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왕
니클라스 나트 오크 다그 지음, 송섬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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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늑대의 왕>은 원제가 '1793'으로 1793년 스톡홀룸을 배경으로 한 역사 추리소설이다. 이제 갓 스릴러 소설의 묘미를 알게 된 나는 지인의 강력한 추천에 이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그 시대의 문화와 분위기를 한 소설에서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다는 것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18세기의 스웨덴은 영국과 프랑스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는데, 특히 1700년대 후반기의 문화는 프랑스풍이라고 한다. 귀족 가문들은 프랑스의 생활 양식에 도취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프랑스의 변화는 그들에게 핫이슈였음을 알 수 있다. 루이 16세가 처형당하고 남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도 참수형 예정이었는데 소설에 중반부에 결국 마리 앙투아네트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음을 읽을 수 있었고, 의학지식이 부족했던 때라 민간요법과 미신에 더욱 의존하던 시대였음을, 지독한 가난이 사람을 비루하게 만든다는 것을 실감했다. 


<늑대의 왕>은 총 4부로 나눠진 이야기로 모두가 연결고리가 있는 스토리였다.

1부 인데베토우의 유령_1793년 가을
파트부렌 호숫가에 떠오른 시체를 아이들이 발견하고 방범관인 카르델에게 신고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쓰레기 호수라 평상시에도 온갖 더미가 난무한 더러운 곳이라 시체가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고 시체라고 보기에는 크기가 작아서 귀찮아하고 있던 찰나 손에 잡힌 그것은 사지가 절단되고 눈알과 치아가 제거된 남성을 보게 된다. 흉측했지만 금발만큼은 아름다웠다. 카르델은 순간 전장에서 동료를 잃고, 자신의 왼팔을 잃었던 트라우마 발현으로 없는 팔의 통증에 고통스러워한다.

법조계에서 저명했던 세실 빙에는 창백한 피부, 큰 눈에 앙상한 체형으로 생명의 불씨가 언제 꺼질지 모른다. 그의 가벼운 몸짓은 소리 없이 돌아다니는 유령과 같아 인데베토우의 유령이라고 불리고 사람들은 그가 이 겨울 안에 죽을 것인지에 대해 내기를 하고 큰 목돈을 챙길 자가 누구인지 기대를 하곤 했다.
그의 학창 친구인자 치안총감 요한 구스타프 놀린에게 도움을 받아 생활하고 있었으나 거절할 수 없는 살인사건의 비공식 수사 부탁을 받게 되는데 마지막 남은 시간을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신분을 알 수 없던 시체의 이름을 묘지기의 추천되로 칼 요한으로 부르기로 한다. 칼 요한을 처음으로 건진 카르델에게 협조를 구하고 이 둘은 파트너가 되어 비공식적으로 수사를 하게 된다. 그러나 빙에는 나날이 많은 피를 토하고 더욱 앙상해져 간다.
두 가지 확인된 단서로 각자 하나씩 파헤치기로 한다. 


"내가 보기에는 제일 먼저 오른팔이 잘린 것 같아. 그다음이 왼 다리, 왼팔, 오른 다리 순서겠군. 아무는 속도가 나랑 비슷했다고 치면 오른팔이 잘린 건 한 석 달 전일 것 샅아. 오른 다리는 한 달쯤 된 것 같고." /41


3년 전 전장에서 한쪽 팔을 잃은 카르델은 시신의 사지가 아물 수 있는 시간을 두고 차례대로 베어 나갔다는 것을 추리한다.

"저는 올겨울이 끝날 때까지 살아 있지 못할 겁니다. 곧 저는 어떤 원인과 결과에도 종속되지 않은 몸이 되겠지요.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나건 간에, 당신은 홀로 버텨야 합니다."
"그럼 시간 낭비하지 말자고. 자네의 이 짝패가 난리 법석에 함께 휘말리는 꼴을 구경하려면 말이야." / 71


"빙에씨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언제나 물어뜯을 준비를 하고 남의 약점을 찾아다니는 늑대일까요?" / 92 


예전에 세계사 책에서 사람을 전시했다는 시대가 있음을 알고 놀라움에 치를 떨었는데 책 속의 시대에도 귀족들의 놀이문화에 인간 전시가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보통 인간은 아니다. 선천 기형이거나 질병으로 뒤클어진 신체를 가진 자들은 눈요기 감이 되었다. 눈과 치아를 잃고 사지가 잘린 칼 요한도 귀족들의 비밀 장소인 케위세르 저택에 보내져 머물러 온갖 추행을 당하다 생을 마감했다.

칼 요한을 바로 죽이지 않았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눈알과 치아를 먼저 제거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는 정말 악마일까.
악마적인 취미로 즐긴 놀이일지 증오로 가득한 복수인지 끝이 궁금했다. 


2부 피와 포도주_1793년 여름 。 외과 견습생 요한 크리스토페르 블릭스가 누이에게 편지를 쓰듯 일기를 기록하는 내용으로 살인자가 등장한다.

3부 나방과 불꽃_1793년 봄 。 안나 스티나라는 소녀가 소꿉친구의 프러포즈를 거절하다가 매춘녀로 신고받고 억울하게 교화소로 잡혀가게 되는 내용이다.
4부 늑대 중의 늑대_1793년 겨울 。각자 수사하던 카르델과 빙에가 만나 퍼즐을 맞춰가며 드디어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늑대 중에 살아남은 늑대가 누구인지 책에서 확인해보길 바란다.  


"당신의 표정이 바뀌는 걸 전 분명히 봤습니다. 절 속일 생각은 마시지요! 당신이야말로 진짜 늑대입니다. 지금까지 본 것만으로도 당신이 늑대인 건 분명하지만, 만에 하나 제 짐작이 틀렸다 해도 당신은 조만간 늑대들의 법칙을 받아들이어야 한다는 걸 명심하십시오. (중략) 다신의 송곳니는 아주 깊이 파고들 겁니다. 어쩌면 당신이 둘 중 더 힘이 센 늑대가 될지도 모르지요." / 95~96 


2부와 3부는 한 사람의 이야기이지만 사건과 연결된 관계자였다. 그 시대에 없는 자가 배부를 수 있는 방법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각 스토리에서 볼 수 있었고 여성에 대한 비윤리적인 학대에 대해서도 생경하게 알 수 있었다. 참혹한 시대상은 다시 반복되지 않겠지만 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행하는 수법은 달라졌어도 사라지는 않는다는 진실에 착잡해진다.

<늑대의 왕>의 후편 1794에서도 왠지 카르델과 빙에의 파트너십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가 든다. 잔혹하지만 스릴러소설 입문자인 나도 불편하지는 않았고 역사 속에 잠시 다녀온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생생한 표현이 집중하며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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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펭귄 포스트북 시리즈
안쇰 지음 / 프롬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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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척추를 바로 세우고 직립보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펭귄은 얼핏 사람처럼 보이기도 해서 더 친근한 것이 아닐까 싶다. 거기다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 걸음을 막 시작하는 아이 같아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펭수의 등장으로 아이들의 대통령이었던 뽀로로는 이인자로 물러났다. 다양한 연령층이 좋아하는 펭수는 ebs의 인기 크리에이터로 수많은 펭수 앓이와 덕후들을 생산했고 펭수 화보가 담긴 잡지도 조기 품절 사태를 불렀다고 하니 현재 최강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요즘 아이들은 펭귄 사진과 그림만 보아도 뽀로로가 아닌 펭수라고 말한다. 귀여운 외모에 주관이 뚜렷하고 사이다 같은 시원한 발언을 주저 없이 하는 펭수가 대세이다. 예전 펭귄 캐릭터는 심형래 아저씨가 펭귄 역할로 나왔던 '동물의 왕국'이지 않을까? 짧은 다리로 돌려차기, 발차기로 우리에게 웃음으로 주었던 대박 캐릭터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 같다. 찾아보니 심형래 아저씨가 부른 펭귄 캐럴송 음반도 있다. ㅋㅋ 혹시 이 캐릭터를 알고 있다면 그대도 옛날 사람. ㅎㅎ



 출판사 프롬비의 포스트북 시리즈는 다양한 작가들의 새롭고 예쁜 일러스트를 담아 포스트카드 형식의 책으로 이번 첫 시리즈가 안쇰의 이 <우주 펭귄>이라고 한다

추운 얼음별에서 지내다 지구에 불시착하여 살게 된 우주 펭귄들이 일러스트에 담겨 있다. 지구의 포근한 날씨와 싱그러운 식물을 보고 지구에게 사랑을 느꼈고 행복하게 지내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하는 우주 펭귄들은 너무 귀엽다.



 커피숍을 열어 장사고 해보고, 아름다운 자연이 풍성해지도록 화분 갈이도 배우고, 할로윈데이와 강강술래도 즐기는 이 아이들!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계절과 상황별 이야기는 그림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호기심과 상상력을 발동시키는 귀여운 그림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카드로 활용해도 좋을 것 같다. 


 스토리가 담기 40장의 엽서 카드와 직접 그리며 즐길 수 있는 컬러링 엽서 10장으로 구성된 <우주 펭귄>은 고급 용지에 제본이 깔끔하게 되어 있어 뜯어내는데 어렵지 않았다. 그래도 손으로 찢는 것보다는 사무용 카터로 살살 그어 떼어내는 것을 권장한다. 혹시라고 힘 조절 실패로 이쁜 펭귄을 두 동강 내버린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다. ㅜㅜ


 40장 중에 10장은 이미 선물로 보내어 아쉽게도 나의 손을 떠났지만 그 아이들이 떠난 자리에 컬러링 엽서북이 남아 힐링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안쇰 작가님의 일러스트를 참고하여 마키로 색칠해보았다. 수채물감으로도 해봤는데 용지가 워낙 튼튼해서 색칠을 과하게 했는데도 전혀 비틀림 없이 처음 그대로 모습이라 굉장히 좋았다. 수채물감과 마카 모두 발색이 잘 되는 종이었다. 색연필은 어떤지 궁금해서 다음번 그림으로 시도해 볼 생각이다. 


 <우주 펭귄>의 구성이 참 알차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기만 해도 행복호르몬이 몽글몽글 돋아나되고, 지인에게 그대로 선물하거나 좋은 글귀, 힘이 나는 글귀를 적어 보내기에도 좋았다. 그리고 너무나 모던하여 심심한 우리 집의 인테리어를 아기자기한 분위기로 바꿔주기도 했다. 거기다 직접 그릴 수 있게 컬러링 엽서까지 함께하니 종합선물세트 그 자체였다. 지금도 훌륭한 구성이지만 별도로 컬러링북으로 출간된다면 주저 없이 또 구매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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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나에게 - 내가 내 편이 아닌데 누가 내 편이 되어줄까?
네모토 히로유키 지음, 이정은 옮김 / 홍익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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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니 작년 하반기에 읽었던 <수치심 권하는 사회>가 생각이 났다.

우리는 사회 공동체적 기대에 모순이 되면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사회가 만들어둔 틀에서 벗어나면 수치심을 느끼며 자신은 세상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에 반해 자책감은 자신의 관념에서 어긋나게 되면 느끼는 감정이다. 이런 감정들은 자존감과도 연결이 되고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나에게>에서 다룬 자책감이 궁금하다.


"나는 나대로 행복해져도 된다"


자책감이라는 감정은 자각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만약 '나는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다, 나는 행복하지 않다. 나는 성공할 자격이 없는 존재다.'라는 마음이 들면 자책감이 잠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자신을 책망하는 이 감정을 자각하기 어려운 이유는 해당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해서인 것 같다. 회사가 나를 알아주지 않아서, 세상에는 나보다 돈이 많고 성공한 사람이 많아서 등등 다른 곳에서 찾으려고 하니 자책감을 자각하지 못하나 보다. 자책감은 불필요한 감정은 아니라고 한다. 


자책감이라는 감정의 틀에서 조금씩 벗어나 자기 자신을 용서하다 보면, 이전에는 발목을 잡고 흔들던 일들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긍정적인 방향으로 개선해나갈 수 있는 감정이다.


행복한데 왜 맘껏 웃지를 못하니...
자책감에 사로잡히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나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용서할 수 없는 존재, 사라져야 할 악인은 바로 자기 자신이 됩니다./ p.65
자책감이라는 감정은 마치 원래 성격이 꼬인 사람처럼 보이게 하거나 자신은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불행을 가져다주는 존재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스스로 행복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을 강요하는 자책감은 기쁜 일이 있어도 맘 놓고 좋아하지를 못하게 한다. 좋은 일이 생겨서 앞으로는 불행하게 될 것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불행한 인간관계.. 그것은 유착과 강한 사랑
심리적으로 상대방과의 경계선이 없어지고 항상 상대방에 집착하는 인간관계를 유착이라고 한다. 예로 부모와 유착관계가 대표적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랬다. 부모님이 위중하실 때 좋은 일이 있어도 좋아하면 나는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배우자가 아플 때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나쁜 사람이라고 나도 이들과 함께 힘들고 아파해야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유착관계라는 게 상대방과 나 사이에 있던 경계선이 사라지면서 감정을 공유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라 매 순간 상대방의 컨디션에 따라 휘둘리게 되는 것이다. 내 한 몸 추스르기도 세상은 빡빡한데 두 사람만큼의 스트레스를 짊어지게 되는 꼴이다. 


사랑이 강하기에 자책감도 강해진다고 한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 생각은 아주 멀리 간다. 태교부터 자신의 죄를 추적하고 괴로워한다. 이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없는데 스스로 죄인으로 몰고 자신을 힘들게 한다. 책에서는 이럴 경우 포커스를 사랑에만 맞춤으로써 자신을 용서하고 스스로 행복해도 된다고 허락할 수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행복해야 부모님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안심하고 자신도 행복해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나와 분리하는 연습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 자신을 다독여주고 괜찮다 해주자. 어차피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다. 타인 중심에서 자신으로 포커스를 바꿔야 과한 자책감에 시달리지 않는다.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는 인생이 아니라 나를 위한 인생을 꾸려나가자.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나에게>에서는 7가지 타입의 자책감에 대해 정의해주고 벗어날 수 있는 대안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이 세상에 자책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다만 지나친 완벽주의, 경솔한 이타 주의, 유착관계로 빚어진 결과는 자신을 깊숙이 끌어내리게 된다는 것을 책에서 알 수 있었다.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이 책에서 찾아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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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넌 고마운 사람
배지영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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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라디오를 본격적으로 들었던 때가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전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였다. 서울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외로워하는 나를 위해 부산 친구가 추천해주었던 MBC 라디오 신성우의 디스크쇼를 가끔 들었던 것 같다. 동일 인물인데도 TV와 라디오에서의 음성은 천지차이였다. 무슨 장치였을까? 아니면 밤이어서 더 달달하게 들렸던 것일까? ㅋㅋ 미대입시 준비를 하면서 불성실했던 청취 생활을 끝을 냈다.



<이미 넌 고마운 사람>의 저자 배지영은 라디오 작가로 오랜 시간 직접 사연을 고르고 전하고 나누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녀는 이런 사연들 속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한다. 한 밤에 디제이를 통해 전해졌던 사연을 고르고 골라 책으로 엮었다고 하니 너무나 기대가 되었다. 




그래. 혼자라서 좋았던 게 아니라
둘이라서 더 좋았던 게 아니라
사랑하니까
그냥 사랑이라서 좋았던 거야./ p51



나 역시 그녀와의 헤어짐이 아쉬웠다기보다는
함께 산책하던 공원의 풍경이,
소박한 식탁에서 음악을 들으며 식사하던 시간이
몹시 그립기도 하니까. /p.48



사랑과 이별을 겪으면서 느꼈던 마음이 생각이 났던 구절이다. 왜 그렇게 '내가 어디가 좋아'라고 '구체적으로 말해봐'라고 닦달을 했었는지. ㅎㅎ 사람을 좋아하는데 이유 따윈 없다는 것을 오랜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를 좋아하면서도, 이 행복이 끝날까 두려워하지만, 자존심은 지키고 싶었던 철없는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또 어떤 각주는 책의 뒷장에 붙어 있어서
시간이 지나야 읽혀지기도 해.
퇴직을 앞둔 아버지의 등에서 느껴지던 쓸쓸함을,
결혼을 앞둔 딸이 밥 먹는 모습을 찬찬히 지켜보던
어머니의 눈물을.
아버지의 상황이 되어서야 또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제대로 알게 돼./p148



예전에 tv에서 부모님이 전화로 밥 먹었냐는 보고 싶다는 뜻이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면 좀 더 각주를 잘 찾을 수 있었을까. 망나니 같은 나로 인해 시꺼멓게 속이 탔을 엄마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생각은 늘상 하지만 습관인 건지 아직 아이 같은 나를 받아주길 바라는 마음인지 자꾸만 투정하게 된다. 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마주할 횟수는 자꾸 줄어들 텐데.. 분명히 후회할 텐데 말이다.


<이미 넌 고마운 사람>을 다 읽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여운은 길게 남았다. 아린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환해지는 책이었다. 일정한 톱니바퀴에 맞추듯 빡빡하게 살아가는 청춘과 도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일상이 무료하거나 너무나 지친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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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의 술래잡기 모삼과 무즈선의 사건파일
마옌난 지음, 류정정 옮김 / 몽실북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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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삼. 너에게 지옥을 보여주마.
살아있는 것이 죽음보다 못하다는 것을
느끼게..


마가리타 - 눈물, 잊지 못한 기억
철도 재료 기업 사장인 40대 남성, 독극물 살인 사건 발생
사고 이후 매일 밤, 같은 악몽을 꾸는 모삼.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기억이 없다. 4개월 만에 처음으로 단장을 하고 외출을 했다. 기억을 한 올이라도 찾을 생각에 나왔지만 답답할 뿐이다. 12시가 넘은 시간 자신의 기억과는 전혀 무관한 클럽으로 향한다. 주문한 마가리타를 보고 있는데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은 여자가 곁으로 와서 마가리타 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사라졌는데.. 갑자기 들려온 비명소리 후 경찰이 출동했다. 그들은 VIP 룸에 폴리스라인을 둘렀다. 모삼은 호기심이 발동하여 슬그머니 라인 안으로 들어가 사망자를 관찰했다. 그리고 신들린 듯 추리를 하고 프로파일링 한다. 이런 자신도 무척이나 놀라워한다. 


모삼의 신비함과 괴이함은 오 팀장도 들은 바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현장에서 그는 유령처럼 불쑥 나타나 신 내림을 받은 자처럼 추리하고 분석하여 용의자를 찾아내고, 마지막엔 기운 빠진 사람처럼 경찰청으로 따라온 데다가 지금은 또 이런 상태라니… p.50


클럽의 사건은 모삼의 기억을 되살려났다. 기억을 찾은 후 처음으로 생각난 사람은 파트너 무즈선에게 전화를 했다. 한달음에 달려온 므즈선은 모삼과 함께 사건을 해결한다. 단순한 독살 사건이 아니었다. 사랑과 증오가 엇갈린 이야기이다. 


타인이 너를 어떻게 대하는지는 그들의 업보요,
또한 그들에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는
너의 업보다. 웨인 다이어


사건 종료 후 무즈선 집으로 향하는 두 사람, 최면을 통해 임신한 관팅이 어떤 방법으로 유린되고 살해되었는지 다 알게 된 모삼은 무너진다. 하지만 그는 쉬지 않고 프로파일링 한다. 조금이라도 기억을 남기기 위해 그놈을 꼭 잡기 위해. 갑자기 적외선 불빛이 보였다. 수상한 빛을 추적하는 모삼과 무즈선은 무즈선집에 설치된 카메라 안에 종이를 발견한다. 그 녀석이다. 


저와 게임을 하시지요.
당신이 지면 누군가를 죽일 것이고,
당신들이 이기면 그 사람을 살려주지요.
이 게임은 당신들이 나를 찾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게임에 응하지 않으면 3일 후 오랜만에 토막 시체를 보게 될 것이라는 그 녀석은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사건의 해결과 추격이 반복되는 소설이다. 마지막까지도 L의 어떤 단서도 찾지 못한다. 사신은 모삼과 무즈선보다 더 앞에 가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누구도 찾지 못할 범죄를 먼저 알아내 해결하라고 물어다 주는 브로커 같은 느낌도 들었다. 여기서 나오는 범인들은 모두 사연이 있다. 그들을 악마로 만들었던 또 다른 사건이 있었다. 그들은 피해자였다가 가해자가 되었다. 하지만 피해자라고 해서 모두 가해자가 되는 게 맞다고 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모삼은 사건을 해결하면서 L의 말을 떠올린다. '당신에게 보여주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런 것인지.' L은 모삼을 너무나 잘 알지만 모삼은 L을 전혀 모른다. 중국 최고의 법의관 무즈선은 파트너인 모삼의 부족함을 보충해 줄 수 있으며, 시시각각 모삼이 잘못한 부분을 알려주면서 실수를 저지를 확률이 낮춰주었다.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는 파트너이면서 서로를 세상에서 의지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범죄 스릴러소설을 오랜만에 읽어서인지 잔혹한 장면에 소름이 돋긴 했지만 L의 존재가 너무 궁금하고 모삼과 무즈선의 쿵짝도 흥미로워 계속 읽어내려갈 수밖에 없었던 소설이었다. 다음 책이 너무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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