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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밤에 대하여 - 우리가 외면한 또하나의 문화사 ㅣ 교유서가 어제의책
로저 에커치 지음, 조한욱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4월
평점 :
미국 버지니아 공과대학교 역사학 명예교수인 저자는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8년 구겐하임 펠로로 선정된 바 있으며
연구 및 저술 활동으로 각종 상을 받은 학자입니다.
그가 20여 년에 걸쳐 관련 자료를 모아서 정리한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를 보겠습니다.
밤은 인간 최초의 필요악이자 가장 오래되고 가장 자주 출몰하는 두려움입니다.
모여드는 어둠과 추위 속에서 선사시대의 선조들은
태양이 다시 떠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심한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두려움의 근원이 무엇이건, 그 이후의 문화가
밤의 어둠에 대한 혐오감을 물려받았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고대와 멀리 떨어진 가까운 시대의 여러 곳에서도
밤은 계속해서 강한 불안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등잔, 횃불, 촛불을 포함하는 모든 형태의 인공조명은
밤의 불안감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어둠에 대한 인간의 혐오감은 점진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산업혁명 이전의 몇백 년 동안 저녁은 위협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근대 초의 세계에서 어둠은
인간과 자연과 우주에서 최악의 요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살인과 도둑, 끔찍한 재앙과 악마의 영혼이 도처에 숨어 있었습니다.
근대 초 전반에 걸쳐 밤이라는 위험한 영역은
교회와 국가의 감시를 벗어나 있었습니다.
법정, 평의회, 교회 등등이 밤에는 문을 닫았으며
세속계와 종교계의 관리들은 관복과 함께 의무도 벗어던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상인들은 화재의 위험과 떨어지는 작업 능률 때문에
촛불과 난롯불을 꺼야 했습니다.
또한 밤에는 지켜야 할 하늘의 명령도 있어 세속적인 일을 그만하고
기도와 명상으로 신을 껴안을 것을 기대했습니다.
밤은 사탄이 지배하는 시간이기에 사람들은 침실로 물러가
창조주의 보살핌에 자신을 맡겨야 했기 때문입니다.
당국에서 밤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신의 지상천국을 찬양하는 데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작가들은 신의 계획에 따라 어둠의 공포가
삶의 축복을 선명하게 부각시킨다고 고찰했습니다.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던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행동하기 어렵게 만듦으로써
제약과 억압에 의존할 수 있었습니다.
고로 밤은 어떤 사람의 영토도 아니었습니다.
근대 초 사회에서는 개인의 사생활이 별로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공공도덕에서 개인의 잘못된 행동은 바로 발각되었는데,
주민들은 한 가정의 위법이 더 큰 사회에 해를 끼칠까 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경제적 유대든 개인적 유대든 모든 유대 관계는
명예와 평판에 따라 결정되었으며 그것은 부부 싸움이나 술 주정이나
도둑질과 같은 한 번의 실수로 깨질 수 있었습니다.
사생활의 중요성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랐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마음은 서양 문화의 지속적인 특징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감시와 처벌의 위협은 은밀함의 가치를 높이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특히 밤에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만족하고 사회의 허가도 떨어진 제도화된 행사들이 있었지만
종교개혁 이후 꾸준히 감소했습니다.
그러나 어두워진 다음엔 더욱 무질서해졌고,
낮에 금지되었던 행동의 기회가 많아졌으며
인간의 내밀한 성격을 표출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광막한 밤은 개인적 독립심이 뚜렷하게 강해지는 시간이었고,
땅거미는 교양과 자유 사이의 경계선이었습니다.
인간 최초의 조상들은 해가 진 뒤에 본능적으로 잠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최초의 인류는 포식 동물로부터 안전하게
동굴 속으로 피신하여 어둠의 위험을 잠으로 없애는 법을 배웠습니다.
낮의 인간이 서서히 진화한 것인지 아니면
천지창조의 첫날부터 유전적으로 형성되어 순식간에 나타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근대 초에 이르러 밤의 휴식은
삶의 자연적 질서와 떼어놓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두워진 뒤에도 인간의 행동은 이루어졌지만
잠이 밤에 적합하다는 것에는 어떤 의심도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가정과 직장의 안팎에 전등이 잘 밝혀져 있는,
중단 없는 문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수면 역시 현대적 삶의 빠른 속도와 바쁜 일정에 희생되어,
분할된 잠과 함께 우리의 내적 자아에 대한 이해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 역사의 절반은 전반적으로 무시되어왔기에
그 무시된 공백을 메우는 것이 이 책의 목적입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스칸디나비아에서 지중해까지,
대서양을 건너 미 대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을 걸쳐
산업혁명 이전 시대의 밤에 일어났던 모든 일을 세세히 조사하여 기록했습니다.
밤이 가져다줄 수 있는 위험과 그것에 대한 방비책,
밤에 사람들을 사로잡는 망상이나 악몽, 밤에 하던 사교 행위와 놀이,
침대의 의식과 불면증 등,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는
밤에 대한 잡학사전 같은 느낌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과거의 밤 시간 자체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세밀한 고증과 더불어
건강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오늘날 바뀐 밤 문화에 따라
잠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