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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씨 마을의 꿈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내의 목을 조르는 노인의 떨리는 두 손이 한동안 뇌리에서 사리지지 않았다. 자신의 아들의 숨통을 끊기 위한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 아팠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들의 끝없는 악행을 대신 결말짓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리겠는가. 『딩씨마을의 꿈』은 처참한 현실을 너무도 담담하게 풀어가는 작품이었다.

모든 마을에 정부의 "매혈"정책이 하달된다. 처음에는 매혈정책에 아주 무관심하던 딩씨마을이었다. 하지만 피는 우물처럼 퐁퐁 솟아난다는 마을 큰 어른인 딩수이양의 한마디와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딩씨마을 사람들은 "매혈"에 미쳐버린다. 그 결과 딩씨마을은 지옥으로 변했다. 많은 수의 마을 사람들이 열병, 즉 에이즈에 감염되어버린 것이다. 비위생적인 채혈과정에서 열병이 발생, 전염되었고 그 원인제공자는 딩씨마을의 존경받는 선생 딩수이양의 큰아들 딩후이이다. 아들의 죄를 갚기 위한 일환으로 딩수이양은 열병에 걸린 사람을 모아 학교건물에서 집단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집단생활 초기에는 열병환자, 가족, 딩수이양 등 모든 사람들이 만족해한다. 나도 이 부분에서는 그들처럼 한시름을 놓고 조금은 편안해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죽음을 앞두고도 놓아버릴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이 쉴새없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그리고 마치 예정된 수순인것마냥 정리된 모든 것들을 무참히 헤집어놓고 만다.
죄인의 아버지가 대신 죄를 갚는 것에 대해서 마을사람들은 그다지 고마워하지 않는다. 애당초 감사의 인사는 원하지도 않았던 딩수이양은 마을사람들의 무자비한 태도에 섭섭한 마음조차 갖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딩수이양은 여전히 그들에게 미안하고 그들이 두렵기 만하다. 하지만 이런 그도 무참하게 도굴된 둘째 아들의 묘를 보고는 더 이상 그들에게 미안해하지도, 그들이 두렵지도 않게 되었다. 이렇게 딩수이양이 딩후이의 굴레에서 제발 벗어나길 원하던 나는 그의 변화가 잠시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성인군자 아버지와 달리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아들은 이제 열병으로 죽은 자까지 돈벌이수단으로 이용한다. 열병으로 죽은 처녀총각들의 영혼결혼식(음친)으로 불쌍한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아들의 소식은 아버지로 하여금 최악의 선택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벌건 피에 미쳐 을씨년스런 마을이 되어버린 딩씨마을에서 딩수이양은 최후의 광인이 된다.
작품의 말미에는 몹시도 메마른, 풀 한 포기마저 뿌리내릴 수 없던 땅에 풀이 자라고 그 위에 비가 내린다. 그리고 딩수이양은 현실인지 환상인지 모를 상태에서 새롭게 펄쩍펄쩍 뛰는 세상을 보게 된다. 현재의 불행보다는 미래의 희망을 강렬히 기원하는 작가의 바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처를 드러내놓고 치료하지 않으면 그 상처는 곪아터진다. 간단하지만 의외로 실행하기 어려운 이치를 작가는 실행해냈다. 그로 인해 『딩씨마을의 꿈』은 중국정부로부터 출판금지를 당했다고 한다. 중국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 세상에 알리고 치료하고자 하는 작가의 용기 있는 결단이 녹아든 작품, 『딩씨마을의 꿈』이었다. 이 작품을 체력이 아닌 생명을 들여 탄생시켰다는 작가에게 독자로서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