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자 차별론

 2013년 7월, 이 사회의 약자라고 외치던 한 남성이 한강에 투신해 사망했다. 
생전에 그는 여성이 "돈 낼 줄은 모르고 처먹기만 한다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여성이 혜택은 누리면서 의무와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여성가족부, 여성할당제, 여성전용좌석 등 여성을 위한 제도는 불합리한 남성 차별이라고 여겼다. 
그가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은 남성 인권운동가였다. 
남성과 여성 의 철저한 더치페이를 주장하는 성평등주의자였다. 
그가 수년 동안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한 이유는 남성이 소외되지 않는 양성의 평등을 위해서였다. 
그는 자신에게 붙여진 여성혐오주의자라는 오명이 억울해서 이렇게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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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새누리당은 필리핀 출신 결혼이민자인 이자스민 의원을 비례대표로 당선시킬 정도로 이런 흐름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하지만 거의 동시에 반 다문화 현상이 일어났다. 
일군의 사람들은 이주노동자는 한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 사람들이고 결혼이주민은 돈 때문에 결혼한 사람들이라며, 이들 때문에 한국인이 피해를 본다고 주장했다. 
이주민을 지원하는 정책은 자국민에 대한 부당한 역차별이라고 항의했다.
 성소수자가 한국사회에 가시화되면서 역시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며느리가 남자라니 웬 말이냐"라며 전통적인 가족관을 기반으로 비판이 시작되었다. 
2007년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를 계기로 보수 기독교 단체 중심의 성소수자 반대운동이 점차 거세게 일어나면서,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면 피땀 흘려 세운 나라가 망하고 
기독교인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주장이 전개되었다.
이제 "동성애 독재가 퍼지고 있다"며 자신들이 박해를 받고 있다고 호소한다.
소수인 성소수자의 인권 보장이 다수의 비성소수자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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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하는 차별을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경험들이 떠올랐다.
예를 들면 예전 직장 사무실에 있던 명패 같은 것 말이다.
당시 나는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나의 사무실 문에는보라색 종이를 코팅한 명패가 붙어 있었다. 정규직 직원 사무실 문에 붙어 있던 명패는 나무색 판에 흰색 글씨였다.
 2년 반쯤 지나 정규직이었던 한 동료에게 이 차이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그는 명패가 다르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보이지않는 이 사소한 차이가 나에게는 출근부터 퇴근까지 문을 열고들락거리는 매 순간 나의 신분을 각인시켜주는 주홍글씨 같았다.
‘생각해보면 차별은 거의 언제나 그렇다. 차별을 당하는 사람은있는데 차별을 한다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차별은 차별로 인해 불이익을 입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차별 덕분에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나서서 차별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차별은 분명 양쪽의 불균형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모두에게 부정의함에도, 희한하게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만의 일처럼 이야기된다. 이게 어떻게 된 걸까? 
산술적으로 생각해도 내가 차별을 당할 때가 있다면, 할때도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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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빤히 보이는 심장문제를 뒤로 미뤘다면 지금쯤 돌아가셨을 거라는 뜻입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지금, 아버지는 여전히 내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나와 한 달에 두 번씩 만나 함께 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으며, 매주를 한두 잔 마십니다. 
또한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지은 내 아들 ‘유진‘이
 태어나던 순간에도 그 자리에 있어 주었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비즈니스를 하면서 복잡한 문제와 맞닥뜨릴 때마다 의지하는 소중한 상대이기도 합니다.
지금 나는 내가 아버지의 목숨을 어떻게 구했는지 자랑할 요량으로 이 이야기를 털어놓은 게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그렇게 빈정거렸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습니다(내가 그때빈정댔다는 이야기는 몇 년 뒤 아버지가 들려준 것이었습니다). 
이 일화를 꺼낸 목적은 아주 사소한 결정들이 어떤 식으로 우리 인생에 종종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내아버지는 검진을 미루지 않기로 선택했던 덕에 심장의 적신호를 느낀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건재합니다. 
분명히 아버지는 의사의 설명을 듣고 크게 충격을 받았겠지만, 그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 즉시 조치를 취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미루는 버릇은 사소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상황이 잘못 풀리면 그 사소한 버릇은 여러분의 삶에 엄청나게 심각한, 심지어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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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노예

아군의 목이 또 하나 잘려 땅바닥에 나뒹군다. 
종일토록 벌인 긴 전투에 병력 손실이 적지 않다.
 아군 하나마다 두세 명의 적이 덤벼들고 있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적을 당할 길이 없다. 지원군을 불러들이기 위해 발빠른 병사 몇몇이 후방으로 향한다.
삼국지를 방불케 하는 이 장면은 실제로 개미사회에서 벌어지는 전투의 모습이다. 
인간의 전쟁에서처럼 돌격〉 또는 작전상 후퇴〉 등의 
구호를 외치며 진두지휘하는 사령관 개미가 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최소한 적의 병력을 파악하여 증원이 필요할 때는 신속히
집으로 돌아가 알리는 이른바 연락병 개미가 있다는 사실은 관찰되었다. 
미국 애리조나의 사막지대에 사는 꿀단지개미 (hon
eypot ants)의 전쟁을 십수 년에 걸쳐 연구해 온 필자의 스승휠도블러 박사에 의해 발견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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