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정치적으로 읽기
박원일 지음 / 한국기독교연구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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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마가복음’을 ‘정치적으로 읽는다’는 것을 전면에 내세웠다. 성서에 관한 ‘사회학적 독해’나 ‘이데올로기적 해석’이라고 하면, 성서의 권위와 의미를 충실히 인정하기보다는 해석자의 주관을 과도하게 본문에 주입하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런 시도들은 학자들의 잉여적 관심의 발로쯤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그러나 학계에서 이런 논의가 수십 년간 진행되면서 이제 이런 다양한 관심과 관점의 질문은 본문의 해석을 풍성하게 만드는 중요한 통찰이고, 본문의 의미를 밝히는 데 필수라는 인식이 폭넓게 자리 잡았다. 본문의 역사적-사회적 배경을 무시하는 독해야말로 무책임한 것이고, 계급-성별-인종-종교의 차이에서 비롯하는 질문과 대답의 미묘한 차이를 감지하는 작업 없이는 본문이 펼쳐 보이는 해석의 스펙트럼을 제대로 음미하기 힘들다는 점은 상식이 되었다. 문제는 이런 학자들 간의 논의를 십분 참고하여 적절한 수위로 일관되게 해석한 결과물을 대중적으로 접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 책의 장점은 그런 점에서 뚜렷하다. 저자는 성서학자로 신학생들과 마가복음을 헬라어로 독해하는 작업을 거쳤고, 교회 성도들과 함께 공부하는 시간을 상당 기간 가졌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 책의 본문은 헬라어 해석을 비롯한 주석적 기능과 학술적 논의가 과도하다는 인상이 들지 않는 수준에서 적절히 활용되었고, 성도들의 실제적 관심사에 부합하는 질문에 대답하고자 정중한 노력을 기울였다. ‘정치적 독해’라고 명명하였으나 (비록 어떤 구절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 대목이 있을지라도) 내용이 그리 급진적이거나 과도한 수사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예수의 ‘하느님 나라(저자는 왜 ‘하느님’인가를 3쪽을 할애해서 설명한다)‘ 운동이 로마제국과의 대결의식 가운데 기술되고 있다는 주장은 이미 여러 학자들을 통해 어느 정도는 낯을 익힌 내용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미국이나 한국에서 고민하는 성도들이 어깨너머로 접했을 다양한 성서학 논의들을 제대로 엮어 마가복음 한 권을 통째로 읽도록 잘 직조해서 보여주었다.

이 책은 출판과정에서 난관을 좀 겪었는데, 전 출판사의 과도한 편집행위에 저자가 반발하면서 한참 후에 새로운 출판사에서 재출간되었다. 비교해보니 챕터 구분이 달라져서 총 22장에서 총 24장이 되었고, 토론을 위한 질문이 장마다 수록되었고, ‘하느님’ 명칭을 사용한 저자의 뜻이 잘 반영되었다. ‘정치적’ 관점에서 마가복음의 메시지를 음미해 보고 싶은 개인이나 소그룹이 사용하기 좋겠고, 교재로서도 적절하게 구성되었다. 질문 많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본문공부와 더불어 풍성한 대화를 끌어낼 책으로 권할 만하다. 나는 첫 출판 때 추천사를 썼는데, 재출판에 그 내용이 그대로 들어갔다. 여전히 같은 바람이다. “자기의 머리로 사고하고, 자신의 언어로 성경을 되새기고자 노력하는 모든 이들에게 복있을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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