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마련의 여왕
김윤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2월
품절


"선생의 상상력, 난 그걸 원하오."

처음 보는 노인, 태국에서 몇번 스친 한 여자 스님을 통해 연락을 받았다고는 하나 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할 그 노인이 내게 아주 매력적인 제안을 한다. 보증을 잘못 서서 집한채 있는 것을 홀딱 날리게 생기고, 사랑하는 딸 지니와 길 거리에 나앉게 생긴 내게 월급도 넉넉히 주고, 집도 지켜 주고 한다고 하면서 나를 선택한 이유를 물으니 노인이 대답한 것이다.

상상력이라.. 갑자기 눈이 번쩍 띄였다. 나도 어릴적에 친구가 "러브캣의 상상력을 본받고 싶습니다" 라고 발표할 정도로 공상가였던 시절이 있었는데.. 정말 상상력 만으로 이런 횡재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지만, 딱 거기까지.
뒤에 이어지는 노인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상상력을 가장 높이 샀을뿐 그녀의 뛰어난 다른 능력들이 다 부가적으로 필요했음을 깨달았다.

엄청난 부와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괴짜 노인 정 사장은 정말 혹독하게 나, 송수빈을 교육시켰다. 부동산계의 떠오르는 샛별이 될만큼 많은 공부를 시키고, 놀랍게도 나는 단기간에 그 많은 정보들을 마스터해냈다. 번역도 안된 두꺼운 원서를 들이댈땐 살의까지 느꼈다는 그녀. 하지만, 묵묵히 공부하고, 터득하는 그녀의 여러 모습에서 정말 똑똑한 여성이구나 싶었다.

정사장은 많은 부를 가졌으나 노년에 몸이 너무 아파오자, 좋은일을 하기로 한다. 그냥 선행이 아닌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서 꼭 집이 필요한 이들에게 맞는 집을 구해주는 미션을 수행하기로 한 것이다. 바로 특별 훈련된 자신의 조교를 통해 말이다. 그 조교로 많은 사람들이 거론되었다 실패했지만, 송수빈이 통과를 하고 그녀는 척척 어려운 문제를 풀어낸다.

나는 서대리 형제의 불운한 부모 얘기서부터 치매 걸린 박선생과 그의 추억들, 윌리엄스 증후군에 걸린 훈이와 윤 소장네의 사연들을 얘기해줬다. 261p
그저 가난한 사람들에게 실정에 맞는 집을 구해준다라는 명제에 그치지 않고, 재산이 어느 정도 있어도 본인도 딱 꼬집어내지 못하는 치매환자의 그리움의 대상인 집을 구해주는 상상력, 그리고 지극히 정상적인데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우리네 정서때문에 힘들어하는 훈이네 가족을 위해 마음으로 집을 구해주는 정성 등..소설이니까 가능한 우연들이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너무나 멋지게 많은 난제들을 풀어내었고, 또 그들은 그녀 곁에 인생의 동반자처럼 남아주었다.

문제를 풀고 난 이후 정사장과 송수빈의 대화를 통해 정사장과 그 사람들과의 인연, 또 송수빈의 가족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가 서로의 호기심을 채워주는양 사실은 독자들의 호기심을 채워주면서 자연스럽게 채워졌다.


처음에 이 책을 읽을 적에는 워낙 부동산 쪽에 무지했던 터라, 부자노인의 선심으로 집을 찾아주는 미션을 수행하는 젊은 여성의 이야기라는 것만 알고서 부동산 정보를 소설로 읽을 수 있으면 참 실용적이겠구나 하는 꿍심을 갖고 읽었다. 그리고, 이 소설이 정말로 재미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었다.

실제 부동산에 대해 생소했던 지식들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딱딱한 책으로 공부하는 것보다 작가가 3년간 자료를 수집해 글을 쓴 소설 속 부동산 지식을 간접으로 얻는게 훨씬 더 재미있었고, 유용하였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재미는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에 있었다. 영화를 보는 듯 하면서 매 단편단편의 독립된 소설을 읽고 있는 기분, 그 소설들은 추리소설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단편의 에세이 같은 느낌도 들면서.. 송수빈의 남편과 아이에 대한 실타래들이 조금씩 풀려나가면서 다른 이들의 행복을 찾아주다가 결국 그녀의 고민도 해결된다는 이야기가 너무나 멋드러지게 풀려나가기 때문이었다.

송수빈은 참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책을 다 덮고, 그렉을 잃고 지냈던 시절의 아픔을 내가 과연 상상키나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와 동시에 실어증에 걸린 딸아이 지니까지..아이 키우는 엄마의 아픔이 절절하게 전해져왔다. 내 사랑하는 이들을 어떤 의미에서든 잃고 나 자신도 살아갈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을까?
가슴이 아리게 하는 것들은 참 많았다. 수빈의 삶뿐 아니라 서대리네, 그리고 치매환자인 박 노인 이야기까지.. 가장 가슴 아팠던건 박 노인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책에도 나왔듯이 참 많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돈의 남발보다도, 정말 필요한데 쓰이기 위해서 약은 정사장의 생각이 그랬듯이.. 송수빈같이 똑부러지는 사람이 있어서 그 돈의 가치가 진정한 의미를 발휘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인간의 상상력에 대해 자주 언급하곤 했었다. ..나는 믿는다. 훌륭한 예술작품엔 우리의 영혼을 맑게 해주는 힘이 있듯이, 한 괴짜 노인의 공상과 같은 소망이 이 빡빡한 세상에 그래도 희미한 불빛이 될 수도 있다는 걸. 3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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