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넌 고마운 사람
배지영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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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라디오를 본격적으로 들었던 때가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전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였다. 서울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외로워하는 나를 위해 부산 친구가 추천해주었던 MBC 라디오 신성우의 디스크쇼를 가끔 들었던 것 같다. 동일 인물인데도 TV와 라디오에서의 음성은 천지차이였다. 무슨 장치였을까? 아니면 밤이어서 더 달달하게 들렸던 것일까? ㅋㅋ 미대입시 준비를 하면서 불성실했던 청취 생활을 끝을 냈다.



<이미 넌 고마운 사람>의 저자 배지영은 라디오 작가로 오랜 시간 직접 사연을 고르고 전하고 나누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녀는 이런 사연들 속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한다. 한 밤에 디제이를 통해 전해졌던 사연을 고르고 골라 책으로 엮었다고 하니 너무나 기대가 되었다. 




그래. 혼자라서 좋았던 게 아니라
둘이라서 더 좋았던 게 아니라
사랑하니까
그냥 사랑이라서 좋았던 거야./ p51



나 역시 그녀와의 헤어짐이 아쉬웠다기보다는
함께 산책하던 공원의 풍경이,
소박한 식탁에서 음악을 들으며 식사하던 시간이
몹시 그립기도 하니까. /p.48



사랑과 이별을 겪으면서 느꼈던 마음이 생각이 났던 구절이다. 왜 그렇게 '내가 어디가 좋아'라고 '구체적으로 말해봐'라고 닦달을 했었는지. ㅎㅎ 사람을 좋아하는데 이유 따윈 없다는 것을 오랜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를 좋아하면서도, 이 행복이 끝날까 두려워하지만, 자존심은 지키고 싶었던 철없는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또 어떤 각주는 책의 뒷장에 붙어 있어서
시간이 지나야 읽혀지기도 해.
퇴직을 앞둔 아버지의 등에서 느껴지던 쓸쓸함을,
결혼을 앞둔 딸이 밥 먹는 모습을 찬찬히 지켜보던
어머니의 눈물을.
아버지의 상황이 되어서야 또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제대로 알게 돼./p148



예전에 tv에서 부모님이 전화로 밥 먹었냐는 보고 싶다는 뜻이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면 좀 더 각주를 잘 찾을 수 있었을까. 망나니 같은 나로 인해 시꺼멓게 속이 탔을 엄마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생각은 늘상 하지만 습관인 건지 아직 아이 같은 나를 받아주길 바라는 마음인지 자꾸만 투정하게 된다. 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마주할 횟수는 자꾸 줄어들 텐데.. 분명히 후회할 텐데 말이다.


<이미 넌 고마운 사람>을 다 읽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여운은 길게 남았다. 아린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환해지는 책이었다. 일정한 톱니바퀴에 맞추듯 빡빡하게 살아가는 청춘과 도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일상이 무료하거나 너무나 지친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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