 아니라 화랑의 사랑이야기는 정말 책에 가득하게 나온다.
얼마전 끝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기세가 등등하던 미실궁주. 그녀가 얼마나 신라에서 막강한 영향을 미쳤는지 드라마를 미처 보지 못했지만, 책속에서 그녀의 위상을 읽고 깜짝 놀랐다. 이미 왕위에 오른 진지왕을 폐위시킬 정도의 힘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실은 그녀의 색을 이용해 남편 세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남자들과 정을 통하여 정치를 하였다. 그것이 그녀의 힘이었으리라.
그런 그녀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화랑 사다함이었다.
사다함이 출정할때 그녀가 직접 나가 출정곡을 불렀다.
바람이 분다 하되 님 앞에서 불지 말고
물결이 친다 하되 님 앞에서 치지 마오
님이여 어서 돌아와 안아주오
사랑하는 님이여 잡은 손을 놓을 수가 없네
미실궁주와 선덕여왕, 그리고 선덕여왕의 남자 용춘과 비담등의 이야기도 계속 이어진다.
하지만, 너무 자세한 이야기를 하면 책을 읽는 재미가 사라질까봐 궁금한 이야기는 접어두기로 하자.
또한 김유신, 김춘추 등은 화랑 중에서도 장군, 왕으로까지 명성을 크게 떨친 유명한 인물들이다. 그들 또한 15세 풍월주와 18세 풍월주를 역임했다. 대부분의 위대한 장성들이 풍월주나 화랑을 통해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김유신이 여동생 문희와 보희를 김춘추에게 시집보내려 한 이야기나 오줌으로 한양을 뒤덮은 보희의 꿈 이야기도 아주 유명한 일화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김유신의 남동생 김흠순의 이야기는 미처 몰랐는데 그 또한 19세 풍월주였다. 마치 장비와 같은 기상에 매우 용맹한 사람이었다 한다.
성품이 불같았던 그가 보단 낭주를 만나 결혼하면서 애처가가 되어 온순해졌다 하였다.
흠순은 언제나 전쟁터에 있었는데 보단낭주는 원망하지 않고 항상 기도하고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면 온 가족들이 웃고 떠들며 화목하게 지냈다.
흠순은 술을 좋아해 말술을 마셨다. 보단 낭주는 그를 위해 언제나 술을 빚어서 다락에 두었다. 하루는 흠순이 집에 오자 보단낭주가 술상을 차리기 위해 다락에 올라갔는데 한참이 지나도 내려오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한 흠순이 다락에 올라가자 뱀이 술독에 들어가 취해 있었다. 보단낭주는 뱀을 보고 놀라서 다락에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흠순이 보단낭주를 업고 내려온 뒤로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이와 같은데 둘째 딸을 주어도 상관이 없다."
보리는 그 말을 듣고 보단낭주의 동생 이단낭주를 흠순에게 시집보냈다. 254p
가족보다 대의를 사랑한 유신과 대조적으로 흠순은 가족을 가장 우선시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역사에서는 흠순이라는 장군보다는 삼국 통일에 공을 세운 유신만을 부각시키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녀자 된 입장에서는 큰 전쟁터에 나갈때 절대로 집안 식구들을 보지 않고 떠난 김유신 보다는 가족들을 꼭 보고 떠난 김흠순 같은 사람이 더욱 매력적인 것 같다.
이외에도 많은 매력적인 화랑들이 책을 가득 메우고 있다.
신라 시대의 골품과 화랑제도가 모계 쪽으로 이어지고 있는 걸 보면, 신라 시대에 귀족, 왕족여성들의 힘이 상당히 막강했음을 미루어 알 수 있었다. 귀족의 신분이 진골정통은 지소태후, 대원신통이 사도 태후와 같은 여성계열로 이어진 것이다. 그래서인지 놀라운 사실은 결혼을 한 여성들 조차 자의나 타의에 의해 다른 남자와 사사로이 정을 맺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특히 미실궁주나 금진낭주의 경우는 자신의 색을 이용해 정치적 야심까지 갖춘 무서울 정도로 맹렬한 여성들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를 덜하고자했어도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지 않았나 싶지만..
너무나 새롭고 재미있게 읽은 역사소설?이었다. 이런 이야기가 실제를 바탕으로 재구성되었다는 사실이 허구로 구성된 드라마나 보통의 이야기들에 비해 훨씬 더 놀라우면서도 재미나게 와 닿았던 것 같다. 책 속 더 많은 화랑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주저없이 펼쳐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