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네이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베르길리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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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9월 한 달은 나에게 아이네이스과 함께 한 시간이었다. 비록 한 달을 통째로 이 작품에만 몰두한 것도 아니고, 중간에 2~3일 쉰 적도 있지만 어쨌거나 몰입할 때에는 출퇴근 버스에서도, 점심시간에도, 주말에는 밤잠을 설쳐가며 이 작품을 읽어 내려갔다. 두 번을 읽었는데, 처음 읽을 때는 줄거리를 놓치지 않으려 했고, 두 번째에는 악명높은 미주까지 꼼꼼히 읽음으로써 작품을 입체적으로 조망하고 시야를 헬라스로마 신화와 초기 로마 역사로 넓히고자 하였다. 그 결과 아주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없지만 상당히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아이네이스를 읽은 이유는 단테의 신곡때문이라 하겠다. 비록 신곡의 지옥편 부분만 읽었을 뿐이지만, 그 얼개를 이해하기 위해서 선배격인 아이네이스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런데 동양에 비유하자면 삼국지(연의)’만큼이나 사랑을 받는다는 아이네이스는 태생적으로 마이너스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호메로스의 양대 대작의 그림자가 짙게 배어 있다는 것과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이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는 이 점이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두가지 약점에 대해 스스로 변호를 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아이네이스일리아스오뒷세이아의 크로스라는 점은 누구나 읽어보면 안다. 현대 사회에서 이랬다면, 표절이라고 거액의 소송이 날라들고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가 되었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이 작품은 전반 영웅의 모험담을 그렸다는 점은 오뒷세이아에서, 후반 치열한 전투장면을 섬세하게 묘사했다는 점은 일리아스에서 가져왔다. 그러나 로마 문화 자체가 헬라스 문화에 대하여 강한 경외감을 보여준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문학이라는 장르는 앞선 문학에 대한 끊임없는 재해석이라는 점도 있다. 마지막으로, ‘아이네이스는 풍부한 헬라스의 신화에 영감을 두어 베르길리우스가 새롭게 창조했다는 점이다.

 

더불어 개인적으로 호메로스의 작품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점은, 문장이 담백하다는 것이다. 강대진에 따르면 라틴 문학이 헬라스 문학에 비해 함축적이기 때문에 분량은 적어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같은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호메로스는 설명충이다. 누구의 아들 누가 던진 창에 누구의 아들 누가 어느 부위를 맞아 쓰려져 혼이 하이데스에게 갔다, 그는 누구의 아들로서 무슨 무슨 일을 해왔는데 어떠한 일로 여기 왔다가 이렇게 되었다.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중요하지도 않고 별 관심도 없는 이에 대해 상세히 묘사함으로써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킬 수 있다는 것을 해낼 수있도록 한다. 물론 이러한 묘사가 고대의 모습을 자세히 보여줌은 말할 것도 없지만. 반면 아이네이스도끼로 내리쳐 머리가 갈라진 채 어깨에 붙어 쓰러진다는 식으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묘사한다.

 

둘째, ‘아이네이스가 노골적인 육룡이 나르샤임에도 초기 로마의 역사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면서 그 싯구가 매우 아름답다는 점이다. 아이네아스는 운명에 따라 여러 전조를 보게 되고 그에 따라 자신이 창조해 낼 국가의 모습에 대해 여러 번에 걸쳐 주입식 교육을 받는다. 무사 여신이 베르길리우스 이후의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까지 알려주었으면 좋았겠지만 거기까지는 잘 몰랐던 것 같다. 어쨌거나 나는 시인의 섬세한 표현을 놓치지 않으려 무던 애를 썼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꼽으라면, 나는 전투 말미에 유노의 부탁에 따른 윱피테르의 예언이라고 할 것이다. 이 나라는 이방인인 트로이야인들이 라티움인들과 섞이되, 트로이야의 것을 잃고 라티움에 동화될 것이라는 말하는 장면. 갈등이 해소되는 부분이라서 그랬을까. 머리 싸매고 긴 책을 읽고 난 후 말미라서 그랬을까. 그 부분이 매우 시원하게 느껴졌다. 중국의 변방족이 중국을 점령하고도 결국 흔적도 없이 흡수되듯, 트로이야도 그렇게 로마에 흡수된 게 아닐까. 승자인 트로이야인들이 패자에게 동화된 것은 정착인들의 강한 문화의 힘이 아니었을까 한다.

 

이 걸작의 끝이 달랑 투르누스가 쓰러져 죽었다로 끝나는 점은 못내 아쉽다. 좀 더 완벽한 서사를 기대하는 것이 욕심인 것인지. ‘끝이 곧 로마 역사의 시작이기 때문에 자연스럽다는 말도 있지만 역시 불멸의 문학의 엔딩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한 문장정도만 더 있었어도 멋들어지지 않았을까.

 

책 상태에 대해 평가해 보자면, 번역은 감히 내가 말할 부분이 못되고, 간혹 미주번호가 잘못 처리된 부분이 몇 개 보였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천병희+은 절대진리라 할 만큼 만족스러운 완성도를 보여준다. 최근 열린책들에서도 아이네이스일부가 출간되었다. 어떤 모습일런지는 몇 년 후에 봐야겠다.

싸움에 진 자들의 유일한 구원은 어떤 구원도 바라지 않는 것이오.
제2권 344행

세 번이나 나는 그곳에서 그녀의 목을 얼싸안으려 했으나, 세 번이나
그녀의 환영은 헛되이 포옹하는 내 두 손에서 빠져나갔습니다.
가벼운 바람결처럼, 그 무엇보다도 날개 달린 꿈처럼
제2권 792~794행

소문은 세상의 악 가운데 가장 빠르다.
그녀는 움직임으로써 강해지고 나아감으로써 힘을 얻는다.
그녀는 처음에는 겁이 많아 왜소하지만 금세 하늘을 찌르고,
발로는 땅 위를 걸어도 머리는 구름에 가려져 있다.
...
또한 낮에는 지붕 꼭대기나 높은 성탑들 위에 앉아 망을 보며
대도시들을 놀라게 한다. 그녀는 사실을 전하는 것 못지 않게
조작된 것들과 왜곡된 것들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제4권 174~188행

잔인한 사랑이여, 너는 인간의 마음을 어디까진들 못 몰아가겠는가!
제4권 412행

내가 요구하는 것은 약간의 시간이야. 내 불운이 패배한 나에게 슬퍼하는
법을 가르쳐줄 때까지 내 광기를 달래기 위해 평화와 휴식을 요구할 뿐이야.
제4권 433~434행

세 번이나 그는 거기서 아버지의 목을 끌어안으려 했으나,
세 번이나 환영은 헛되이 포옹하는 그의 두 손에서 빠져나갔다,
가벼운 바람결처럼, 그 무엇보다도 날개 달린 꿈처럼.
제5권 700~702행

나에게는 이미 안식이 주어져 있소. 나는 이미 항구에
다 들어왔으며, 잃을 것은 행복한 죽음밖에 없단 말이오.
제7권 598~599행

"에우뤼알루스, 신들이 왜 이런 열정을 우리 마음속에 넣어주실까,
아니면 자신의 뜨거운 욕구가 각자에게 신이 되는 것일까?"
제9권 184~185행

인간의 마음은 운명과 같이 다가올 미래사를 알지 못하기에 행운이
떠받쳐주면 절제할 줄 모르는 법이다.
제10권 501~502행

"내 아들아, 너는 용기와 진정한 노고는 나에게서 배우고,
행운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배우도록 하라!"
제12권 435~437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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