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번도, 단 하루도 그녀의 친구였던 적이 없어. 자존심이 강한 여인에게 나의 우정 따위는 필요 없으니까. 그녀는 끊임없는 복수를 위해서 나를 잡아 두었던 거야

미리 알아 두실 것은, 나와 그 애는 그전에도 매일 저녁 지금 당신과 걷고 있는 이 길로, 우리집 쪽문에서부터 울타리 옆 길가에 고아처럼 외로이 서 있는 저 큰 바위까지 산책을 다녔다는 점입니다.

그 애가 머릿속에서 무슨 궁리를 했는지? 그 애는 밤낮으로 복수의 칼을 갈면서, 밤에는 헛소리까지 했던 모양입니다.

그 애가 혼자서 학급 동료 전부를 상대로 분통을 터뜨리며 가슴을 불사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 그 애 때문에 내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난 그 애가 괴로운 생각에서 마음을 돌리게 된 것이 너무 기뻐서, 말과 마차를 사서 다른 도시로 이사하는 모습을 그 애와 함께 공상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때는 바람도 불고 해도 들어가서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가운데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여 우리 두 사람은 걸어가면서도 처량한 생각이 들더군요

알료샤는 그가 이미 자신을 신뢰하고 있으며, 만약 다른 사람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그가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을 것이며, 지금 막 자신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지도 않았을 것이란 점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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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9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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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불안정하고 질투심이 많은 인간이었다. 자신이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나 자만에 빠져 그것을 신경질적으로 과장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지요. 사실 그는 내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내가 그에게 양심에 꺼리는 짓을 했지요. 그런데 그런 짓을 하고 나자 곧바로 그가 증오스러워지기 시작하더군요.〉

남편이 자신의 침묵을 높이 평가하며, 그 때문에 자신을 현명한 여자로 여기는 거라고 느끼고 있었다.

그는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했고, 그녀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마르파 이그나찌예브나는 어리석은 여자가 아니었고, 어쩌면 자기 남편보다 더 현명한지도 모르며, 적어도 실생활에서는 그보다 분별력이 더 뛰어났다.

마치 고의로 꾸미기라도 한 듯 육손이의 출생, 사망과 때를 같이하여 뜻밖에도 예사롭지 않은 괴이한 사건이 일어났고, 그 사건은 훗날 그가 말했듯이 그의 영혼 속에 〈낙인〉을 찍어 놓았다.

이 불행한 여인에 대한 그의 동정심은 마침내 성스러운 그 무엇으로 바뀌어,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변하지 않았고, 혹시 누가 그녀를 헐뜯는 이야기를 비치기만 해도 당장 그 무례한 자에게 달려들 태세였다

누구 못지않게 음탕하고 자신의 색정에는 마치 사악한 벌레처럼 잔혹한 표도르 빠블로비치는 술에 취하게 되면, 말하자면 자신의 내부에서 거의 육체적으로도 느껴질 만큼의 정신적 공포와 도덕적 동요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삶의 어떤 일들에서〉 매우 강인한 성격을 보였으나, 다른 〈삶의 문제들〉에서는 자신도 말하고 있듯이 스스로도 놀랄 만큼 박약한 의지를 나타내곤 했다.

그는 일부러 어릿광대 역을 자청했고, 신사들 사이에서 겉으로는 평등해 보이지만 실상은 완전히 천민 쓰레기에 불과했으므로 그들 앞에 나서서 웃기기 좋아했던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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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주커먼 시리즈
필립 로스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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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기소자와 불기소자, 기결수와 미결수가 한자리에 모여 산들바람이 부는 캘리포니아의 햇볕 아래에서 허튼소리를 내뱉으며 애도하는 동안, 닉슨의 우뚝 솟은 지성은 결국 성조기를 씌운 관 속에 담겨 더는 무제한 권력을 휘두르지 못하게 됐다네

이 나라의 기강을 뿌리부터 흔들었던 자, 엄청난 국가적 재난을 일으킨 자, 미국 역사상 재직중에 저지른 모든 위반과 범죄를 마구잡이로 뽑은 후임자로부터 전면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사면받은 유일무이한 대통령.

부도덕하기 짝이 없는 영혼을 고상하게 띄우려고 두 작자가 아등바등 꾸며낸 억지 찬사를 들었다면, 그들은 데굴데굴 구르면서 웃었을 거야.

"지구는 핑핑 돌아, 네이선. 시간은 내 편이 아닐세."

세월이 흐르니 강한 애착을 느끼는 사람과 작별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은 없는 것 같다. 나는 항상 작별을 고하는 순간이 되어야 그 애착이 얼마나 강한지 깨닫는다.

난 내 선택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씌워버렸어. 내 공민의식의 대가를 도리스가 치른 거야. 그녀가 내 고집의 희생자가 되었지…

그게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고 포학한 타협의 손길을 거부한 용기가 그에게 안겨준 삶이었다.인생을 개선할 기회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학교가 아닌 어디에서 그런 기회를 잡을 수 있겠나?

최선의 목적을 가망 없이 부여잡고 이제 신기루가 돼버린 건설적인 방향을 향해, 더는 통용되지 않을 공식과 해답을 향해 평생 동안 현실적으로 매진했던 삶.

한쪽에서 배신을 억누르면 결국 다른 쪽에서 배신이 튀어나온다.

"그 삽 때문에 아이라가 스스로에게 지우고, 스스로에게 강요하고, 스스로에게 요구한 그 모든 것. 그 잘못된 사상과 순진한 이상. 아이라의 온갖 로맨스. 녀석은 중요한 사람이 되기를 열렬히 바랐지만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네. 녀석은 자신의 인생을 끝내 발견하지 못했어,

이브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한 게 아닐세.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갈망한 남자와 결혼한 거야.

터무니없이 잘못된 노력만 기울였지. 하지만 사람의 오류는 항상 수면 위로 떠오르지,

삶 자체가 오류다.여기에 세계의 본질이 있다. 아무도 자신의 인생을 찾지 못한다. 그게 인생이다."

든든한 느낌, 내가 모든 것에서 독립되어 있다는 만족감을 되살려주는 웃음, 속세를 떠난 사람에게서 마술처럼 나올 수 있는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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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주커먼 시리즈
필립 로스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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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생과의 결혼을 떼어놓고, 내 아내를 대하는 태도를 떼어놓고, 그 빌어먹을 놈의 증오를 떼어놓고 본다면, 이브는 영리하고 활력 넘치는 여자였네

그 여자가 자기 배역에 푹 빠져 있다는 걸 나한테 알릴 필요는 없었겠지. 반유대주의는 단지 그녀가 연기하는 배역의 일부였어

유대인 증오가 주는 값싼 즐거움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거든. 그런 거 없이도 그럴싸한 비유대인이 될 수 있어.

‘당신은 이미 영화 스타다. 당신의 탁월한 재능에 반유대주의는 필요 없다. 그렇게 연기하는 순간, 당신은 백합에 금칠을 한 셈이 되고, 설득력은 사라진다.

당신은 현실에선 안 통하는 논리에 빠져 있다. 그걸 버려라, 그런 건 필요 없다

처음부터 그가 아웃사이더에게 방약무인하고, 공격적이고, 사악하리만치 거만하다는 걸 알아차렸겠지.

기분 좋게, 편하게 받아들이는 것, 그게 엘리너 루스벨트의 방식이었지. 넬슨 록펠러도 그랬고, 애버럴 해리먼도 그랬네.

이브는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법을 전혀 몰랐어. 말다툼이나 논쟁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지. 하지만 사람은 저마다 매일같이 반대하고 저항해야 해

겉으로는 우아하고 상냥했지만, 모든 것에 혼란스러워했어. 인생에 치이고, 딸에게 치이고, 자기 자신에게 치이고, 자신의 불안정함과 시시각각 찾아오는 모든 불안에 치여 망가진 여자였어

아이라는 세상 무엇보다 레닌과 스탈린과 조니 오데이 같은 사람이 되길 원했고, 그래서 그녀에게 집착한 거야. 어떤 형태로든 억압받는 자를 보면 가만있지 못했고, 그들의 억압에 꼭 잘못된 방식으로 대응했으니까

"인간에겐 믿을 수 없는 여러 모습이 존재한다는 게 자네 책의 주제 아니었나? 자네 소설에서처럼 인간에게는모든 게 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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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주커먼 시리즈
필립 로스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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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폈다. 그는 달변과 풍부한 지식으로 우리를 주눅들게도 했지만, 대체로 그의 태도와 자세는 꾸밈이 없었다. 그는 설명하고, 명확히 따지고, 우리를 이해시키는 데 남다른 열정을 보였고, 우리가 어떤 주제를 논하든 칠판에 구문도해를 하듯 그 주제를 주요 성분으로 꼼꼼하게 나누었다.

나는 그 황홀한 모임에 다녀온 뒤 비밀이라면서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얘기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옷을 입어? 무슨 음식을 먹어? 식사할때 무슨 얘기를 해? 거긴어떤 곳이야? 한마디로 눈부셔.

더글러스에게 야유를 퍼붓던 학생 가운데 내가 끼어 있었다는 걸 알아봐서 깜짝 놀라는 바람에, 다소 바보같이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단순한 예의에서가 아니라 더 깊이 자리잡은 어떤 것(야망, 내 도덕적 확신을 칭찬받고 싶다는 야망)에 이끌려 간신히 수줍음을 누르고 그에게 그 야유를 선동한 게 바로 나였다고 말했다

선생님과의 대화에서처럼 그와의 대화에서도 보이지 않는 규범의 선이 무시되었고, 인습적 터부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스포츠, 정치, 역사, 문학, 경솔하고 독선적인 주장, 극단적 인용, 이상주의적 감상, 도덕적 청렴 등 어떤 것이든 끼어들 수 있었다.

거기엔 이상한 짜릿함, 색다르고 위험한 세계가 있었다. 남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의무에서 해방된 까칠하고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세계. 그리고 수업에서 해방된 세계. 아이언 린은 그냥 라디오 스타에 불과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말하는 교실 밖의 자유인이었다.

나의 이상주의(와 인간관)는 두 개의 선을 따라 나란히 형성되고 있었다. 하나는 승리를 향해 싸우는 과정에서 굴욕을 견뎌야 하고 수많은 패배를 겪지만 끝내 승리하는 야구 챔피언을 그린 소설이었고, 다른 하나는 독재와 불의에 맞서 싸운 영웅적 미국인, 미국과 온 인류의 자유를 지킨 수호자를 그린 소설이었다.

그는 완전히 혼자 행동했다. 패스트가 반항적인 독립정신과 개인적 불행이 낳은 고독한 삶을 비정하게 묘사하긴 했지만, 페인이 완전히 혼자였다는 점만큼 매력적인 것은 없었다

페인은 심지어 생을 마감할 때도 혼자였다. 말년에 그는 늙고, 병들고, 비참하고, 외롭고, 추방당하고, 배신당했으며, 다른 건 모두 고사하고라도 자신의 신념을 마지막으로 밝힌 〈이성의 시대〉에 다음과 같이 썼다는 이유로 멸시당했다

"나는 유대교회, 로마교회, 그리스정교회, 터키정교회, 개신교회를 비롯해 내가 아는 어떤 교회가 공언하는 어떤 교의도 믿지 않는다. 나 자신의 정신이 나의 교회다

"‘다수의 힘이 곧 혁명인데도, 신기하게 인류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수천 년 동안 노예로 살아왔다.’"

‘내가 작은 책을 쓴 것은 사람들이 무엇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지 알길 원했기 때문이다.’"

‘행여 내가 주정뱅이에 멍청하고 완고하고 무가치한 짐승 같은 자에게 충성을 맹세해 내 영혼의 매춘부가 된다면, 지옥의 형벌을 받을 것이다.’"

내가 말했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영혼을 매춘부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내 영혼의 매춘부’는 무얼의미하는 걸까?"
"그걸 판다는 거예요. 자신의 영혼을 판다는 거요." 내가 대답했다.

그는 대담한 사람이야. 토머스 페인은 대담해. 하지만 그걸로 충분할까? 그건 단지 공식의 일부야. 대담함에는 목적이 있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값싸고 안이하고 저속해질 뿐이야. 토머스 페인은 왜 대담할까?"
"자신의 신념 때문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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